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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Jul 10. 2023

대중탕 처음 와보세요?

월10-7

6월 12일 이후 한 달째 온천에 못 갔다. 과도한 온천욕이 초래한 피부트러블은 다행히 잠잠해졌지만 햇빛이 닿으면 따가워서 아프다. 피부 노화로 인한 증상인지 온천 부작용으로 피부가 약해진 건지 원인을 정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중요한 건 지금 아프다는 사실이다. 외출할 때 유난할 정도로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긴소매 옷과 긴바지만 입는다. 선크림도 꼬박꼬박 챙겨 바른다.


‘월요일엔 유성온천’을 중단하고 싶지 않다. 회복기를 가진 뒤 다시 갈 것이다. 한여름의 온천욕이 추운 계절처럼 개운할지, 오히려 기운을 빠지게 할지도 궁금하다. 유성 온천 지구에서 유일하게 여성 노천탕이 있다는 불가마 사우나에도 가보고 싶다. 경하온천이 조금 지겹다 싶으면 다른 온천을 두루두루 다니며 조금씩 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과도한 온천욕 후유증뿐 아니라 과로로 인한 만성피로 상태라서 이 몸으로 온천탕에 들어가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아주 피곤한 상태나 술에 취한 상태로는 온천욕을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오늘은 생생한 온천 후기 대신 숙성된 지난 방문 때 이야기를 해야겠다. 


경하 온천에 다녀온 뒤 홀딱 반해서 일주일 내내 들뜬 마음으로 다음 갈 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막상 월요일이 되니 7천 원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수입이 불규칙하니 한두 달 생활비를 미리미리 확보해 두기는 하는데 약간의 계산 착오가 있었는지 6월 말에 돈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몇만 원이 아쉬웠다. 그날의 일기를 찾아보니 이렇게 적혀 있다.


“월요일엔 유성온천에 가야 하는데 돈도 없고… 마음이 편치 않다. 며칠째 맛있는 걸 못 먹고 밥과 김치만 먹은 것 같아 헛헛하다. 경하온천 입장료를 과감히 성심당 빵에 투자했다.”


아마 빵 먹고 기분이 좋아져서 오후 늦게 경하 온천에 간 모양이다. (장담하건데 며칠째 밥과 김치만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먹는 데 진심인 사람이 그랬을 리가 없다) 두 번째 방문이니 야무지게 준비물도 잘 챙겼다. 탕 안에서 시원한 물을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빨대 꽂은 텀블러와 몸을 씻을 비누, 빗. (그때는 오일이나 바디로션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기 전이었다) 그렇게 행복한 기분으로 경하를 만나러 갔는데… 글쎄…



평일 저녁이라 그런지 한산했다. 온천탕에 앉아있는 사람 한 명, 씻는 사람 한 명. 그 뒤로도 총인원은 다섯 명을 넘지 않았다. 한갓지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온천탕에 들어가기 전에 머리도 감고 온몸을 비누칠해서 깨끗이 씼었다. 발부터 천천히 담그면서 통증 부위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특별히 더 아픈 곳은 없는지 예민하게 몸을 살폈다. 머릿속에 통증의 지도를 그리면서 외웠다. 나가자마자 그려둬야지. 슬슬 몸에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더 깊이 더 많이 몸을 담그고 싶어졌다. 탕 안에는 나까지 세 명이 앉아있었는데 각각 멀리 떨어져 모서리 쪽에 있으니 내가 온몸을 담가도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 같았다. 눈을 감고 양손으로 귀와 코를 막고 몸을 완전히 눕혔다. 배영 자세로 물에 몸을 잠깐 띄웠다가 바로 앉았다. 그 순간! 끝 쪽에 서서 물을 퍼내고 있던 분이 나한테 말했다.


“대중탕 처음 와보세요?”

“네?”


정말로 내가 처음 온 사람인지 아닌지 궁금해서 묻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재빨리 저 질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 네. 여기는 처음입니다.”

“탕에서 수영하시면 안 되죠.”

“아, 죄송합니다. 사람이 별로 없어서 잠깐 몸을 담갔습니다.”

“탕에 혼자 있어도 수영은 하면 안 되죠.”

“죄송합니다. 알겠습니다.”


습관성으로 사과를 남발하는 나는 반사적으로 죄송하다, 안 그렇겠다고 대답하고는 바짝 굳었다. 그때부터 탕에 혼자 남아있을 때도 그분이 나를 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왜 대중탕에서 수영하면 안 되지? 물을 튀기거나 좁은 공간에서 수영한답시고 이리저리 이동하면 타인에게 방해가 되니까 그런 거 아닌가. 이렇게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고 물도 안 튀길 때는 괜찮은 거 아닐까. 탕에 앉아 있으면서 계속 답을 찾고 싶은 마음에 답답했다. 하면 안 되는 일은 당연히 안 할 건데, 내가 한 행동이 정말 공중도덕에 위배되는 일인지 궁금했다. 그렇게 찝찝한 상태로 집에 돌아온 뒤로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대중탕에서 수영하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영이란 무엇인가’ ‘대중탕의 규정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찾아보고 이야기 나눴다. 그렇게 해서 지난 글에 ‘올바른 온천 이용법’에 대해 썼다.


그 상황에서 나의 잘못을 찾자면, 머리카락 때문에 욕탕이 오염될 여지가 있는데 머리끝까지 온몸을 담근 것? 그렇지만 명백히 내가 한 행동은 수영은 아니었다. 나에게 주의를 주고 싶었으면 머리까지 담그면 안 된다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수영 금지에 대한 안내를 나한테 하고 싶었더라도 그는 ‘처음 와보세요?’라는 공격적인 말로 시작해서는 안 됐다. 설사 잘못했더라도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쁜 게 당연한데 죽을 죄를 지은듯한 기분이 먼저 든다. 일단 당장은 사과로 상황을 모면하고  뭘 잘못해서 이렇게 혼나고 있는지 혼자 천천히 생각한다. 납득이 안 가면 질문을 하면 좋은데 그렇게는 못 하고 왜 그럴까, 왜 그랬을까,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다. 그래서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정말 대중탕에서 수영이 금지인가, 경하 온천에 전화해서 한번 물어보자고 한 친구도 있었는데 나 역시 대중탕에서 수영은 하지 않는 게 상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당연히 내가 잘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다른 친구는 자기 같으면“수영하면 안 되죠?”라는 말에 “수영이 뭔지 모르시나 봐요.”라고 답했을 거라고 했다. 내가 한 건 수영이 아니니까 그런 지적은 옳지 않고, 혹시라도 머리카락 때문에 위생 문제를 걱정한 거라면 그 부분을 좋은 말로 얘기했어야 한다고. 몇 주간 가슴을 답답하게 하던 감정이 조금 풀렸다. 나는 무례한 그의 태도에 기분이 나빴던 거다. 화를 내든 억울해하든 기분이 나쁘다는 첫 번째 감정을 알아채고 다음으로 넘어가지 않아서 계속 답답했나 보다. 그렇게 감정과 사고가 진행되면 그의 말이 나에게 그렇게 큰 타격을 주진 않는다. 뭐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나한테 유난히 까칠하게 굴었을 수도 있다, 저런 식으로 말하는 부류의 사람인가 보다, 자기도 나처럼 행동해서 핀잔을 당한 적이 있나 보다 등등. 그런 소리 들으니 나 정말 기분 나빠, 하고 감정을 알아채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다.  근데 정말 대중탕에선 머리끝까지 담그면 안 되는 거겠지? 하고 싶으면 개인용 탕을 이용해야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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