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명절엔 집에서 글을 씁시다

완주행보_完州行步12

by badac

내가 있어야 할 곳

추석이다. 공휴일에다가 회사에서 쉬게 해 준 수요일까지 하루 더해 총 5일 동안 쉰다. 연휴 동안 어디 안 가고 완주집에 있을 건데 명절 때 고향집에 안 간 지는 꽤 되었다.

지난 설날엔 강릉 안프로 게스트하우스에서 발리책 원고를 썼고 그 전에도 경주, 제주, 네팔 등 각지로 돌아다녔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식구에 아빠 돌아가신 뒤로 엄마가 적적해하실 성 싶기는 한데 어디서 건 잘 먹고 건강하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두 분 가르침에 따라 그냥 나 하고 싶은 대로 한다.

12_01.jpg 강릉 안프로하우스에서 트위터하는 바닥 씨

게다가 서울에서야 고향집으로 가는 버스가 바로 있지만 여기서 집에 가려면 시내버스를 두 번타고 전주로 나가서 광주로 간 다음에 다시 집으로 가는 시외 버스를 타야 한다. 거리상으로는 가까워졌을지 모르지만 대중교통으로는 가는 길이 요원하다. 지역에서 지역으로 움직이는 데는 서울 가서 가는 방법이 제일 쉽고 빠르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 달 전 여름휴가 때 급한 대로 인사는 드렸으니 대목 지나 천천히 가봐야지.


독립 출판의 꿈

발리 여행 다녀와 쓴 원고는 ‘나 혼자 발리’라는 전자책으로 나왔다. 적게 쓰고 오래 놀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을 직접 했는데 그러다 책을 만들 생각도 하게 되었다. 돈을 덜 들이려면 그만큼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데 다행히 그런 과정을 재미있어했기 때문에 꽤 오래 그런 식으로 놀면서 살 수 있었다.

커피값을 줄이려고 직접 콩을 볶아 마시기 시작했듯 친구들과도 놀 거리를 직접 만들곤 했다. 부산의 생각다방 친구들은 공연을 직접 기획하거나 서툰 솜씨로 서로가 직접 연주자가 되어 공연을 하며 놀았다. 나 역시 노래도 만들고 부르면서 혼자 또는 우리끼리 만족하는 놀이를 하곤 했다.


책을 만들겠다는 마음은 그렇게 구체화되었다. 글밥 먹고 살 사람은 못 되더라도 일기든 편지든 쓰는 걸 좋아한다. 글을 쓰면 누구에게든 읽히고 싶고 그러다 보면 책도 만들고 싶어 진다. 여러 친구들의 도움으로 돌아다니면서 신나게 살아 왔으니 친구들에게 보내는 보고서 겸 감사 인사로 책을 만들어 보자. 유용한 정보를 넣는다면 발리 여행을 생각하는 친구 아닌 사람들에게도 팔릴 만 한 책이 될 거 같았다. 요즘은 독립출판도 많이 하니까 신세 진 친구들에게 선물하고 남은 건 팔아서 살림에 보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다 보니 출판사와 연이 닿아 전문가의 손을 거쳐 전자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처음에 염두에 두었던 지인 독자들에게 꾹꾹 눌러 서명해 전하겠다는 꿈은 이룰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안 나오는 것보다는 낫다며 혼자서 또 정신승리.


연휴에 할 일

많이 팔려서 종이책으로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전자책으로라도 책을 한 권 낸 ‘작가’가 되었으니 ‘다음 책을 쓴다’는 말도 부끄럽지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완주행보’를 추석에 엄마한테도 안 가고 쓰고 있다.


글쓰기 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연휴 동안 사무실에서 기르는 개 쩡이를 돌보는 일. 얼마 전 새끼를 여섯 마리나 낳아서 몸조리에 특히 신경 써야 하는데 내가 완주에 있으니 하루에 한 번씩 들러서 밥을 챙겨주기로 했다. 다행히 이 건에 대해서는 쉬는 날에도 회사를 가야 해? 하며 억울하다는 느낌은 없다. 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어차피 집에 인터넷도 안 되니까 운동 겸 자전거 타고 사무실에 와서 일도 보고 밥도 주고 회사에 생색도 잔뜩 낼 수 있겠다. 명절 기분으로 사료 말고 멸치와 미역으로 특식을 만들어 줘야지.

12_02.jpg 쩡이님 이 밥을 드셔주시옵소서


매거진의 이전글면접 겸 출근하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