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서는 유성 온천에 한번도 못 갔다. 작년에는 유성호텔, 경하호텔, 계룡스파텔, 유성온천불가마사우나를 두루두루 다니면서 온천 지도를 만들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월요일엔 유성 온천’이라는 이름으로 온천 가기 좋은 월요일마다 에세이도 몇 편 썼다. 오래 전에 개발된 지역이라 시설은 노후했지만 깨끗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이용에 불편은 없었다. 소박하고 정갈한 경하 호텔을 가장 좋아했다. 유성호텔은 일제시대에 만들어져 100년 넘게 영업해왔지만 2004년 3월에 문을 닫았다. 다른 온천도 언제까지 영업을 할지 모르니 갈 수 있을 때 많이 가야지.
유성 온천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무료 족욕장도 있다. 경하 호텔 온천탕에 가려고 몇 번이나 이 동네를 오갔는데도 친구 고라니와 함께 가기 전까지는 있는 줄도 몰랐다. 집 주차장에서 호텔 주차장으로 바로 차를 타고 이동하니 주변을 둘러볼 겨를이 없었다.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다닐 땐 천천히 동네를 구경하고 가끔 길을 잃어 나도 모르게 재미있는 곳으로 흘러들어가곤 했다. 자동차를 직접 운전할 때도 언제나 길을 잃지만 이탈한 경로에서는 네비게이션만 확인하게 된다. 우연을 기대할 수 없다면 더 적극적으로 두리번거리고 옆길로 새고 해찰하며 살아야겠다 다짐했다.
족욕장에 처음 간 날은 꽤 쌀쌀했다. 뜨끈한 온천수에 발을 담그니 노곤노곤 기분이 좋아졌다. 집에서 가깝다면 맨날 올 텐데… 하며 좋은 장소를 만나면 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우리 동네 좋은 데를 맨날 가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지만…. 내가 좋은 건 다른 사람들도 다 좋을 테니 족욕장엔 사람이 많았고 이렇게 북적북적하다면 맨날 오게 되진 않겠군, 하며 위안했다. 그리곤 잊었다. 온천이라면 모를까 족욕장에 가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 않아서 안 간 지 1년 가까이 되었다.
며칠 전 저녁을 먹으러 유성 쪽으로 갔다가 식당 앞에 바로 족욕장이 있는 걸 발견했다. 알고 온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니 잠깐 발이나 담그고 가기로 했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이니 온천수에 발을 담근 사람은 몇 명 없었다. 느릿느릿 부채질을 하며 앉아 있는 사람, 울퉁불퉁한 바닥의 돌맹이를 밟으며 걷는 사람, 족욕장 옆 벤치에서 술 한 잔 걸치다가 가끔 들어와 발을 담구는 사람, 이미 취한 채로 족욕장에서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이 있었다.
여름이라 양말을 신지 않았으니 샌들만 벗으면 바로 맨발, 발을 씻고 온천수에 발을 담궜다. 으악, 뜨겁다. 등을 타고 땀이 줄줄 흐른다. 시워어어어언하다. 기분이 좋다. 하루의 피로가 싸악 풀리는 기분. 송글송글 이마에 땀이 맺힐 즈음, 물 밖으로 나왔다. 아, 맞다. 나 온천 좋아했지. 추운 계절엔 몸을 녹여줘서 좋고 더운 계절엔 더 뜨겁게 몸을 데워줘서 좋다. 뜨거운 물에만 담궈도 좋은데, 온천수면 더 좋지. 집에서 물 받고 발 씻고 발 닦고 물 버리고 대야 씻고 하려면 귀찮은데 여기선 신발 벗고 발 씻고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에어건으로 싸악 말리면 된다. 뜨거운 여름에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엣헴, 속 시끄러운 생활 스트레스따위 훌훌 털어낸 도사님된 기분이다.
일본 온천 마을 다녀온 후기글을 읽으면 버스 기다리면서 다들 족욕하고 있던데, 유성 온천 지하철 역 근처에도 족욕탕 있으니 대전에 빵 사러온 사람들 지하철 타고 여기도 들렀다 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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