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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멈추고 행동을 합시다

by bad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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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상담선생님과 온라인으로 만난다. 2년 간 해오던 상담을 지난 6월쯤 종료했다가 마음이 좋지 않아서 다시 시작했다. 상담을 시작할 무렵 무기력, 의욕 없음, 불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갑갑함, 괴로움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걸 어렴풋이 알아채기 시작했다. 유독 봄과 여름이 힘들고 선선한 가을이 오면 제법 괜찮아 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괴로운 시기에 덜 괴로울 수 있을까? 기력이 있을 땐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하고 싶은 것도 잔뜩인데 그렇지 않을 땐 사는 게 의미 없다고 느껴진다. 정신과 진단을 받은 적은 없지만 조울증 비슷한 것이겠거니 생각한다. 아는 분과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병원에서 진단을 받은 건 아니군요.’라고 해서 뭔가 자존심이 상했달까? 전문의의 진단서가 있으면 꾀병 아니고 ‘검증 받은 우울증 환자’가 되는 것 같아서 상담 선생님과 병원에 가는 건에 대해 이야기 나눈 적도 있다. 가면 바로 진단 나올 거라고, 그런데 ‘당신이 원하는 게 진단은 아니지 않냐, 행복하게 사는 것이 아니냐’ 해서 병원을 가보진 않았다. 오랫동안 지켜본 선생님이 약물치료가 필요하다면 진작 병원을 권해주셨겠지. 상담을 해서 뭔가 확 달라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안 하면 힘들고, 아직도 매 시간 어지러울 정도로 울고, 가끔 선생님의 질문과 지적에 멍한 기분이 든다. 마음의 근육 같은 게 생긴 듯한 기분도 들고, 올해는 여름에 예전처럼 힘들진 않았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으면 나아진다고는 하는데 병원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가 싶기도 하다. 지금 이 상담 선생님도 어떻게 찾은 선생님인데 다른 사람과 처음부터 또 맞춰갈 생각을 하니 피곤해서 어지간하면 이 선생님과 계속 해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이 극단적인 감정의 파도를 잔잔하게 만들까 아니면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파도를 탈 수 있을까. 모르겠다.


9월부터 좋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더니 여전히 별로다. 나는 의미도 재미도 없는 날들을 꾸역꾸역 겨우 버티고 있는데, 누구는 좋은 사람들에 둘러싸여 행복에 겨워한다. 누구는 차근차근 자신의 꿈을 찾아 도전하고 성공이든 실패든 차곡차곡 경험을 쌓고 성과를 낸다. 누구는 설레는 출발을 앞두고 누구는 무심한 듯 성실하게 꾸준히 자기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간다. 끼고 싶은 자리가 없어서 엉거주춤 겉돌았더니 이제 낄 자리도 없다. 나를 찾는 곳이 없어서 서럽고거절했던 자리를 멍하게 바라보다가 질투심과 소외감에 흠칫 놀란다.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한 마음, 발이 묶인 것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는 마음, 뭘 원하는지도 알 수 없는 막막함. 활력, 생기,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상황. 진지하게 붙들고 한 가지 생각을 깊게 하는 것도 아니고 오만가지 부정적인 감정들이 번개처럼 스친다. 다 부질없다. 어떻게, 그럼 도대체 뭘 어떻게 해.


지금은 생각을 하면 모든 게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때에요. 일단 뭐라도 할 일이 있으면 몸과 마음, 머리가 움직이는 경향이 있으니 일부러라도 일을 만듭시다. 오늘도 상담 약속이 있으니 상담 때 무슨 이야기를 할까 생각한 것처럼요. 사람을 만납시다. 누구한테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하고,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어디 가고 싶으면 갑시다. 조금이라도 그런 마음이 들면 일단 합시다. 밖으로 나가서 접촉면을 늘립시다. 활동량을 늘립시다.


상담 끝나고 보고 싶은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부터 간간히 떠올랐던 사람. 간단한 안부 인사를 주고받자마자 눈물이 너무 나와서 울먹거렸더니 실컷 울라고, 올해 너무 수고했다고, 그런 때가 있다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순간들이 자기도 늘 있다고. 맞아, 언니 말대로 올해 작업을 많이 했지. 책도 두 권이나 썼고, 공저자 및 편집자로 참여한 책도 하나 더 있다. 너무 많이 쏟아내서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는 때라고. 코로나 때문에 누굴 만나지도, 어딜 가지도 못하는 그런 마음이 충분히 너를 우울하게 하는 거라고. 그리고 좋은 곳, 좋은 사람을 만나러 가라고. 가지 때문에 움직이기 어려우면 가지를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라고. 그곳이 바로 당신이 있는 곳이라고. 네. 지금 만나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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