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것들
글을 쓰는 과정을 그대로 다 보여준다고요?
쓰방을 계획하고 있다 말했을 때 듣던 이는 조금 놀란듯했다. 쓰다말다 하는 과정들이 여과 없이 보여져도 괜찮냐는 질문에는 상관없다고 답할 수 있다. 큰 부담은 없었다. 두 달 동안 브런치에 올릴 일기를 써오는 동안에도 이렇게 후다닥 앉아서 쓰고 몇 번 읽어보고 그냥 올렸다. 다만 이렇게 막 쓴 글을 올려서 내가 이 정도밖에 글을 못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될까봐 걱정이다. 주제에 대한 청탁을 받고 고심해서 글을 쓰면 좋은 글을 쓸 수 있어요. 이건 그냥 손 가는 대로 쓰는 글이니까. 모닝페이지 같은 겁니다. 더 잘 씁니다.
많이 쓰면 무조건 실력이 는다고들 하는데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에선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 것 같다. 생각해서 쓰고, 노력해서 쓰지 않는다면 글쓰는 실력이 시간에 비례해서 느는 것은 아니라고. 맞지. 달리는 게 좋다고 그냥 매우 느린 속도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뛰어버릇 하면, 오래 달릴 수는 있지만 빠른 달리기를 저절로 잘하게 되지는 않을 테니까.
글쓰기 수업에서는 15분 글쓰기처럼 시간 안에 아무말이나 써도 좋으니 무조건 문장을 이어가는 글쓰기시간을 갖기도 한다. 글쓰기가 정말로 막막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그런 시간을 이미 너무 많이 가졌다. 실은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시간이 그런 시간이다. 아무말이나 써도 된다면 정말 나는 하루종일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가. 쓰고 싶어서, 쓸 수밖에 없어서, 그냥 안 쓴다고 해도 딱히 다른 할 일이 있는 게 아니니까. 책을 읽기도 하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면서 트위터나 기사를 읽기도 하는데 그것보다 차라리 쓰고 있는 순간이 그나마 조금 나아서 쓴다. 두 시간 동안 꼼짝 않고 트위터를 붙들고 있다가 뜨거워진 핸드폰과 아픈 머리를 움켜쥐고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차곡차곡 매일의 일기를 쌓아가는 게 기분이 나으니까. 그런 내 마음을 누구라도 읽어줬으면 하는 마음에, 나의 이런 성실함을 자랑하고 싶어서 블로그에도 올리고 유튜브에도 올리는 거다.
회사에도 지긋지긋한 회의시간에 낙서하면서 시간을 버티는 사람이 있겠지. 우리 회사는 다섯 명밖에 안되니까 좁은 공간, 한 테이블에서 회의를 한다. 딴짓을 하기는 어렵다. 머릿속으로만 빨리 이 회의가 끝나기를 바라며 딴생각을 한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을 상사들이 하고 있네, 나는 어떤 의견도 내지 않는다. 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지만 여튼 더 이상 나는 생각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는다.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걸로 월급값은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슬금슬금 천천히 해도 되는 일을 후다닥 정리해버렸다. 미리미리 해치우고 노는 게 마음이 편한 사람이라 회사일도 그렇게 한다. 그래서 전에는 계속 일을 너무 많이 하곤 했지만 여기서는 절대 그러지 않으려고.
내가 종일 걸릴 일을 반나절 만에 끝냈으니 반나절은 내 업무를 보겠어. 불만 없으시길. 개인에게 권한과 책임, 시간 운용에 대한 자율성을 주지 않으니 내가 알아서 하는 수밖에. 오후에는 친구들과 함께 준비하는 일의 진행과정을 기록하는 글을 썼다. 회사에서 틈틈이 그런 글을 쓴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생기면 옆자리 동료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들의 블로그에 회사욕을 쓴다. 서로 가서 읽고 댓글 달고. 회사 생활의 낙이라면 그 정도. 나 연말까지 잘 버틸 수 있겠지?
성실하게 매일 쓰는 거 말고도, 점점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 욕심은 있다. 그러려면 글감을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하는 글을 써야 할 텐데 꾸준히 일기를 써온 지난 시간에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뭐 어디든 무엇에든 적응하는 시간은 필요한 법이니까. 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람이니까. 조금 더 시간을 들여보기로 한다. 앉으면 쓴다는 건 몸이 알아챘고, 뭐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일단 절대적인 양이 차면 질도 좋아지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우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