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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n 25. 2020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불안함을 견디라

그 누구보다도 나를 가장 소중하게 아끼고 보살피라

오늘은 낮잠을 자지 않았다. 어제 너무 불안하고 무섭고 서럽다고 아파서 걱정된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은 또 그만그만한 하루였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고맙기도 하고 무료하기도 하다. 


출근해서 정신없이 일을 했다. 근무 시간도 짧고, 자리를 비운 어제 오후부터 밀려 있는 일도 있고, 급하게 처리해야할 일도 있다. 아주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은 아니지만 나는 뭐든 미리미리 해치워야 마음이 편한 사람이니까 옆자리 동료와 사담을 나눌 시간도 없이 출근하자마자 일을 한다. 꼭 해야하는 일을 하지 않은 채로 오후에 들어가서 쉰다는 말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집중해서 일을 처리하고 나면 고작 한 시간 정도가 지나있다. 다른 부서와 협업해야 하는 일, 사업 참여자 등 시민들을 대상으로 안내하거나 대응해야 하는 일처럼 시간을 기다리면서 해야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집중하면 후다닥 끝난다. 


주5일 하루 8시간의 근무에 회의적이다. 자기 일만 제대로 처리하면 상관없는 유연근무제를 하자고 말을 꺼내봤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일이 많을 때는 맨날맨날 야근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을 하고 진짜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데, 일이 없을 땐 그냥 없는 대로 시간을 죽이면서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일정 관리가 되지 않아서 일이 몰리고 바빠지는 건 전적으로 관리자의 무능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화가 많이 난다. 이번에도 미리미리 준비했으면 좋았을 이런저런 일들을 끝까지 붙들고 있다가 결국 이렇게 급하게 나도, 내가 협업해야 하는 다른 사람들도 곤란하게 되었다. 일이 원래 다 이런 거라고 이야기하겠지. 그러면 내가 이상한 건가 하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단연코, 이것보다 덜 나빠지게 할 수 있었다.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오전 내내 집중해서 일하고, 오후에는 들어가서 쉰다. 일이 있으면 당연히 내가 집에서건 남아서건 알아서 처리한다. 업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이 나에게도 주어진다면, 서로 협의하에 적절하게 나누고 구분한다면 정말 잘할 자신이 있는데 이 회사에서는 절대절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연말 계약기간이 종료될 때까지는 지금처럼 몸을 사리며 일해야 할 거다. 내가 받는 월급만큼은 충분히 하고 있다. 


가만 있지 못하는 내 성격도 늘 마음에 들지는 않는다. 오늘도 집에 와서 낮잠도 안 자고, 가만히 선선한 바람을 쐬면서 고양이랑 놀아주고 있다보니 뭐라도 해야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 스물스물 생겼다. 책이라도 읽던가, 영화라도 보던가, 뭐라도 생산적인 일을 해야만 할 것 같은 그런 조급함... 많이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런게 아니었다. 어쩜 조금 기력이 돌아와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다정한 친구가, 몸이 이유 없이 아프고 계속 잘 회복이 되지 않는다면 입원을 해서 요양을 해보는 걸 추천했다. 한의원 같은 데서 해주는 밥 먹고, 이런 저런 치료를 받으면 기력이 돌아올 거라고. 근데 정말 내 안의 K유전자는 뭘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이 먼저 든다. 지금도 이정도밖에 안 아픈데 병가니 단축근무니 하고 있는 게 왠지 약한 척하는 것 같고... 아니다! 약한 거다. 쓰러지기 직전에만 쉬는 게 아니라 미리미리 몸이 제 기능을 못하는 거 같으면 내가 알아서 몸을 사리고 쉬어주는 것. 남들보다 내가 제일 먼저 나를 아끼고 챙겨야 하는 것. 언젠가 사놓고 먹기를 까먹었던 프로폴리스도 다시 꼬박꼬박 챙겨먹어야겠다. 


오늘은 월급날이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렸는데 기력이 없기는 없는 모양. 월급이 들어오면 들어오는 갑다, 하는 마음이다. 그래도 가계부를 써야지. 돈을 보면 기운이 좀 날 테니까. 내일은 금요일이고, 토요일에는 드디어 상담을 간다. 토요일 상담길이 멀고 험해서 또 기운이 빠지겠지만 그래도 상담은 가고 싶으니까. 내일도 몸 사리면서 조심조심 하루를 살아야겠다.   


https://www.youtube.com/user/slowbad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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