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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03. 2020

시시콜콜 모든 것들을 일기로 쓰는 까닭

생각 없이 회사에 다니고는 있지만 일상 감각까지 무뎌지는 건 싫다

별 일 없는 하루가 지나간다. 매일 똑같이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해서 집에 와서 밥 먹고 저녁에 일기 쓰고 잠 드는 생활이다. 그래도 조금 다른 게 있다면 오늘은 7시 반에 일어나서 8시에 집을 나선다. 어제보다 일찍 나갔다. 요즘 회사 주차장 근처를 공사중이라 주차할 데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뭐든 미리미리 하는 나로서는 조금 일찍 도착해 차 안에 앉아 있을지언정 마음 편하게 주차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8시 반에 회사 근처에 도착했는데도 주차할 데가 마땅치는 않았지만 골목에 주차하고 8시 50분까지 차 안에서 일기를 썼다.

9시에 출근하고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 근무시간에는 적당히 업무를 한다. 회사에서 일어난 일은 특별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한번 떠올려본다. 평소와 다른 일이 있었던가. 그런 작은 차이를 찾지 않으면 정말 하루하루가 너무 똑같이 느껴질 것만 같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곱씹어야 하루에 만난 사람이 어떻게 다른지, 먹은 음식이 어떻게 다른지, 그에 따라 내 기분이 어땠는지 알아챌 수 있다. 아무리 생각 없이 회사에 다닌다고 하더라도 점점 무뎌지는 것은 싫다. 그래서 더 촘촘하게 하루를 기억하고 하루에 있었던 작은 사건들을 기록한다.

오늘 오전에는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지난주에도 이 건으로 아침부터 세 시간이나 이야기하느라고 진이 빠졌었다. 오늘도 두 시간 넘게 회의하느라고 점심 시간이 되기도 전에 이미 피곤해져버렸다. 그래도 나한테는 좋은 회의, 마지막 회의였다.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 결과적으로는 후련하다. 간절히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왠지 같이 해야할 것 같아서, 내가 안 하겠다고 하면 상황이 어려워지니까, 그렇다고 아주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아닌, 아직 마음을 잘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미 친구들과 제주에서 사업을 하면 좋겠다고 구체적으로 퇴사 후 계획을 세우고도 있던 참이었다. 양쪽 모두 발을 담그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 전에 정확하게 마음을 정해야했다. 미안하긴 하지만 책임감과 의리로는 갈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 나는 나를 중심으로, 내가 원하는 나의 일을,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과 만들어 가기로 했다.

점심은 회사 행사 덕분에 준비된 빵과 김밥을 먹었다. 보통은 전날 불린 쌀을 가져가서 공유주방에서 밥을 해서 점심을 먹는다. 오늘도 아침에 가자마자 밥을 했는데 점심을 먹지 않았으니 밥통에 밥이 그대로 남았다. 점심 때 나온 음식이 많아서 샌드위치 하나를 챙겼고 저녁은 이걸 먹고 이 밥 그대로 내일의 점심과 저녁으로 해결해야겠다. 퇴근 전에 밥솥의 밥을 한번 휘휘 저어두었다.

오후에는 친구들과 창업을 준비하는 이야기를 시간 순서대로 정리했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4명의 친구들이 마음을 모아 일을 도모하는 중인데, 나는 거기서 기록을 담당하기로 했다. 언제 회의를 했고, 언제 만나서 시장 조사를 나갔고, 언제 어떤 결정을 했고, 이런 과정을 정리해놓으면 당연히 나중에 도움이 될 테니까. 그리고 성실한 기록쟁이인 나는 그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있어서 시장조사를 같이 못가는 데 대한 내 미안함도 떨칠 수 있다. 오후 내내 열심히 열정적인 글쓰기를 하고, 중간중간 간식을 먹고, 가끔 일도 했다. 말했듯 어제 열심히 할 일들을 다 마쳐놨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놀아도 한 점 부끄럼이 없다! 그래도 만약 근태불량으로 상사에게 지적을 당한다면 이렇게 말하겠다고 늘 시뮬레이션을 한다. “죄송합니다.”


퇴근은 5시 50분에 했다. 차가 좀 막히는지 집에 오니 6시 30이 넘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촬영해서 올릴 생각을 하니 마음이 급했다. 어제는 오자마자 저녁을 먹고 바로 일기를 썼다. 오늘은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렸다. 이불 커버를 빨고, 얇은 이불로 바꿨다. 저녁으로 챙겨온 샌드위치를 먹었다. 너무 찬 음식인 것 같아서 따뜻한 음식 달걀후라이를 했다. 밥도 다 먹고 빨랫줄에 2주 동안 널려있던 빨래도 걷어서 정리했는데도 세탁기는 아직도 돌아간다. 소음 때문에 일기를 쓸 수 없다. 그래서 <서비스 디자인 씽킹>을 읽었다.

뜬금없이 이런 책을 읽는 이유는 친구들과 시작하는 새로운 사업의 고객 분석을 위해서다. 어제도 30분 정도 책을 읽다 잤는데 오랜만에 공부하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더니 옆에 타이머를 켜놓고 읽는데도 10분마다 시계를 쳐다보게 되더라. 너무너무 지겹고 시간이 안 가고 진도도 안 나갔다. 오늘도 조금 더 읽었으면 했는데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면서 집중해서 읽었다. 빨래를 널었고, 이렇게 일기를 쓰고 있다. 이제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고, 영상을 편집하고 자면 되겠다.


https://youtu.be/JqGBQxJmYz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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