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사랑하는 자의 의무

by badac

고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면서 동네 고양이, 남의 집 고양이, 남의 집 개를 내 고양이만큼 예뻐하게 되었다. 길친구들 밥을 챙기거나 아픈 아이를 돌볼만큼은 아니지만 안타까운 사연에는 마음이 쓰인다. 아무렇지도 않게 때론 기쁘게 동물을 먹던 마음도 달라졌다. 특히 돼지고기, 소고기를 먹을 때 보이는 네 발 달린 짐승의 살과 뼈가 내 고양이 가지의 그것과 너무 비슷해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귀엽다고 쓰다듬은 등에서 만져지는 갈비뼈는 내가 먹은 등갈비였고 조물락거린 뱃살은 삼겹살, 턱 밑을 살살 마사지할 때 닿은 부위는 목살이다. 완전히 끊지는 못했지만 육류와 가금류 음식을 줄이려고 한다. 기후위기, 동물권, 건강 등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하는 까닭은 다양할 텐데 나는 가지에 대한 사랑으로 시작했다.


육류와 가금류를 먹지 않는 페스코 채식주의자 ㅂ은 비채식인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할 때 갈만한 식당으로 콩나물국밥집을 꼽았다. 본인에게 안전하면서 비채식인도 만족하는 거의 유일한 음식이라고 한다. 메뉴명에 특정 단어가 포함되어 있지 않아도 많은 음식에 고기가 들어간다. 아는 음식이라고 해서 아무 식당에서나 섣불리 주문했다가 고깃덩어리를 만날 수도 있다. 시금치 파스타에 소고기가,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에 돼지고기가 들어있다. 콩나물국밥엔 고깃덩어리가 들어갈 일은 없다는 거다. 대부분의 콩나물국밥은 멸치와 오징어 정도가 동물성 재료의 다다. 미가옥 콩나물국밥도 멸치로 육수를 내고, 그 육수에 오징어도 데친다. 수란도 하나, 밑반찬으로 오징어젓갈과 새우젓갈이 나온다. ㅂ이 왜 채식을 하는 지는 모른다. 비채식인에게 왜 채식을 하지 않느냐, 왜 고기를 먹느냐 묻지 않는 것처럼 묻지 않았을 뿐이다. 무언가에 대한 사랑 때문이겠거니 짐작한다. 동물이라든가, 지구라든가, 마음이라든가, 몸이라든가. ㅂ은 집 마당에 찾아오는 대여섯 마리의 동네 고양이 친구들에게 밥을 주고 약도 먹인다. 사랑하는 자는 말과 생각을 시작으로 행동과 실천을 해야한다. 내가 가지에 대한 사랑으로 미약하게나마 채식 지향인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미가옥에 대한 사랑으로 다른 이의 식성과 관심과 행동을 평가하지 않는 것처럼. 트위터에 육식이 포함된 음식을 올리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인 실천이지만 동물의 사체를 먹는 야만인이라는 비난에 더 이상 억울하지 않을 정도는 됐다. 맞죠, 맞는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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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미가옥이 아닌 콩나물국밥집에 갔다. 미가옥에 갈 수 있는 토요일까지 네 밤이나 남았는데 당장 콩나물국밥을 먹고 싶었다. 마침 친구가 가끔 간다는 집근처 콩나물국밥집의 정보를 입수했다. 미가옥에 대한 사랑 덕분에 비非미가옥 콩나물국밥에 대해 너그러워졌으니 집에서 가장 가까운 콩나물국밥집에 가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인터넷 후기를 대충 읽으니 가성비 맛집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아직 본격적인 저녁 식사 시간이 시작되기 전이라 손님은 나뿐이었다. 문앞에 주차해둔 자전거가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서 경건한 마음으로 콩나물국밥을 기다렸다. 너를 함부로 평가하지 않을 거야, 이 역시 누군가의 귀한 사랑일테니. 얼른 먹어보고 오늘도 콩나물국밥 먹었다고 트위터에 올릴 기대에 부풀었다. 국밥은 나쁘지 않았다. 미가옥처럼 국물에 밥을 토렴하는 게 아니라 팔팔 끓여 나오고, 생달걀이 따로 나왔다. 5,500원이라는 가격을 생각하면 오징어젓과 새우젓, 깍두기와 생오이 밑반찬까지 구색을 맞춘 풍성하고 훌륭한 한 상이었다. 당연히 국물맛은 미가옥과 다르지만 나쁘지 않은 편이다. 날달걀은 국물에 살짝 빠뜨려 익히고 계란을 터트리거나 국물에 섞이지 않게 조심하면서 콩나물과 김가루를 함께 집어 먹었다. 황홀한 맛이 아니라고 해서 불평불만하지 않는다. 지금 이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아본다. 국물에 달걀이 풀리지 않도록 달걀을 꺼내 따로 먹었다. 미가옥에서처럼 오징어 젓갈과 새우 젓갈을 섞어서도 먹어보았다. 김만 넉넉했더라도 지금보다 훨씬 맛있을 거 같은데 더 달라고 하지는 않았다. 여기는 미가옥이 아니니까. 혈중콩나물국농도가 낮아진 응급상황에 올 수 있는 식당을 발견한 데 의의를 두기로 했다.


다음날엔 콩나물국밥 레시피를 검색하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내가 어렸을 때 먹은 콩나물국을 어떻게 끓이는지 물어봤다. 미가옥과 같은 맛은 못만들겠지만 그래도 다르게 맛있는, 만족스러운 콩나물국밥을 직접 끓여먹고 싶어졌다. 우리집의 전통적인 레시피는 물과 콩나물을 소금간해서 끓이고 그걸 식혀서 냉국으로 먹는 거다. 파는 고명으로 올린다. 그렇게 만들어보면 알겠지. 내가 좋아하는 게 콩나물인지 멸치육수인지. 나의 식성과 재료의 조합과 음식의 맛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는 이 시간이 즐겁다. 미가옥이 가져다준 기쁨, 사랑하는 자의 의무이자 특권. ㅂ을 비롯한 여러 친구들에게 멸치도 넣지 않고 직접 끓인 콩나물국밥을 대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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