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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May 20. 2020

어쩔 수 없다고 외면한 것들에 대한 죄책감

이번 주말에 상담가서 할 이야기

어젯밤엔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었다. 삼일째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두고 자러 간다. 누운 지 한참인데도 잠이 오지 않으면 벌떡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확인할 필요 없는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돌아오긴 했다. 어제는 30분 간격으로 두세번 다녀왔다. 그래도 끝끝내 휴대폰을 붙들고 눕지는 않았다. 일기를 쓰고, 소리내어 책을 읽고, 입이 아파서 눈으로 읽다가 겨우겨우 늦게 잠들었다. 그러곤 일찍 일어나버렸다. 시계를 잘못 본 건 아니었는데 8시 10분에는 일어나야 한다고 10분! 10분!에 집착하다보니 7시 10분에 일어나서 출근준비를 했다. 씻고 옷을 입고 도시락을 챙겨서 시계를 다시 보니 뭔가 이상해서 내가 한 시간이나 먼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차차. 아이고 아까워라. 다시 한 시간 누워야 하나, 그럼 또 일어나기 싫을 텐데. 차에 누워있더라도 이대로 출근하자.


8시에 도착해서 아무도 없는 회사 휴게싶에 누워서 9시까지 누워있다가 들어갔다. 하하하.

점심시간에는 주 후반으로 갈수록 식사 준비하는 속도가 빨라져 20분도 안 되어 식사를 마쳤다. 40분 동안 아침에 잠들었던 그 소파에 앉아서 쉬다가 오후에 일하러 들어갔다.


옆자리 동료도 매일 블로그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출근해서 아침이나 지겨운 오후에 쓴다. 뭔가 집중해서 타자치는 소리가 들리면 아, 지금 일기를 쓰나 하고 생각한다. 나도 저렇게 집중해서 타이핑을 할 때는 일기 쓸 때 뿐이니까. 그래서 나도 업무시간에 회사욕을 실컷하는 일기를 써보겠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쓰는 일기도 그냥 일기이긴 하지만 회사에서 지겹고 스트레스 받는 바로 그 순간 구체적인 글감으로 마음편히 쓰는 일기랑은 또 다르니까. 나는 뭐든 마구 많이 쓰는 걸 좋아하니까.


좁디좁은 사무실에 앉아서 싫은 사람들의 말소리를 듣는 게 너무 싫어서 한참 일기를 쓰고 또 다른 블로그에 올려두고 (도대체 몇 개야) 동료와 같이 돌려읽고 그렇게 겨우겨우 퇴근시간까지 버텼다.


당장이라도 제주로 달려가 다음 장을 펼치고 싶던 마음은 좀 수그러들었다. 그때는 진심이었지만 일이란 게 단순하게 흘러가지는 않아서. 나 또한 복잡한 사람이라 쉽게 결정하기도 마음 먹기도 어렵고 혼자 어떻게든 해나가는 추진력도 이젠 잘 생기지 않았다. 금새 시들해지고 마음이 계속 불편했다가 나름 정리해보고 있다.  마음이 변덕을 부리는 데 대한 실망감과 죄책감을 크게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상담선생님이 말씀해주셨다. 빈말을 하지 않을뿐 아니라 신중하게 마음속으로 혼자 고민하던 것도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힘든 경우가 많았다.


구조한 고양이를 입양하지 않겠냐는 질문에 거절을 해야할 때, 아픈 길고양이를 구조할 생각은 안 하고 그냥 지켜보고 있을 때, 내가 돕겠다고 한 적은 없지만 누군가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만 있을 때, 마음이 괴롭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밖에 못하니까, 내가 다 어떻게 할 수 없으니까 하고 외면하는 건 아닐까.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내 앞가림을 하느라도 이렇게 겨우겨우 괴롭고 우울한데... 여러가지 생각이 섞여 있다. 그렇게 불편한 마음을 담고 답답한 채로 쭈그러들어 세상을 만나기 겁낸다. 이번주에 상담가면 이런 이야기를 더 해보면 좋겠네. 지난 주에 과제로 받아온 친구에게 솔직한 심정을 말하기는 오늘 어느 정도 수행했고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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