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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Aug 28. 2023

노천탕이 그리워

월28-8

두 달 만에 유성온천에 다녀왔다. 더워도 뜨거운 국밥은 여전히 맛있으니까 여름에도 온천이 그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여름 내내 바다나 계곡에 몸을 담그고 싶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여름 감기를 지독히 앓고 난 뒤에 집에서 한 번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했다. 좋았지만 온천이 생각날 만큼은 아니었다. 오히려 물이 다 식고 난 뒤에 다시 들어가니 수영장에 온 것처럼 시원해서 재미있었다. 다음날까지 몇 번 더 들어갔다. 


온천이 내키지 않은 건 날씨가 습하고 더워서지만 꼭 그것 때문은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온천을 방문하고 나서 코가 맹맹한 비염 증세가 지속됐는데 아무래도 과도한 온천욕이 원인인 것 같아 계속 마음이 쓰였다. 물에 오랫동안 들어가 있으면 손가락 끝이 쪼글쪼글해지는 것처럼 성대나 코의 어느 부분이 물에 불어서 쪼글쪼글 해져있을 것만 같아 무서웠다. 가전제품에 물 들어갔을 때 오래오래 조금씩 말리는 것처럼 깊은 몸속 어딘가를 잘 말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추와 처서가 지나 바람이 무거워질 즈음, 작은 비가 내렸다. 기다리는 사람은 없겠지만 8월 28일은 ‘월요일엔 유성 온천’을 발행하는 날이다. 매월 날짜에 동그라미가 들어가는 날 중에서 월요일인 날이 발행일이다. 콘텐츠 생산을 위해 온천에 가야만 했다. 


유성구 홈페이지 정보에 따르면 유성온천 지구에서 직접 온천공에서 온천수를 끌어 올리는 업소는 10곳 이하다. 그중 유성호텔, 경하호텔, 계룡스파텔, 대온탕을 추천받았고 경하 온천탕에 반해 다른 곳에 가볼 생각을 크게 안 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유성온천불가마사우나’에 여성 노천탕이 있다는 거다. 유성호텔 대온천탕이 유명해서 제일 처음 가봤는데 거긴 남탕에만 노천탕이 있었다. 그게 유성호텔을 가지 않기로 한 단 하나의 이유는 아니지만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말할 순 없다. 당연히 기분 나쁘지! 경하보다 넓고 시설도 조금 더 현대적이지만 어차피 노후한 건 마찬가지여서 차라리 비슷하게 불편하고 훨씬 매력적인 경하로 마음을 정했다. 그래서 오후 서너 시쯤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노천탕이 있는 ‘유성온천불가마사우나’에 가기로 급하게 결정하고 집을 나섰다. 노천탕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시원하게 온천을 즐길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인터넷 후기를 찾아보니 찜질방을 겸하고 있어서 주말에는 이용객이 많다고 한다. 24시간 운영하고 목욕비는 8천 원이다. (찜질방은 주간 1만 원 / 심야 1만 1천 원, 2023년 9월 7일부터 1천 원씩 인상 예정) 주차장도 넉넉하고 4시간 무료 주차권을 준다.


지금까지 가본 곳 중에서 시설은 그나마 신식인데 목욕탕이 아주 불편하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청결하게만 잘 유지된다면야. 경하가 오래된 느낌이어도 난 좋았다. 노천탕은 좀 기대가 되었는데 무작정 일본 홋카이도 온천 마을 노보리베츠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몹시 추운 겨울날 눈을 맞으면서 온천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한국에서 노천탕이라는 말만 들으면 그때를 생각하고 매번 실망해 놓고선 또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그런데 <목욕탕 도감>(엔야 호나미, 수오서재 2023)을 보니 목욕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는 온천이 아닌 대중목욕탕에도 야외탕이 있고, 노천탕이라고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니니 내가 한국의 온천에서 본 실망스러운 옥외탕도 노천탕이 맞긴 하다. 근데 베란다처럼 천장과 벽을 치지만 않았다 뿐이지 옥외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지 않나. 외부 시선을 차단하려면 벽을 높이 세워야 하니 산속 온천이 아닌 이상 방법이 없을 거 같긴 하다. 아마 수영복을 입고 입장하는 온천 수영장이 내 기대에 부응하는 노천탕에 가까울 것 같다.

뉴질랜드 자전거 여행중에 발견한 온천수영장 (2011)

비는 내리지 않았고, 반 실내탕의 공기는 실내와 비슷하게 꿉꿉했으며 나는 금세 지쳤다. 온천탕에서 억지로 오래 버틸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으므로 나는 5분이든 3분이든 힘이 든다 싶으면 탕 밖으로 나와 썬베드에 누워있었다. 그렇게 서너번 드나들다가 씻고 집에 왔다. 4시간짜리 주차권을 받았는데 1시간 반도 안 되어 나왔다. 겨울에 가면 좀 나으려나, 실망까진 아니지만 한 번 경험해본 걸로 족했다. 다음엔 역시 내 사랑 경하에 가야겠다. <목욕탕 도감>을 보니 열탕-냉탕-휴식으로 냉온욕을 하면 기분이 좋다는데 다음 번엔 나도 시도해볼까 한다.


아. 훨씬 대중적인 이번 목욕탕엔 구체적으로 머리를 물에 넣지 말라는 공지가 있었다. 머리에 수건을 꼭 싸매고 욕탕에 들어갈 것, 절대 수영하지 말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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