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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11. 2020

치킨, 카페, 알바, CCTV로 이어지는 이야기

오늘도 회사는 괴로웠고 브라우니는 맛있었다

오늘도 후라이드 치킨을 먹지 못했다. 치킨을 먹긴 먹었는데 주문할 때 착각해서 후라이드를 시키지 못했다. BHC의 블랙올리브가 올리브유에 튀긴 후라이드인 줄 알고 시켰는데 블랙올리브와 발사믹 소스를 기본으로 한 약간 시큼하고 달콤한 양념 치킨이었다. 실컷 먹으려고 뿌링클도 한 마리 더 시켜서 총 2마리나 시켰는데...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맛있게 먹었다. 지난 주말부터 후라이드 치킨이 먹고 싶었는데 말이지. 아마 조만간 분명 먹게 될 것 같다.


그거 말고 오늘은 어떤 특별한 일이 있었던가. 어제만큼 회사에 분노했고 어제만큼 실망했고 어제만큼 싫어했다. 딱 그정도. 익숙해진다는 건 다행인지 불행인지. 


친구가 회사로 찾아와서 같이 퇴근했다. 근처에서 라볶이를 먹고 집에 돌아와 집 근처에 새로 생긴 카페에 갔다. 전부터 한번 가보고는 싶었는데 혼자서는 잘 안 가게 되니까 분위기 파악 겸해서 들렀다. 아마 앞으로는 가지 않을 듯하다. 


우리가 뭘 먹을까 하면서 둘이 대화하고 있는데 불쑥 브라우니는 너무 다니까 달지 않은 허브티 종류를 같이 드시면 좋을 거에요. 라고.. 누가 물어봤나요? 이렇게 낄 데 안 낄 데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사들 같음. 그리고 카페 내부의 분위기도 전체적으로 애매하다. 층고가 높고 시원시원하고 식물이 많고 단순한 인테리어는 괜찮은 편인데 뭐랄까 있어보이라고 디스플레이해 놓은 영어 원서 책들, 화병에 꽂아둔 조화, 테이블 위에 무심한 듯 시크하게 놓아둔 원서 책과 그 위에 튤립 조화. 뭔가... 인위적인 인스타 이미지 같아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손님은 없어서 조용하더라만. 가벽을 세워서 보이지 않는 카운터 뒤쪽으로 들어가서 매장에 사람이 보이지 않게 하는 건 컨셉일까 일하는 사람을 위한 구조일까. 뭔가 요청사항이 생길 때 부르면 되니까 크게 문제는 없나. 가게에 있을 땐 편하기도 하고 신경 안 쓰이기도 했다가 나갈 때 그냥 나가면 되나 하고 조금 어색했다. 역시 매장에 사장이 한 시라도 한 눈을 팔면 안되나 생각하며 나오긴 했지만 그건 아닌 거 같다. 음료를 제공하고 나는 그 음료를 마시고 그 공간을 이용하는 거니까 굳이 일하는 사람이 내 눈에 항상 보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짜피 일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할 일없이 그냥 앉아서 휴대폰이나 들여다보게 될테니까 좀 편하게 숨어 있어도 되지. 매장에 도둑이 들거나 무슨 일이 생길까 지켜보는 게 아닌 거라면. 


매장 도둑 이야기를 하니까 전에 일하던 카페에서 어느날 갑자기 사장님이 CCTV를 설치해서 기분 나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입구에서부터 카운터를 향해 설치해놓고 본인이 자리를 비울 때 찾아오는 손님을 식별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었다. 뭐 다른 여러 가지 이유, 안전상의 이유로 기록하는 것도 맞긴 맞았는데 일하는 사람을 늘 비추고 있고, 금고를 비추는 건 기분이 나빴다. 그래서 출입문을 비추는 걸로 바꾸기는 했었는데 썩 좋지 않은 기억을 남아있다.


그보다도 전에 게스트하우스 청소일을 할 때는 매니저가 청소 업무를 잘하는지, 태만하는지를 감시하는 용도로 썼다. 할당한 업무를 일찍 끝내면 더 시키기도 하고, 어디 안 보이는 데서 쉬고 놀고 있는지 확인하려는 용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지. 


지금 우리 사무실에도 출입문 세 곳에  CCTV가 있다. 위험한 인물의 출입을 차단하고 안전을 위해 예방 차원에서 기록용으로 설치한 것이기는 한데. 나의 출퇴근 모습, 깜빡하고 퇴근 후나 휴일에 들어오는 모습, 업무 시간 중간중간에 쉬러 나가는 모습이 다 찍히겠지. 흠. 별로다.  


오늘의 일기는 치킨에서 시작해 후식 카페, 카페 알바의 추억, CCTV로 이어지는 한 문장 뒤도 예측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전개다. 회사의 괴로움을 집까지 끌고 오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참 훌륭하다 나여. 

그나저나, 금요일의 후라이드 치킨만을 기다리며 일주일을 내내 버텨오다 하루를 참지못하고 오늘 먹어버렸다. 그치만 내일은 상상속의 금요일이 아니고 진짜 찾아온 금요일이니까 괜찮겠지. 잘 견딜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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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R4RGxVd38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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