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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y 12. 2020

성실한 다짐의 왕, 언젠가 빛을 발하겠지.

오늘의 다짐은 저녁 내내 트위터만 보고 있지는 말자, 였고, 성공이다

샤워를 하고 왔더니 살결이 보들보들 기분 좋다. 지난주에 왔던 친구가 주고 가서 평소에 잘 바르지 않는 영양크림도 발랐다. 오늘은 어제보다 기분이 좋은데 저녁 먹고 트위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제도 오늘도 1분도 지체하지 않고 퇴근했다. 아니 오늘은 더 일찍 나왔다. 6시만 기다리고 있으니 5시 30분부터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데 그래도 양심껏 55분까지는 일을 한다. 오늘은 50분에 하던 일이 마무리 되어서 용건 없이 인터넷 창을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이럴 바엔 퇴근을 해야지 생각하고 55분에 나왔다. 오늘 아침 5분 일찍 출근했으니까 5분 일찍 퇴근하는 셈이다. 보통은 8시 57분까지 주차한 차 안에 있다가 9시에 딱 맞춰 출근하는데 오늘은 50분에 그냥 들어왔다.

일이 있을 때 일찍 나가는 걸 눈치 주는 회사는 아닌데 그 일이란 게 보통은 직급이 높은 사람들한테나 주로 생긴다. 외부 회의, 가족 행사, 병원 방문 같은 거. 일이 있을 때 일찍 나가도 되면 나한테 휴식을 주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일찍 나가도 좋으련만 그러면 회사는 어떻게 다니냐고 하겠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는 말뿐, 아니 그런 말도 안 한다. 수평적이라는 말의 함정을 잘 살피자는 말만 맨날 해대지 뭐. 그래서 필요 이상의 시간도, 애정도 회사에 쏟지 않는다. 이미 월급 받는 만큼은 충분히 하고 있다. 경력 인정 못해줘서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달리 방법을 찾아주지도 않는 걸. 여튼 퇴근하고 집에 일찍 와서 저녁도 간단히 먹고 내내 여유로웠다. 그리곤 10시 넘어서까지 소파에 누워서 휴대전화만 붙들고 있었지. 오늘은 그러지 않으려고 식사 마치고 바로 책상에 앉아 낮에 산 책을 봤다.

<적정 소비 노트>는 <적정 소비 생활>의 워크북이다. <적정 소비 생활>은 가계부에 맨날 지출내역만 적으면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던 때 전체적으로 돈의 흐름과 소비의 규모를 파악하고, 나와 돈의 관계를 내가 주도적으로 세울 수 있게 도움을 받았다. 며칠 전 4년치 가계부를 정리하고선 계속 뿌듯하다가 한눈에 보이게 수입과 저축과 지출을 (또!) 정리해봤다.다짐의 왕이 아니라 정리의 왕이로구만. 아니, 소파에 누워서 재미도 없는 트위터나 들여다보고 있는 거보다는 낫잖아. 생산적이야. 작년과 제작년의 총수입과 총지출, 저축에 준하는 잔액만 한 페이지에 적어봤다. 올 한해를 회사에서 버틸 이유가 눈앞에 구체적인 수치로 나와 있다. 오늘밤도 숫자와 씨름하다가 금방 시간이 흘렀다.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붙들고 트위터를 켰다가 조금 더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 위해서 쌀을 씻어 불려놓고 내일 도시락으로 챙겨갈 채소를 썰어 통에 담았다. 귀찮아서 하기 싫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생각 없이 몸을 움직여 오이를 썰고 당근을 썰다보니 삐걱거리며 기계가 돌다가 부드럽게 자리 잡고 도는 것처럼 몸도 그렇게 작동한다. 내친김에 샤워하기 하고 났더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오늘의 다짐은 저녁 내내 트위터만 하고 있지는 말자, 였고, 성공이다. 늘어져 있느라 귀찮고 아무 것도 하기 싫은 마음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몸이 기억하는 움직임을 루틴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하는데 당연히 쉽지 않다. 다짐의 왕으로서 매일 쓰는 일기를 거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성실히 지켜가고는 있는데... 언젠가 빛을 발하겠지 뭐.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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