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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08. 2020

창문형 에어컨과 선풍기, 민소매

순식간에 여름, 순두부찌개를 끓여 먹었다

민소매를 입지 않으면 더위를 참을 수 없는 밤이 와버렸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해도 이렇게 덥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부랴부랴 선풍기를 꺼냈다. 하긴 회사에서는 이미 며칠 전부터 에어컨을 튼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순두부찌개를 끓였다. 불 앞에서 요리할 수 있는 날도 며칠 안 남았다. 감자, 버섯, 양파, 호박을 잘게 다져서 참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간장과 고춧가루를 섞은 양념과 잘 섞은 뒤 순두부를 넣고 폭폭 끓이면 완성이다. 이 정도 조리는 간단하게 느껴진다. 30분 안에 요리와 식사를 마쳤다. 순두부찌개가 끓는 동안 수박을 썰었다. 어제 잘라서 넣어둔 수박을 벌써 다 먹었다. 한 조각을 더 작업했다. 수박껍질을 버리러 나가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여름이었다.


작년에 창문형 에어컨을 샀다. 완주에 온 뒤로 계속 에어컨 없는 집에 살았고 매해 여름 다음해에는 에어컨 없이는 못살겠다를 4년 동안 반복했었다. 그러다 작년 여름, 드디어 에어컨을 샀다. 마지막 순간까지 사고 싶지 않았다. 모든 집에서 에어컨을 틀면 밖은 점점 더워질 테고 에어컨 없는 사람들은 더 힘들 어지고 지구도 뜨거워질 테고...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언제 이사가게 될지도 모르는데 에어컨 설치비도 부담스럽고... 게다가 에어컨이 놓일 자리에는 이미 옷장이 놓여있어서 에어컨을 달려면 저 옷장을 옮기든지 해야할텐데... 생각하고 고민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너무 커 보였다. 에어컨 없이 될 때까지 살아보고 싶었지만 고통스러웠던 여름이 떠올라 적당히 타협한 창문형 에어컨을 샀다.


35만원 정도였나, 아주 싼 값은 아니지만 설치가 따로 필요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시끄럽고 별로 시원하지 않을 거라며 이미 내가 주문과 결제를 마친 뒤에도 계속 환불하라던 친구 때문에 기분이 상했지만 에어컨이 생긴다는 사실은 기뻤다. 창문이 없는 집이라 창문형 에어컨을 바닥에 놓고 이렇게 저렇게 설치해봤다. 전혀 시원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더워서 견딜 수 없다고 생각한 날에는 틀어놓고 한참을 기다리긴 했다. 문을 꽁꽁 닫고 에어컨 뒤로 나가는 더운 바람이 들어오지 않도록 틈을 잘 막아야 했기 때문에 윙윙 커다란 소음이 나는 방에 서 나와 가지는 꼼짝없이 갇힌 기분이 들었다. 시원한 기분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지 화장실도 문제였다. 몇 번이나 틀어봤을까 무사히 여름을 넘기고 그 에어컨은 베란다에서 얌전히 1년을 났다. 올 여름엔 어쩌려나,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창문형 에어컨이 제 구실을 할까 걱정된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더위에도 잘 적응하지 않을까. 발리에 여행갔을 때 처음엔 숨이 막힐 것처럼 답답하다가도 며칠 지나면 그 더위가 마치 아는 더위처럼 느껴져서 견딜만 했던 기억이 있지 않니. (물론 그때도 결국 에어컨 있는 방에 머물렀다) 다행히 오늘의 날씨는 선풍기 정도로 방어할 수 있었다.


https://youtu.be/7EbIX7qyy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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