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가옥 엑셀 시트에는 날짜, 동행인 여부, 지불한 금액, 미가옥 삼례점 외 다른 미가옥과 비非미가옥 콩나물국밥집 방문 기록을 적는다. 내가 샀는지, 얻어 먹었는지 구분해서 내가 미가옥에 총 얼마를 썼는지 셈하려고 내가 돈을 냈을 때만 정리한다. 그러고 보니 단가를 적지 않았다. 미가옥 외의 가게에 가는 경우가 많아졌으니 콩나물국밥 한 그릇의 가격도 별도로 기록해둬야겠다. 대전으로 이사오면서 대전의 콩나물국밥집도 자주 갈 테니 대전 태그도 추가했다. 내 사랑 미가옥 삼례점에 갔다가 허탕친 날엔 ‘삼례헛걸음’이라는 메모를 남겨둔다.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매달리고 있는지 정리된 문서로 보면 기분이 무척 좋다. 자료에 의하면 헛걸음은 네 번으로 막연한 기억보다는 적은 수다. 문 닫힌 가게를 본 충격이 크고 오래 가서 훨씬 많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한번은 영업시간이 끝나는 2 시 전에 도착하려고 서둘러 토요일 오후 1시 반에 도착했는데 재료가 떨어져 마감이었다. 마지막 콩나물국밥을 맛있게 먹는 사람들이 아직 안에 있었다. 그때 결심했다. 게으름 피우지 말아야겠다. 영업 종료 시간 직전에 올 생각을 하다니! 아직 사랑이 부족하구나. 그 뒤로는 문 여는 시간에 맞춰 간 날도 많았다. 7시보다 일찍 도착하면 영업 시간 전에 들어가는 게 죄송해 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1등으로 들어갔다.
대전으로 이사온 뒤 매주 미가옥에 갈 때도 새벽에 출발해 개점 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한다. 대전에서 처음으로 미가옥에 간 날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삼례 표지판을 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서 소리를 지르며 읍내로 진입,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달리듯 가게 앞으로 갔건만 ‘개인 사정으로 휴무’라는 안내판을 보고 말았다. 울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나마 두 번째로 괜찮은 미가옥 전주 서곡점으로 갔다. 다음날엔 미리 전화를 했다. 다음날 또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간 건 아니고 전주에 용건이 있었다. 진짜다. 미가옥을 생각하며 이틀 연속 70킬로미터를 달려가는 집착과 광기의 처돌이이고 싶지만 평범한 미가옥 러버일뿐, 일보러 가는 길에 들르는 정도다. 아직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 미가옥 여는 시간에 맞춰가려고 일찍 출발하다보니 확인 전화를 미리 할 수 없어 7시에 휴게소나 졸음쉼터에 들어가 전화를 건다. 반가운 사장님이 전화를 받아 문을 연 게 확인되면 그때부턴 행복의 엑셀을 밟는다. 가게에 들어서니 아까 전화주셨냐고 물으시네. 헤헷, 네 어제 왔다가 문이 닫혀 있길래요.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오던 내가 요즘은 뜸해서 궁금하시진 않을까, 제가 이사가서 이제 자주 못 오고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오게되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부끄러워서 콩나물국밥과 함께 말을 삼켰다. 꿀떡.
또 한 번은 6시 30에 도착했는데 내부가 캄캄하고 고소한 멸치 육수 냄새가 나지 않았다. 혹시 오늘도? 불안해하며 건물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불안한 건 불안한 거고 거리에 사람도 없고 시간이 남을 때 보고 그릴 자료 사진을 많이 찍어두면 좋으니까 앞모습, 양쪽 옆모습, 뒷모습을 한참 찍고 있었다. 옆집에 사는 분이 나와 왜 사진을 찍냐고 물어보신다. 당신이 이 건물의 주인이라며… 아,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미가옥을 너무 좋아해서 그림 그리려고 사진을 찍습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예쁘게 그려주세요 하고 가신다. 하하, 재밌는 경험. 6시 45분에 헐레벌떡 사장님이 도착해 문을 연다. 나는 멀찌감치 그 모습을 본다. 본의 아니게 스토커처럼 사장님이 어떤 차에서 내렸는지 출근 전에는 어떤 복장인지 알게 되어 버렸다. 아직 개점 시간이 되지 않아 근처에서 서성이고 있는데 출입문 바로 문앞 인도에 주차를 한 중년 남녀 손님이 들어간다.(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좀 아니잖아요.) 아직 7시가 되려면 10분이나 남았는데 매우 단골이신지 들어가서 블라인드를 직접 올리고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눈다. 여름 휴가를 간다고 지난 한 주 영업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였다. 미가옥 러버로서 이 중요한 이야기를 놓칠 수 없어 나도 서둘러 가게로 들어섰다. 휴가 간 건 어떻게 알았냐고? 친구가 지나가다가 보고 헛걸음하지 말라고 알려줬다. 사장님이 어디로 휴가를 갔는지 알고 싶어서 귀를 기울인 건 아니고 일하는 직원님과의 불화에 관한 이야기가 얼핏 들렸기 때문이다. 미가옥의 콩나물국밥뿐 아니라 사장님의 경영 태도, 직원님의 업무 만족도와 복지, 두 사람의 팀워크에도 관심이 많은데 나는 사장인 적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직원님에게 감정 이입을 하다보니 전에 사장님의 업무 지시 말투에 영 신경이 쓰였다. 두 분의 대화를 처음부터 다 듣진 못했지만 직원님의 근태에 문제가 있는 듯했다. 직원님이 안 나오면 사장님 혼자 장사하기는 너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선택하신 것 같았다. 갑자기 못 나온다고 말하면… 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끝까지 듣지 못해서 정확한 두 분의 사정은 모른다. 섣불리 한 쪽을 오해하지 말아야겠다고만 생각했다. 나는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가게 구석구석을 찍었다. 건물 외부 사진을 실컷 찍은 김에 내부 사진도 필요했고, 손님들이 오기 전에 빈 가게를 마음 편히 찍고 싶기도 했다. 사장님이 이유를 물으면 책을 쓴다고 할까 아까 건물주님에게 대답한 것처럼 그림을 그린다고 할까 대답을 생각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사장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금방 손님들이 가득 찼고 가게는 바삐 돌아갔다. 직원님은 내가 회사 다닐 때 짓던 그 표정으로 영혼 없이 깍두기를 담고 젓갈과 밥을 서빙했다. 기계처럼 몸에 붙은 동작이 여전히 아름답긴하다. 그치, 가게가 바빠도 직원 입장에서는 좋을 게 없겠지. 급여나 대우가 좋은 가게에서 직원들이 사장 못지 않게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직원들의 노동과 마음 가짐은 사장과 같을 수 없다. 아무래도 나는 여전히 직원쪽에 마음이 간다. 두 분 모두를 존경하는 마음으로 꼭꼭 씹어 천천히 밥을 먹었다. 음식을 날라주는 직원님께도 감사하다 인사하고 다 먹고 가게를 나설 때 잘 먹었다고 큰 소리로 인사도 빼먹지 않는다. 내일의 영업 유무, 두 사람의 속내, 콩나물국밥 맛의 비밀 따위를 알 수 없고 알고 싶어할 까닭이 없으니그저 오늘 내 앞에 주어진 한 그릇의 콩나물국밥을 먹을 수 있을 때 열린 입과 마음으로 잘 먹어보자. 오늘 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