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원래 인간은 다정하고친밀한 관계를 원하니까
월요일부터 기다려왔던 금요일인데 막상 당일이 되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까지 기다려졌던가 싶다. 점심시간에는 가만히 있어도 어깨춤이 날만큼 기뻤는데 오후에는 지겹고 또 지겨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틈만 나면 땡땡이를 치다가 겨우겨우 버티고 버텨서 퇴근해서 집에 왔더니 허망하다. 이제 뭘 해야하지?
저녁밥을 챙기지 않아도 되니 할 일이 없다. 야근하는 동료의밥을 얻어먹고 왔더니 배가 불러서 저녁을 먹을 수 없었다. 어제도 똑같이 저녁을 얻어먹고 왔는데 내가 먹은 건 1인분이 아니니까 하는 마음으로 비빔밥을 해먹고선 내내 속이 불편했다. 오늘은 그래서 식사는 건너뛰고 뜨끈한 물로 샤워를 했다. 상쾌한 기분으로 샤워를 마쳤는데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좋을 게 없어서 그렇지 나쁜 건 아니었다. 낮의 좋았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기분을 끌어올려보려고 했다. 어제 일기에 등장했던 눈치 없던 친구에게 결국 말했다. 이러이러해서 내가 기분이 나빴고, 그 내용을 공개적인 일기로 썼다고. 이렇게까지 이야기할 생각은 아니었는데, 유튜브 구독자를 한 명 한 명 영업하다가 이 친구 앞에서 영업을 하기도 안 하기도 애매해진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가 요즘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유튜브를 영업하고 다니는데 이 친구에게도 언젠가 그 사실이 알려질 것 같고 (내가 입이 근질근질해서 말하고 싶고) 혹시라도 들여다보다가 내가 자기와 있었던 일을 소재로 이런 글을 썼다는 사실을 발견하면 기분이 나쁠 수 있으니까.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진심을 잘 받아주는 친구라 이야기는 잘 됐다. 진심 어린 사과와 이런 말을 꺼내준 것에 대한 감사를 길게 보내주었다. 유튜브에 대한 응원과 함께. 나 역시 민망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좋은 관계로 노력하며 나아가는 기분이 든다. 친구가 보내준 메시지를 일기장에 옮겨 적어본다. 조금 더 기분이 좋아졌으면 좋겠다.
<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지음)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 진선미 의원실에서 오랫동안 보좌관으로 일한 저자가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자세히 쓴 책이다. 생활동반자법에 큰 관심이 없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만 둔 채로 읽지 않고 있다가 반납기일이 다가와서 며칠 전에야 펼쳐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너무 재미있어서 매일밤 야금야금 조금씩 아껴 읽었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에 대한 결핍을 느끼는 내게 ‘외롭지 않을 권리’ 라는 말이 새삼 진지하게 다가온다. 농담처럼 인생은 고통이고 모든 인간은 외롭다고 말하면서 내가 외로움을 느낀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조금 촌스럽다고 생각해온 면이 있었다. 내가 느끼는 외로움이나 다정한 것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은 미숙함 때문이라고 여기며 극복하거나 사라져야 할 것처럼 여겼다. 인간은 독립적이고 개별적으로 자립해야 하는 존재인데 나는 왜 이렇게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걸까. 이 마음은 도대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이 들지만, 들지 않아야 하는 것처럼 부정하고 억눌렀다. 내가 원하는 건 결혼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도대체 뭘까.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경험한 적도 없는 다정하고 친밀한 이상적인 관계를 꿈꾸고만 있는 걸까. 나는 어딘가 이상한 게 아닐까. 그런데 책에서 저자가 말한다. 모든 인간은 외롭고, 외롭지 않을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 같은 다정한 말이다. 그래 당연한 거래. 내가 외로워하는 거,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게 본능적인 거래. 내가 이상한 게 아니래.
며칠 전 친구와, 내가 원하는 그 친밀하고 다정한 관계를 원하는 사람들은 보통 결혼이라는 계약을 통해 상대를 찾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나는 안정감을 주는 연애를 경험한 적도 없는데 결혼이라니. 내가 결혼을 통해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한다고? 아닌데.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아마도 행복하고 싶은 마음, 외롭지 않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생활동반자로 특별한 1인과의 배타적 관계를 맺을 수 있을지,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 마음이 굉장히 이상하고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는 점에서 참 고마운 책이었다.
내일은 현충일이라 상담소가 쉰다. 덕분에 이틀의 휴일이 생겼으니 더 이상 미루지말고! 할 일을 해야겠다. 쓰고 있는 책의 초고를 편집자님이 읽고 지난달에 이런저런 피드백을 주셨는데 우울증을 핑계로 계속 들여다보지 못했다. 회사 동료에게 쓰기 중독이라는 말을 듣는데 정작 써야할 원고를 쓰지 못하면 안 되니까 프로답게! 내일은 원고를 꼭 써야겠다. 오랜만에 다짐의 왕답게 다짐해본다. 쓰기 중독, 쓰는 기계라는 명성에 걸맞게 말이지.
외로운 건 당연한 거래,
미숙하거나 부족해서가 아니라
다정하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
그래서 외롭지 않을 권리가 있는 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