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와글와글, 시골 게스트하우스

완주행보_完州行步18

by badac

지난주에는 손님이 많았다. 한 명 한 명 찾아와 집에 온기를 불어놓고 갔으니 ㅂ말대로 집들이였던 셈이다. 주말부터 월요일까지는 부산 친구 ㅇ이 다녀갔다. 살갑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는 아니지만 언제고 찾아온다면 환영하는 사이, ㅇ은 직장을 그만두고 잠깐 쉬는 중이다. 늦잠은 잘 수 있지만 미뤄뒀던 약속들과 취미생활로 바쁜 백수 시절을 보내는 듯하다. 여기로 오는 것도 빡빡하게 짜인 일정과 일정 사이 짬을 냈다.


회사 생활보다야 노는 게 즐겁지만 소속이 없다는 불안과 지갑이 얇아지는 현실에 직면하면서 아주 속이 편하지 만은 않을 터, 바람이나 쐴 겸 먼 길을 나섰다. 부산에서 버스를 타고 전주로, 전주에서 다시 완주로. 토요일 저녁시간에 겨우 만나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나는 세상의 모든 직장인에게(경험 삼아, 추억 삼아) 퇴사를 권하고 장기 백수기간 갖기를 추천하지만 백수의 불안도 이해한다. 이해한다고 특별히 해줄 것은 없다. 함께 읍내에 나가 장을 봐 밥상을 차렸다. 그리곤 각자 할 일을 하면서 나른하게 휴일을 보냈다. 월요일 출근길에 작별인사를 하고 내가 회사에 간 사이 ㅇ은 알아서 집으로 돌아갔다.

18_두사람밥상.jpeg 두 사람을 위한 밥상. 직접 쑨 도토리묵도.

ㅇ이 떠난 날 저녁, 나를 여기로 부른 것과 다를바 없는 지역 친구 ㅁ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주말에 사 둔 식자재도 많이 남았고 어제 만들어 본 스파게티가 제법 괜찮아서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내 집에서 정식으로 대접한 적은 없으니까 겸사겸사. 결과는 어제보다 더 맛있는 스파게티.


화요일 오후에는 제주 사는 ㅂ이 갑자기 다녀갔다. 육지 나온 김에 들를까 말까 고민하는 걸 오라고 꾀어 배를 타러 목포로 가는 길에 휴게소인양 우리집에 들렀다. 그제와 어제 먹은 스파게티를 업그레이드하여 대접했다. 그리고 읍내 커피숍으로 드라이브도 다녀왔다. 내가 제주에서 들를 집이 있는 것처럼 여기 전라도에 들를 집이 된 사실이 기쁘다. 돌아다니면서 살았던 지난 4년 간은 늘 찾아가 꿀을 빨고 신세를 지는 벌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꽃이 될 수 있겠다. 그동안 나를 맞아주었던 전국의 친구들이여. 어서 오세요.


특히 그날엔 다른 친구 ㄱ이 보낸 집들이 선물(내가 가격대별로 옵션을 주어 요청)이 도착해서 함께 설치하고 꾸몄다. 실내용 방한텐트다. 혼자였으면 애먹었을 텐데 다행히 둘일 때 와서 벽에 그림도 붙이고 텐트에 (또 다른 친구에게) 선물 받은 장식도 달고 발리에서 사 온 천도 얹었다. 여행 다닐 때 여러 사람들에게 잠자리와 음식과 마음을 받으며 살아온 것처럼 여기서도 역시 친구들의 선물로 내생활이 채워진다. 그렇게 채우고 내가 또 마음을 내고 그렇게 서로 드나드는 삶을 살고 싶다.

18_핑크텐트.jpeg 에어비앤비에 핑크방으로 등록할 예정이다

다음은 수요일, 아직도 스파게티 재료가 남았다. 서너 종의 버섯을 넣은 오일 파스타였는데 2~3인분 정도는 더 할 수 있겠다. 피곤하니 하루 쉬고 내일 늘 고마웠던 직장동료 ㅈ을 초대해야지. 그런데 내일보단 오늘이 낫다고 하네. 그래 며칠 연속 같은 음식을 먹는 게 대수냐, 조금씩 달라지고 있으니 나는 물리지 않아, 언제나 맛있어. 그렇게 4번째 파스타 요리, 저녁식사 대접, 맛있게 냠냠. 진짜다. 하루하루 더 맛있어졌다.


그러던 금요일, (다행히 하루 쉬고) 서울 친구 ㅇ가 전화해서는 토요일이건 일요일이건 내려오고 싶단다. 언제나 환영이지. 내가 어디에 있건 꼭 놀러 와 주는 고마운 친구다. 네 마음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금요일 오후에 회사 옥상에서 시골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주말에 놀러 가도 되느냐 물었을꼬. 직장인이란 이렇게 대단한 존재다. 백수들의 불안한 자유가 내 적성에 더 맞기는 하지만 이렇듯 묵묵히 하루하루를 버티는 직장인의 근성은 내게 없는 다른 종류의 능력. 월급의 노예가 되어 비루한 삶을 산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성실히 자기 몫을 해내는 어른을 존경한다.


토요일은 자급생활 실천과 과외 수입을 위해 장터에 장사하러 나가는 날이어서 ㅇ을 바로 그곳으로 불렀다. 장이 파할 때쯤에나 도착했지만 토종씨앗모임 코너에서 씨앗도 얻고 경품 추첨할 때 상품도 탔다. 지역 친구 ㅁ이 초대받아 얼떨결에 나도 초대받은 귀촌인 모임에 내 동행인으로 참석해 귀한 오골계 백숙도 얻어먹었다. 일요일에는 읍내에서 제일 커피가 맛있는, 도시처럼 세련된 커피집에 가서 도시 여자들처럼 노트북 켜놓고 나란히 앉아 각자 자기 일을 봤다. 그리곤 오후에 떠났다.


9시에 자던 내 시골생활이 친구들 방문으로 10시, 12시, 11시 이렇게 늦어졌다. 친구가 떠나는데 마음이 들썩여서 어제는 나도 전주로 나가 외식하고 외박했다. 일찍 잠들고 평온한 나날이 여유롭고 행복했는데 친구들이 찾아오고 밤늦게까지 수다 떠는 와글와글한 며칠을 보내니 이거 참, 너무 좋은 거다. 누군가에게 가고 싶은 장소가 된다는 건 참 행복한 일, 찾아와 주어서 고마워요. 친구들. 보고 싶어요.

18_새들.jpeg 어서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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