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연휴엔 트럭 타고 산에 갑시다

완주행보_完州行步13

by badac

자발적 사내 산악회

4일째 날, 집에만 계속 있어도 좋지만 더 좋으려고 산에 갔다. 원래는 친구네 집에 감 따고 밤 주우러 가려고 했는데 감님이 아직 오지 말라셔서 취소. 이미 어디 가는 줄 알고 들뜬 마음의 환심을 사려고 운장산에 갔다.

모악산, 대둔산, 봉실산, 봉화산, 안수산, 동성산, 기차산 등등 전주를 빙 둘러싼 지형이라 넓어서 그런지, 워낙 산이 많은 동네인지 좋은 산이 많기도 하다. 호남 알프스라고 불리는 종주코스도 있다는데 이번엔 같이 가는 직장동료 ㅈ의 추천으로 운장산으로.


인터넷에서 왕복 세 시간 정도 걸린다는 글을 보고선 우리 둘 다 코웃음을 치며 가뿐하게 다녀오자고 했다. 직장동료 ㅈ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매일 12킬로를 30분 이내에 자전거로 달려 출퇴근하고 완주 내려오기 전에도 등산 좀 하던, 얼마 전 지리산에 다녀오신 운동 좀 하는 여자분. 나는 실력이야 어찌됐뜬 한라산, 백두산, 지리산, 아궁산까지 겁 없이 산행하는 여자.

13_01.jpg 산에서도 구글맵 확인하는 녀자

여기 사는 사람처럼 대답하기

회사 트럭을 빌려 타고 꼬불꼬불 강원도 고개 넘는 길처럼 생긴 길을 달려 출발점에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하면 보통은 슬슬 산에 몸을 적응시키면도록 평탄한 길을 좀 가다가 산길이 가팔라지곤 했던 거 같은데 여기 산은 기승전결이 따로 없이 바로 전전전결이다. 시작부터 오르막길이 너무 힘들어서 30분 정도 가다가 주저 앉아 포도로 당을 섭취하며 기력을 충전했다.


그렇게 한참을 한참을 계속 오르고 올라 두 시간 반만에 정상에 올랐다. 경치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비슷한 시간만큼 내려왔다. 가파른 길은 내려올 때가 더 힘들어서 지금까지 다리가 후들거린다. 하행길에 길을 잘못 들 뻔한 걸 다른 등산객 아저씨들이 알려주셨다. 어디 사냐고 묻는 걸, 동네 사람 아닌 거 티 나게 완주라고 답했다.


“여기가 다 완주지, 완주 어디냐고. 우리는 양야리에서 왔어. ”

“고산이요”

“고산 읍낸가, 우리도 고산인데”

“아, 네 시장 있는데요.”

“고산 안 사는가 보네. 거기서 자취하나 봐.”


마땅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서 대충 대답한 거였는데 모범답안은 고산 읍내였다. 내려온 지 얼마 되었냐, 원래 집은 어디냐, 이런 재미없는 질문을 주고받다가 내려왔는데 하산 후 주차장에서 또 만났다. 우리가 트럭을 몰고 온 걸 보시곤 또 깜짝 놀라 어디 아가씨들이 트럭을 몰고 다니냐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신다. 또 대충 설명하면서 이야기하고 배도 얻어먹고 훈훈하게 마무리.


우리 트럭 좀 타는 여자들

수동 운전을 해본 지가 너무 오래라 당장은 회사 트럭이나 동료의 수동 승용차를 운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이번 산행도 동행이 있어서 가능한 거였다. 조만간 수동 운전을 연습해서 혼자서도 트럭을 타는 멋진 여자가 되어야겠다. 그래서 오늘 주차장에서 조금 배웠다.


클러치와 브레이크를 밟고 시동을 걸고 브레이크를 떼고 클러치를 떼면서 엑셀레이터를 밟아 주행 시작, 그러다가 속도를 올린 뒤 클러치를 밟으면서 기어 변속하고 기어에 맞게 재빨리 가속. 어어어 그런데 클러치만 떼도 차가 너무 빨리 간다. 계기판을 보니 겨우 10.


ㅈ씨는 빠른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아니에요. 괜찮아요. 하면서 뭔가 원리를 이해하도록 클러치와 기어의 관계를 설명해주는데 모르겠다. 말로도 어렵고 글로도 복잡하고 몸은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수차례 시동을 꺼먹고 기어 변속은 두 번 겨우 성공했다. 나중에 더 넓은 장소에서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ㅈ도 수동 운전이 아주 익숙지 만은 않아서 도로에 나설 때마다 긴장되는데 그래도 여긴 시골이라 운전하기도 주차하기도 수월한 편이란다. 나도 금방 배울 수 있겠지. 그나마 ㅈ이 있어서 차 얻어 타고 산에도 오고 운전 연수도 해보았다. ㅈ은 본인이 운전을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이 어이없어서 계속 웃어댔지만 눈높이에 딱 맞는 공감형 선생님이다.


“이렇게 좁은 데서 운전 연습을 할 수 있어요?”

“이게 좁아 보이죠. 근데 타 보면 엄청 넓게 느껴지실 거예요.”

“왜 이렇게 빨라요?”

“아뇨, 그렇게 느껴지는 거예요. 계기판 보시면 지금 안 빨라요.”


네네. 훌륭한 선생님. 다음에도 잘 부탁합니다. 운장산은 완주군 동상면과 진안군 경계에 있는 산이라 여기까지 온 김에 탑들이 기이하고 쌓아 올려져 있다는 탑사도 가고 읍내에 핫한 카페도 가보려고 했는데 둘 다 지쳐서 그냥 집에 가기로 했다. 나의 운전 선생님 ㅈ는 내 눈높이에 맞는 운전실력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큰 차도에서 유턴해서 집 앞까지 데려다 주시는 대신 건너편 큰 길가에 나를 내려주고 가셨다. 후들거리는 다리를 끌고 집에 돌아온 뒤 차를 회사에 가져다 두고 다시 자전거를 달려 집으로 돌아갈 선생님을 위해 존경의 문자를 보냈다. 야호, 그래도 내일 하루 더 쉰다.

13_02.jpg 고산 읍내 주름잡는 트럭 타는 녀자 (실은 고산주민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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