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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12. 2020

미워하지 않겠다는 다짐, 사랑하는 친구를, 그리고 나를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마음

오늘도 역시 엄청 괴로운 하루였다. 회사의 무엇이 그렇게 싫을까, 많은 직장인들이 힘들어하는 걸 보면 회사라는 건 원래 그렇게 이상한 고통의 현장인 걸까. 예전 회사 다닐 때를 떠올려봐도 괴롭기 짝이 없는데 결국 인생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것이로구나. 하고 생각이 정리되고 만다. 정말 이렇게 인생은 고통스럽기만 한 건가요?


방금 이 문장 ‘정말 이렇게 인생은 고통스럽기만 한 건가요?’를 적는데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덜 고통스러우려고 상담도 받고, 일기도 쓰고, 편지도 쓰면서, 어떻게든 시간을 견디는 건데 그냥 버티고 견디고 참는 거 말고 인생을 덜 고통스럽게 만들 수는 없는 걸까. 그냥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않는 것만이 답인 걸까.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평소에는 좀 거슬리기만 했던 것들도 참을 수 없다. 밖에서 들려오는 소음이나 어질러진 방이나 옆 사람의 듣기 싫은 한숨이나 목소리 같은 것들. 최악인 순간보다는 확실히 나은데 완전히 무너지지 않고 이 정도만이라도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내가 불현듯 안쓰럽다.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 같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고 잠을 푹 자고 아름다운 걸 보고, 좋은 사람과 함께 있는 그런 순간이 나를 안정시킬텐데. 고통의 한켠에서는 뭘 먹어도 맛이 없으니 돈 아끼게 먹지 말아라, 잠이 안 오니 휴대전화를 붙들고 재미없어도 트위터나 봐라, 아름다운 산이나 바다로 갈 시간과 돈을 아껴라, 좋은 사람이 어디 있냐 다 너의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는 거다.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이런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를 물 때는 당장 끊어내라고 상담선생님이 말씀하셨지.


오늘 있었던 일 중에 좋은 걸 생각해보자. 아니 오늘이 아니더라도 기억 속에 떠오르는 좋은 풍경. 맑고 맑은 여름의 하늘 같은 거? 며칠 전 출근길에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멍하니 있는데 하늘이 정말 맑고 높고 아름답더라. 새삼스럽게 신기할만큼.


여름 하늘은 이렇게 아름다웠던가. 정말 가고 싶지 않은 회사지만 그래도 하늘이 이렇게 아름다워 보이기는 하네. 아직 그래도 아름다운 걸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마음은 남아있나보다. 다행이다 싶었다.


며칠 머물다 오늘 서울로 돌아간 친구가 남겨둔 메모도 찡했다. 오래 보아온 사이가 주는 안정감이 있으니까. ‘나도 마음에 안 드는 어떤 점을 그냥 어떤 평가도 하지 않고 그냥 봐주는 마음이 고맙다.’ 그렇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안타까워도, 조금 듣기 싫어도, 안 그랬으면 하는 마음이 들어도 그냥 기다린다. 우리는 친구니까. 너를 미워하지 않겠다는 다짐 정도만 한다.


모임에 갔어도 재밌었겠지만, 내일 아침 일찍 상담도 가야하고, 오후에 워크숍도 해야하니 오늘 무리하면 안 될 것 같아서 퇴근하자마자 집에 왔다. 오자마자 세탁기를 돌려 빨래를 시작했다. 어제 먹고 남은 치킨 (후라이드가 아니어서 아쉽지만)을 냉장고에서 꺼내 오븐에 굽고, 치킨이 데워지는 사이에 수박을 썰고, 음식물 쓰레기도 내다 버렸다. 절묘하게 시간 낭비 없도록 착착 움직였다. 그리고 치킨과 수박을 다 먹을 때쯤 빨래가 끝났다. 빨래를 널고 샤워를 하고 내일 만날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 받았다. 유쾌한 대화와 농담을 하고 기분 좋게 소파에 누워있었다. 모임을 가졌던 다른 친구들도 좋은 시간을 보낸 모양이다. 조금 아쉽고 미안하고 부럽기도 하지만 다 가질 순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다.


회사에서는 할 일이 별로 없어서 다음주 다다음주의 일을 끌어다 미리미리 했다.


주초에 보냈던 원고는 편집자님이 보시고 다시 수정과 보완을 해보자고 하신다. 여전히 막막하긴 하지만 어떻게든 해봐야지.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는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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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ZZITdIfM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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