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너는 사랑을 아직 몰라

by badac

“콩나물국밥이 맛있으면 얼마나 맛있겠어? 흔한 맛이잖아. 전에 여러 집에서 많이 먹어봤어, 그냥 그랬어. 나는 원래 콩나물국밥을 썩 좋아하지 않아.”


이랬던 내가 콩나물국밥 처돌이가 되었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던 일이 결국 그럴 일이 되곤 한다. ‘원래 그래’나 ‘절대 안해’는 어디에나 쉽게 써선 안되는 말이지만, 입맛의 경우는 더욱 그럴 터다. 안 먹어본 맛 중에 마음에 드는 맛을 발견하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늘 먹던 맛있는 음식도 좋지만 못 보던 것, 안 먹어본 것에 용기를 내면 미처 알지 못했던 깊고 넓은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아보카도나 고수처럼 처음 먹어보고 영 입맛에 맞지 않아 한참을 먹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좋아지는 것들도 있다. 스무살 때 처음 다른 나라로 가는 비행기를 탔었는데 기내식으로 익힌 당근이 나왔다. 생으로 먹거나 볶음밥이나 반찬에 넣은 건 봤어도 찐감자처럼 익힌 당근은 그때 처음 먹어봤다. 맛도 식감도 별로였지만 미국 비행기라 이런 게 나오는 건가, 미국 사람들은 다 이런 걸 먹는 건가, 체험이라 생각하며 먹었고 돌아와 친구들에게 미국 사람들은 이상한 걸 먹는다고 한참 말했던 것 같다. 지금은 익힌 당근을 무척 좋아한다. 그런 걸 보면 입맛이 절대적인 게 아닌데 오히려 아는 맛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할 가능성을 차단한 채 인색했던 모양이다.


새로운 맛의 세계로 떠나는 탐험은 실패조차 즐거운 일로 여겼으면서, 익숙한 맛에 대해서는 귀한 줄도 모르고 쉽게 생각했다. 흔한 맛이라니, 그 흔한 맛을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평범하고 맛있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음식은 무난하게 무엇하나 튀지 않는 적절한 조화 덕분에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담백한 식사빵을 맛있게 만들기 어려운 것처럼. 그런 빵을 만나면 환호성을 지르며 고마워하면서 밥 중에도 그런 밥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니? 과거의 어리석은 나야.


집밥이라고 이름 붙은 백반집들에 크게 만족한 적이 없기도 하고, 밥이야 집에서도 잘하면 환호성을 지를 만큼 맛있기도 하니까 ‘식사밥’에 대한 기대가 없는 편이었다. 다행히 콩나물국밥이 절대 거부할 정도로 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이 아니어서 미가옥을 만나게 됐고, ‘한번을 만나도 느낌이 중요’한 ‘진짜 사랑’을 알아봤다. ‘절대’나 ‘원래’의 박스에 갇혀 미가옥 만날 기회를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다행이긴한데 사랑을 몰랐던 과거의 나야, 맨날 사랑 타령을 하는 현재의 나야, 솔직히 말해봐 지금도 그런 음식들이 있잖니. 절대 안 돼. 그건 원래 그래. 라는 말의 함정에 빠지면 너의 세계는 단순하게 머물고 더 좁아질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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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 먹는 음식이 있긴 하지. 물컹한 식감이 싫고 언제까지 씹고 도대체 언제 삼켜야할지 도저히 모르겠는 낙지가 요지부동 1위인데 어지간하면 동물성 음식을 줄이려는 소극적인 노력이나마 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낙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힘들게 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공식 2위는 미나리다. 쑥갓, 깻잎, 고수 등 향이 나는 채소류도 순위권에 있다가 내려왔다. 습관적으로 깻잎도 못 먹는다고 쓰려다가 불과 며칠 전에 신나게 데친 깻잎, 생깻잎을 고루 먹은 기억이 나서 머쓱했다. 아직 사랑을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너도 모르는 사이에 변하고 있잖니. 다음엔 미나리도 열린 마음으로 꼭 먹어보렴.


그래서 말인데, 콩나물국밥이 좋다고 말하는 내 앞에서 ‘난 콩나물 국밥 진짜 싫어해.’라고 말하는 친구야. 굳이 내 앞에서 그 말을 왜 하는 건데. 너는 사랑도 모르고 예의도 모른다, 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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