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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우선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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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26. 2020

밖에 나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리기도 한다

달리고 싶었지만 오늘은 참고, 조만간 달리러 나가자.

11시 20분쯤 퇴근했다. 점심시간까지는 어떻게든 있다가 오려고했는데 할 일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출근하자마자 처리하고 정리해야할 일은 사실 10시 30분이면 끝났고, 상사가 결재를 해주면 뒤처리 정도를 하는 건데, 급한 것도 아니고 해서 독촉하지 않고 10시 30분부터 한 30분 휴게실에서 잠깐 쉰다는 게 깜빡 잠이 들었다. 부랴부랴 사무실로 돌아와보니 상사는 결재를 하지 않고 외근을 나갔길래 그냥 퇴근했다.

오늘은 좀 피곤하다. 오전에 한 시간, 집에 오자마자 한 시간, 점심 먹고 좀 쉬다가 한 시간, 총 세 번에 걸쳐 낮잠을 잤다. 자도 자도 피곤이 풀리지 않는 이상한 기간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그럴 때도 있는 거겠지. 너무 몰아치듯 영양제 먹으면서 일했던 시간들도 있으니까 이렇게 회복이 필요한 날들도 있을 것이다. 상황판단이 잘 안되어서 다음 주 서울 일정 동선을 어떻게 짜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 같으면 병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편집자님도 만나고 볼일을 잔뜩 볼 텐데 기력이 없으니 그냥 가서 강연만 하고 오는 데도 벅찰 것 같다. 저녁 일정이라 이틀을 휴가 냈다. 간 김에 병원은 좀 들러보고 싶은데 그럼 밤늦게 언니집에 와서 자고 다음날 먼길 떠나서 병원 갈 일이 좀 깝깝하기도 하고, 일단 생각하기 싫어서 기차표 예매도 안 하고, 병원 예약도 안 했고, 언니한테는 진작에 자러 간다고 말만 해두었다. 내일 상담 다녀와서 천천히 생각해봐야지. 강의료에 차비가 포함되어 있느냐 있지 않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차비가 나오면 기차 타는 데 부담이 덜하고, 안 나오면 좀 오래 걸리더라도 버스를 타고 가도 된다. 어짜피 기차역까지 가는 것도 피곤한 일이라서.

집에서 계속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데 배가 계속 출출하고 입이 심심했다. 오징어를 다리만 구워 먹었다가 사과를 하나 깎아 먹었다가 감자를 쪄서 먹었다가 잠시 후에 다시 또 감자를 먹고 오징어 몸통 남겨둔 걸 먹고 사과를 먹고 양배추를 먹고...먹고 먹고 또 먹고...

배가 몹시 불렀고 이제 잠은 안 오는데 뭔가 머리가 조금 아팠다. 나가서 좀 걸으면 나으려나,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것도 지치는 일이라 가볍게 나가서 걸었다. 팟캐스트 필름클럽을 들으며 집 근처 공원을 걷다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다리가 조금 아팠다. 그래도 종일 집에서 누워서 먹고 자고 먹고 자고만 했다는 무용한 기분은 덜했다. 그런 기분을 느끼지 말자고 그렇게 다짐하는 데도 잘 안된다. 그래도 나가서 걷는 건 좋은 일이니까. 기운이 없다고 너무 누워만 있어도 안 된다고, 적당한 운동은 좋은 거라고 그랬다. (아마도 의사 선생님이나 트레이너 선생님이) 걷다보니 뛰고 싶은 마음도 조금 생겼는데, 지금은 배도 너무 부르고 몸에 기운도 없는데 뛰다가 뭔일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되어서 그냥 내내 공원을 걷기만 했다. 일요일에는 조금 뛰어봐도 좋을 것 같다.

작년에 봄에는 정말 하루에 3~4킬로씩 뛰었고, 하프 마라톤도 나갔었는데 그것도 바짝 한 달이었다. 여름 지나고 다시 기력이 차오르기 시작하면서는 조금씩 걷고 조금씩 뛰었다. 제주, 대만 출장 갔을 때도 런닝앱을 켜놓고 달려서 로그가 쌓이는 게 제법 기분이 좋았다. 올해도 언젠가 그런 날이 오겠지. 달리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니까.

8시에 집을 나섰는데도 온 사방이 환했다. 그리고 하늘에 달이 보였다. 그냥, 그 장면이 아름다워서 울컥했다. 아프고 우울하고 서롭고 괴로운 날들이지만 달은 아름답다. 나는 이렇게 서늘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 그 자체만 생각하면 꽤 벅찬데 왜 그렇게 삶이 별로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하늘이 달이 참 좋았다. 그냥 괴로울 때는 집안에만 있지말고 그냥 하늘을 달을 바라보러 나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걷거나 달리기 힘든 날은 운동화를 신고 밖에 그냥 앉아있다가만이라도 오라고했었으니까. 다리가 아픈게 뭔가 하루를 뿌듯하게 보낸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잘 자고 내일 상담 잘 다녀오면 좋겠다. 지난 주에도 상담을 쉬어서 내일은 상담을 가고 싶다. 먼길이라 피곤할테고 사람 많은 기차역과 기차, 수도권에 가는 게 걱정이긴 하지만 마스크 잘 끼고 손 잘 씻고 다녀와야지. 언제까지 이렇게 집에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페이스북에 우선쓰소 이야기를 쓰고 친구들에게 구독을 요청했더니 구독자가 늘어서 70명이 되었다. 얏호.  


https://youtu.be/IturLgpXWV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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