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행보_完州行步17
Do It Ourselves, Do It Togither 우리 함께 만들어요
신발장이 생겼다. 만든 이가 붙인 제목은 임시방편 신발장, 옆에서 구경하던 직장 동료들은 1년 안에 무너진다 아니다 신발은 가벼우니까 괜찮을 거다 등등 내가 관심이 있든 없든 말을 보탠다. 그러다 보스 ㅂ이 긴 나무를 주워와서 뚝딱뚝딱 뒤에 하나 박아준다. 이렇게만 지지해줘도 흔들리지 않아서 완성도가 높아진다고. 점심 먹으러 나가는 길에 회사 트럭에 싣고 가서 집에 두고 왔다. (점심 먹으러 가는 길에 거의 매일 집을 지나간다)
신발장은 폐팔레트로 가구 만들기 워크숍에 참석한 교육생들이 만들어줬다. 도시에서도 내가 찾아가는 곳마다 얼추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고 여기서 본 사람 저기서 또 보는 일이 다반사다. 시골은 생활 반경이 좁고 사람 수도 훨씬 적으니 그 강도, 빈도가 훨씬 더하다. 교육 프로그램이나 장터 행사에 가도 다 아는 사람, 그냥 길을 걸어도 아는 사람, 장을 보러 가도 아는 사람이다. 내 신발장을 만든 이들도 다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친구 ㄱ의 남자친구가 왔다가 신발장을 만들자는 내 성화에 같이 이렇게 저렇게 의견을 나누다가 거의 다 만들어줬다. 아는 동네 언니, 동생, 친구들이 돌아가며 사포질 하고 보조 목수로 작업을 도와 어쨌든 완성. 나는 마지막에 급하게 보스 ㅂ이 덧대느라 삐져나온 부분만 톱질하면 된다. 내 손이 간 부분은 이것뿐이라 직접 만들었다고 말하기 민망하다. 그래도 돈을 주고 완제품을 산 게 아니어서 뿌뜻하다. DIY 아닌 DIO.
목공 워크숍 강사인 ㅅ 선생님께는 조리대 겸 식탁으로 쓸 탁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에 짬을 내어 만들 수 있게 준비는 다 해주셨는데 아직 만들지는 못했다. 탁자도 만들고 싶고, 신발장도 만들고 싶고.... "폐목재라 아주 깔끔하진 않을 텐데.... " 선생님은 "집안에 들일 가구를 하나도 안 사고 다 만드실 건가 봐요?"라고 묻는다. 네. 돈도 없고 만들 수 있다면 만들고 싶어요. (속으로 삼킨 말은 너님이 만들어주시면 제일 좋고요. 근무시간에 업무도 봐야 하고 신발장도 만들고 싶어서 왔다 갔다 하며 내가 정신을 못 차리자 까짓 신발장 얼마나 한다고, 플라스틱으로 된 거 제가 하나 사드릴게요, 라며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꺼내는 시늉까지 하신 바로 너님이요.)
ㅅ 선생님이 필요한 길이만큼 잘라 맞춰 놓은 내 귀한 목재는 사무실 한 켠에 잘 보관되어 있다. 여러 사람이 드나드는 곳에선 까딱하면 다른 작업자가 모르고 나무를 갖다 써버릴 수도 있으니 커다랗게 이름도 써붙여뒀다. 이제 언제고 ㅅ 선생님이든, 훈수 두길 좋아하는 직장 상사들이든, 혼자서도 잘하는 동료 ㅈ 님과든 함께 만들기만 하면 된다.
정말로 돈이 없기도 하지만 굳이 식탁이나 침대를 사고 싶진 않다. 꼭 필요한 것만 집안에 들일 거다. 침대는 원래도 없이 지냈으니 이불로도 충분하다. 싱크대가 작으니 조리대도 겸할 수 있는 탁자면 된다. 탁자를 나란히 두 개 놓아서 필요할 땐 하나 떼 옮겨서 책상이나 협탁으로 쓸 생각이다. 의자는 친구들이 만들어줘서 이미 2개 확보했다. 여행을 다닐 때도 불편하더라도 적게 쓰고 오래 놀며 지냈으니 살림도 적게 쓰며 느리게 살고 싶다.
당장 챙겨온 신발이 운동화와 여름 샌들 두 개뿐이어서 샌들을 슬리퍼로 사용한다. 출퇴근용으로 사용한 샌들을 베란다에 빨래 걸러 갈 때 들고 와서 신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다시 현관으로 들고 와서 신고 나간다. 슬리퍼가 두 개면 하나는 베란다에, 하나는 현관에 놓고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수고로움을 감당할 수 있다면 굳이 두 개 있을 필요가 없겠더라. 몸을 더 움직이고 시간을 들이면 된다.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가 줄어들지만 그렇게 돈을 들여 몸이 편하고 바쁘게 살아서 생긴 시간을 어디에 쓰는고 하면 그렇게 살기 위해 돈을 벌거나, 그렇게 사느라 지친 심신을 달래는 데 돈을 쓰며 산다.
적게 쓰고 느리게 사는 생존 기술
아침에 한 시간씩 걸어 출근하면 별도로 러닝머신 위를 달리며 운동할 시간을 대신할 수 있다. 평소에 강둑길을 걸으며 꽃을 보고 새를 보면 휴가 때 굳이 아름다운 자연을 보러 멀리 안 가도 된다. 지난 세월 여행을 삶처럼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삶을 여행처럼. 가진 것 없이도 행복할 수 있게 살아보려 한다. 주변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것들에 감사하면서, 여행자의 기적처럼 예측 불가능한 행운을 기대하면서. 여기서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을 진심으로 대하면서도 여느 여행처럼 느슨하게. 오늘 아침 시간에는 커피콩을 볶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