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콩나물국밥을 좋아한다는 내 앞에서 단박에 콩나물국밥이 싫다고 말하던 누군가를 원망하는 글을 적었다. 절친한 친구 ㅇ에게 항의가 들어왔다. 불과 며칠 전 대전의 명물, 두부 두루치기를 먹고 싶어하는 ㅇ에게 ‘그건 요리가 아니다. 그런 걸 왜 먹고 싶어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했던 것이다. 정확히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런 의미였다.
전라도의 진한 양념과 각종 식재료가 버무려진 음식에 익숙한 내게 여전히 신기한 음식은 닭한마리와 두부 두루치기다. 닭한마리를 처음 봤을 때 너무 놀랐다. 그냥 이렇게 끓인 닭이 요리라고? 이것저것 같이 넣고 끓인 백숙도 아니고, 삼계탕도 아니고 물에 넣어서 익힌 거잖아. 닭한마리 육수가 맹물인지 비법 육수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랬다. 설사 맹물이라해도 나름의 조리법에 따라 만들어진 엄연한 누군가의 귀한 사랑일 텐데 말이다. 게다가 말은 그렇게 하고선 잘 익은 닭고기에 부추를 올리고 양념장에 찍어 야무지게 먹었다. 맛있게 먹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놓고도 처음 만났을 때의 충격적인 선입견을 게으르게 혹은 관성적으로 유지하면서 여전히 이상한 음식, 제대로 요리하지 않은 음식이라고 이름 붙여 놓았다.
두부 두루치기도 그랬다. 그냥 두부를 빨간 양념에 뭍힌 것뿐이잖아. 심지어 파도 안 들어있어? 이게 무슨… 두부와 빨간 양념뿐인 접시에 칼국수에서 면을 꺼내 비벼먹는 대전 친구들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마땅히 친구들과 갈만한 식당이 없으면 내집에 가서 두부두루치기와 올갱이국을 먹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광천식당, 복수분식, 진로집에도 가보고 싶어졌다. 놀라운 첫인상이었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어찌보면 대전의 명물 칼국수를 먹기 위한 귀여운 방식, 두부 두루치기는 거들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두부 두루치기 말만 나오면 ‘그게 무슨 요리야’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뒤따른다. 첫인상이 강렬해서일까 제법 잘 먹고 즐기면서도 이상한 음식이라는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혼자만 속으로 생각하면 괜찮은데 입맛을 다시고 있는 상대에게 들리게 입밖으로 꺼낸다는 게 문제다.
미가옥 사장님의 말투, 다른 친구들이 미가옥에 대해 나에게 하는 태도나 행동은 사소한 것 하나까지 붙잡고선 좋아하거나 싫어하면서, 나를 돌아볼 줄 몰랐다. 그러면 안 된다고, 예의가 아니라고 나무라면서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워서 정말 미가옥 콩나물국밥에 코를 박고 싶을 정도다. (장면이 상상되어 괴로우니 다 먹고 난 뒤의 빈 그릇에 숨는 걸로 하겠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더니, 내 사랑만 귀하고 남의 사랑 귀하게 여길 줄을 몰랐다. 여전히 사랑을 모르는 자의 사랑 타령이 민망하다. 그리고 역시 ㅇ와 함께 두부 두루치기를 먹으러 청양칼국수에 간 날 도 신나게 먹었다. 칼국수 사리도 추가해서.
‘두부 두루치기에도 오징어 추가라는 즐거운 옵션이 있고, 빠질 것이 없다’고 ㅇ는 말했다. 그날 우리는 오징어두부 두루치기를 먹었다. 그렇다. 친구도 내가 미가옥을 다른 이에게 소개시켜줄 때 오징어를 추가하는 것처럼 역시 내게 최상의 두루치기 경험을 선사하기 위해 오징어를 주문한 것이다. 사랑은 오징어인가… 두부 두루치기에 대한 친구의 사랑, 나에 대한 사랑. 대전 친구 ㄷ은 오징어를 추가한 두루치기를 사파 邪派로 친다. 진정한 두부 두루치기라면 두부와 칼국수만으로 승부해야한다고. ㄷ의 사랑을 의심하진 않는다. 오징어가 사랑이듯 정통과 기본을 따지는 것도 사랑. 내게 참맛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도 사랑. 두루치기에 대한 ㅇ와 ㄷ의 사랑은 미가옥에 대한 내 사랑만큼 귀하다. 내 어리석음을 지적해준 ㅇ의 사랑도 마찬가지고.
<젓가락질 너는 자유다>(조한별)을 읽다가 세상에 다양한 모습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았다. 나는 중지를 축으로 검지를 움직이는 일반에 가까운 젓가락질을 한다. 식구들은 약지를 축으로 중지를 움직이는 젓가락질을 하는데 X자로 쥐거나 주먹 쥐고 양 젓가락을 11자로 만드는 것만큼 눈에 띄지는 않고 식사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교정 대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마음 속에는 내 젓가락질이 정상은 아니라는 마음이 있었고, 일반적이지 않은 젓가락질을 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게 여기며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쩌면 ‘젓가락질 특이하게 하시네요.’라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젓가락질 제대로 못하면 어쩌구저쩌구 하며 악담이나 잔소리를 늘어놓지는 않았겠지만 저 말의 바닥엔 넌 정상은 아니야, 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스스로 자기 젓가락질을 비정상이라 여긴다해서 타인의 젓가락질을 조롱하거나 비난할 권리가 생길지 않는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나는 ‘정상에 가까운 비정상’이니까 당신과는 다르지, 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책에 따르면 올바른 젓가락질이란 음식을 정확히 입으로 나를 수 있고, 나르는 중에 다른 사람의 식욕을 떨어뜨릴만큼 음식을 흘리거나 한 번 집었던 것을 여러번 집는 등 음식을 잘못 다루지 않으면 된다. 상대가 나와 다른 젓가락질을 하면 식욕이 떨어지는가. 그렇다면 그건 내 문제다. 저 사람이 나와 다르다고 기분이 나쁠 이유는 없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는 사람을 붙잡고 성별을 확인하고야 마는,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지 적은지 가늠이 안 되는 사람 앞에서 '이런 말 물어보면 안 되는 건가'(알면 하지 마세요)라며 서열을 정리하고 싶은 이상한 마음과 같을 뿐.
내가 좋아하지 않는 음식을 네가 좋아할 수 있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네가 싫어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 사실이 서로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상관없다. 함께 즐겁게 식사하고 싶다면 다 좋아하는 메뉴를 찾거나, 각각 다른 음식을 동시에 먹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해보자. 사랑하는 마음에 너를 따라 나의 취향을 접는 것도 내 마음이다. 타인의 취향과 선택에, 혹은 본성에 뭐라고 해선 안 된다. 당신의 젓가락질을, 당신의 두부 두루치기를, 오징어두부 두루치기를, 닭한마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미가옥을 사랑하는 내 마음과 닿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