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외로운 시골살이

완주행보_完州行步19

by badac
무섭도록 아름다운 보름달

원래 밤은 이렇게 조용했는데, 며칠 누군가와 함께였다 오랜만에 혼자가 되니 그새 이 고요가 적막하게 느껴진다. 방에 온기가 필요한 거 같아 보일러를 한참 돌렸다. 때마침 베란다 샷시문이 고장 나서 문이 꽉 닫히지 않는다. 바람에 문이 덜컹이고 찬바람이 들어온다. 잠들 때야 스윗마이핑크텐트 속으로 쏙 들어가면 되지만 평소처럼 9시에 잠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는다. 퇴근하자마자 기운 내려고 마신 에스프레소 때문인지 달거리 기간이 다가오기 때문인지 적적함 때문인지 두어 시간을 뒤척이다 결국 따뜻한 차 한잔을 끓여 마시곤 이렇게 자리 잡고 앉았다. 마음을 안정시켜준다는 향초도 켰다.


긴긴밤 할 일이 없어 심심하고 무료하고, 그러다 보니 외로워져 버리기 때문에 시골생활이 힘들어진다. 동거인도 동네에 사는 친구도 없는 나는 옛애인에게 자니, 를 시전 할 뻔. 새나 짐승이 내는 소리 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건 신비롭고 고마운 경험이지만 계속 되면 지긋지긋한 고독을 견뎌야 한다는 고통의 시간이기도 하다. 너무 캄캄해서 산책을 갈 수도 맥주 한 잔 사러 나갈 수도 없다. 원래 술을 마시지 않으니 사다 놓은 술도 없다. 이럴 때를 대비해 와인이라도 한 병 사둬야 하나 싶지만 그러다가 매일 밤 잠들기 전 홀짝 거릴까봐 걱정된다.


여기선 해가지면 6시든 7시든 캄캄해져서 밤생활이라는 게 없다. 특히나 나는 자가용이 없어서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오면 다시 나갈 수도 없고, 아직 어둠 속을 걸어다닐 용기는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밝을 때 집에 들어오려고 한다. (원래 시골사시는 분들은 어둠 속에서 곧잘 걸어다니시는지도 모르겠지만 밖에 나가지 않으니 확인할 수가 없다. 아마 안 그러실 것 같다.)

여기로 내려온 지 두 달 만에 처음으로, 이 집에 산지 40여일 만에 처음으로, 쓸쓸하다. 앞으로 이런 날이 더 많아질 것을 알기에 슬픔이 조금 더 커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익숙하지 않은 소리에 깜짝깜짝 놀란다. 쥐 같은 게 있을 리 없는데 천장 쪽이 바스락거리고 엘리베이터 작동되는 소리도 크게 들린다.

적적한 밤에 마시는 밀크티

갑자기 울컥할 만큼 새삼스럽다. 그래,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어. 마냥 좋기만할 리가 없지. 평화로운 시골살이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스님 같은 하루가, 꽃길을 걸어 느리게 출근할 수 있는 생활이라고 좋기만 할 리가 없지. 오늘같은 어느 밤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벌벌 떨기도 하고,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면서 긴 밤을 견디기도 해야 하는 거겠지. 꼭 필요한 것들을 사지 않고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소박하게 살고, 이렇게나 전망이 좋은 집에 가구 하나 없이도 만족하며 대부분의 시간은 행복하다. 그렇지만 늘 그렇지는 않다.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그 외로운 시간이 두텁고도 딱딱하다. 꿀꺽 삼켜지지도 쉬 녹아내리지도 않는다. 지나 갈 때까지, 사라질 때까지 , 흘러가길 기다릴 뿐.


언젠가 배가 고파 일찍 깼던 아침에 마땅히 먹을 게 없어서 라면 하나를 끓였다. 아직 작은 상 하나도 들이지 않고 급하게 회사에서 챙겨온 양은 냄비 하나뿐이던 그때,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라면을 먹었다. 조금 눈물이 났던 것도 같다. 그리고 오늘 같은 밤이 찾아왔다. 꼬박꼬박 쓰던 일기도 쓰기 싫고 그저 눈 감고 잠들어버리고 싶은 밤, 누구랑 깔깔거리며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고 싶어서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다가 억지로 잠을 청하는 밤, 그런데 결국 뒤척이다 잠들지 못하고 일어나 새벽까지 이렇게 앉아 있는 밤. 덕분에 주말 내내 쓰지 못한 글을 쓸 수 있으니 이 역시 나쁘지만은 않다고 해야 하겠구나. 내일 아침 일어나 부끄러울 지도 모른다는 점에선 좋지만도 않지만. 아이고, 참 복잡하다. 모든 건 왜 이리 다 한 편으론 좋고 한 편으로 나쁘냐. 그럼 좋다 나쁘다라는 말조차 붙일 수 없는 거 아닌가. 어쨌든 나는 오늘 처음으로 그 녀석을 만났다. 시골 밤의 외로움.

어떤 날은 뿌옇고 어떤 날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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