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시에 겨우 일어나 책상에 앉았다. 5시에 잠깐 눈이 떠졌지만 글쓰기를 시작하진 않았고 한두 시간 전부터 밥 달라 울던 가지 밥만 주고 얼른 다시 누웠다. 9시 글쓰기 모임에 들고갈 글을 써야하는데 하기 싫다. 지난주에도 하기 싫어서 아침에 일어나 후다닥 해치우듯 뭔가 썼는데 오늘은 쓰기 싫다는 마음밖에 없다. 그래도 쓰지 않는다, 가지 않는다, 모임을 그만둔다 같은 극단적인 결정을 하지 않을 거라면 왜 쓰기 싫은지에 대해라도 써야한다.
새벽에 가지가 울면, 벌떡 일어났는데 무시하고 그냥 잔 건 오늘이 처음이다. 너무 피곤해서 못 들은 적은 있었는지 몰라도 가지가 밥그릇을 탕탕 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일어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무시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기에 무기력하고 우울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에도 가지에 대한 책임감으로 최소한의 생활은 하겠구나 오히려 안심하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엔 이불 밖으로 나가지 않은 거다. 너무 춥고 귀찮아서 그냥 내버려뒀다.
작년에도 이랬나 싶을 정도로 너무 춥다. 어느 밤엔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자다가 답답해서 다음 날엔 잠자리를 다른 방으로 옮겨보고, 뜨거운 물을 가득 채운 유단포(보온 물주머니)를 끌어안아봤다가 보일러 실내온도를 올렸다가 타이머 방식으로 맞췄다가, 어젯밤엔 좁은 방에 방한 텐트를 이리저리 끼워 맞춰서 설치했다. 조금 더 따뜻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기분 좋은 온도나 습도는 아니다. 이 집에서 처음 겨울을 보내는 게 아닌데 이렇게 힘들 일이야. 작년엔 도대체 어떻게 산 거지? 책장 맨 아랫 칸에서 작년 일기장을 찾아내 2022년 11월부터 12월까지 어떻게 지냈는지 들춰보니 겨울이라 기상 시간이 늦어서 7시 반이 되었다는 걱정이 간간히 보이지만 추위 때문에 고생한다는 말은 없다. 새로 이사한 집에 잘 적응하는지 걱정되어 춥지 않냐 묻던 친구에게 전 집보다 따뜻해서 만족한다는 대답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일기장엔 작년 이맘때쯤 어떻게 지냈는지 적혀 있었는데, 새 책을 계약하고 원고를 고쳐 쓰느라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일했고, 팟캐스트와 뉴스레터 메일링도 매주 발행했다. 그 와중에 새벽시장에 가서 장을 봐서 집에서 밥을 해 먹고, 수영장과 한의원에 다니면서 아픈 무릎을 살폈다.
올해 유난히 춥고 기력이 없는 게 할 일이 없어서 그런 건가. 만사가 귀찮고 어지간한 일은 다 하기 싫은 마음, 그냥 누워있지만 가슴이 답답해서 괴롭고, 누굴 만나도 즐겁지 않고 시간이 헛되고 흘러가고 있는 것 같은 기분. 최근 1~2년 동안은 잦아들었던 익숙한 상태다. 최근 몇 달 지나치게 행복했으니 컨디션이든 감정이든 내려가고 가라앉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닐 텐데, 멀리서 보면 완만한 곡선의 인생이라도 내가 살고 있는 오늘은 하나의 점이라 아침엔 졸려서 기운 없고 낮엔 재미없고 밤엔 온기 없는 하루하루를 지나는 일은 버겁다. 순간의 괴로움에 허우적대지 않고 거리를 둬 보려고 일기를 쓰고, 월말 결산을 하면서 긴 호흡으로 나의 한 달을 지켜보는 연습을 몇 년 간 계속해왔고 어느 정도 훈련은 되었는데, 그래서 몇 년 간 평온했는데 이제 슬슬 효과가 떨어져가나 싶기도 하다. 운동이 쉬워지면 효과가 없으니 아주 조금씩 자극을 늘려가면서 근육을 강화해야하는 것처럼 내 마음도 어디선가 지겨워하고 있나 보다.
익숙해지면 편안하지만 동시에 나른해지기도 하고, 그 다음부터 진짜가 시작되는 느낌도 든다. 작년 이 집에서의 첫 겨울은 처음이라 마냥 좋기도 했을 거고, 정말 전 집보다 따뜻했다. 그렇지만 올해의 비교대상은 전 집이 아니라 작년의 이 집이니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 추워지거나 내 컨디션이 안 좋아지면 확실히 춥게 느껴지는 것 같다. 발리에서 몇 달 지낼 때도 처음엔 한국과 비교해 너무 더웠지만 좀 지나니 현지인들처럼 두꺼운 옷을 입고 다녔다. 작년에는 안 추웠는데 왜 추울까 의아해하지 말고 덜 추워질 생각이나 해야지. 왜 몇 년 괜찮았는데 다시 우울감이 찾아오려고 할까 이유를 찾으려고 파고들진 않을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좋은 걸 해야하는데 의욕이 없으니 그게 어렵긴하다. 그나마 다음주부터 팟캐스트랑 메일링을 다시 시작할 거니까 어떻게든 또 할 일이 생기면 좀 낫지 않을까 싶다. 신나고 돈 되는 일이 내 맘대로 들어오지 않는 건 프리랜서의 숙명이라고 하니 그럴 때 의연해지는 법을 연습하는 셈 치자. 새 동네와 환경에 적응하는데 몇 년이 걸리기도 한다니 그러려니 하면서 조급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마음이 힘들어지면 또 상담 선생님을 찾아가야지 어쩌겠나. 내년에 들춰볼 뭔가를 남겨놓으려는 마음으로 그래도 일기는 쓴다. 한창 우울하고 힘들었을 때도 그나마 버티게 한 힘이 일기였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다.
새벽에 우는 가지를 무시할 수 있다면 나한테는 좋은 일이니 내일도 무시할 수 있는지 지켜봐야지. 지금까지는 길들여보려고 해도 마음이 약해서 잘 안됐다. 지금 이렇게 잔잔한 시간들이 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