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S기초과학연구원 사이언스 라운지
월요일엔 작업실로 삼을 장소가 마땅치 않다. 집 앞 테미오래는 휴관이고 평소라면 커먼즈필드 정도까지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갔겠지만 요즘처럼 더운 날엔 걸어서 무리다. 지난 월요일에 차를 몰고 커먼즈필드에 갔다가 깜짝 놀랐다. 내가 알던 한산하고 조용한 그곳이 아니었다. 여름이라 시원한 곳을 찾아든 사람들로 가득했다. 자리가 없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일에 집중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테미오래도 여름 방학을 맞아 여행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언제까지나 나만의 작업실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새로운 장소를 발굴해야 한다.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IBS 과학문화센터가 생각났다. 기초과학연구원 IBS에서 시민들을 위해 과학도서관과 강연장, 세미나실, 영화관람실이 있는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친구 고라니의 소개로 작년엔가 처음 가봤는데 3층에 있는 사이언스 라운지에 반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집 근처였더라면 정말 매일 여기로 일하러 왔을 텐데…. 2019년에 문을 열었고 열자마자 코로나 때문에 바로 닫아야만 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유튜브에 남아 있더라. 지금은 버젓이 잘 운영되고 있다. 도서관은 월요일에 문을 닫지만 3층 사이언스 라운지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연다. 본격적인 도시락처럼 냄새나는 음식은 못 먹지만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는 괜찮다고 한다. 도시락을 싸 들고 와서 하루 종일 일하다 가도 좋겠다.
빈백 소파가 놓인 전면에는 통유리창 너머로 갑천이 내려다 보이고, 벽 쪽으로 칸칸이 분리된 좌석 옆으로도 전망이 좋다. 정원을 가득 채우면 마주 보고 6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이지만 한두 사람씩만 차지하고 있다. 그 외에도 띄엄띄엄 원형 테이블이 놓여있고 넓게 앉거나 누울 수 있는 계단식 좌석도 있다. 무료로 대관할 수 있는 영화관람실도 세 개나 있다. 넓고 깨끗하고 바깥 풍경 아름답고 콘센트도 곳곳에 있고 주차장도 넓다. 정말이지 좋다.
이런 공간을 만들어준 IBS기초과학연구원이 고마워서 뭐 하는 덴지 알아보려고 홈페이지를 둘러봤는데, 역시나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국립중앙과학관을 갔을 때처럼 멍해지는 기분. 여기도 홍보팀이 있을 테니(정확한 조직명은 커뮤니케이션 팀인 것 같음) 소개 영상도 있고 관계자 인터뷰도 있긴 하다. 당장 쓸모는 찾지 못하지만 과학의 원리를 탐구하는 기초연구가 중요하고 언제가 될지 모를 뿐 인간과 사회에 필요한 연구를 하는 곳. 구체적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설명하자니 너무 어렵고 복잡할 테고, 쉽게 일반인이 알아듣게 설명하려니 저 정도의 이야기밖에 못 하는 것 같다. 전문가와 일반인 사이에서 쉽게 설명하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도 있고 대전 어디에는 재미있고 쉽게 과학 원리를 접할 수 있는 과학 카페도 있다던데 나로서는 크게 관심이 없다. 과학자 친구를 두고서도 전혀 궁금해하지 않으니 친구들이 내 책 안 읽는다고 서운해할 입장이 아니다. 그의 일을 궁금해하지 않는 건 아닌데 들어도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니 들을 땐 겨우 알아듣다가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어쨌거나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건 나처럼 그냥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건 연구원 입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주는 게 좋을 테지.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지 않고 반납하더라도 자주 찾는 게 좋은 것처럼 공공시설은 그저 자주, 잘 이용하면 된다.
사이언스 라운지를 소개하겠다고 결정하고 최근에 두어 번 방문했는데 갈 때마다 사람이 많았다. 여기도 이제 소문이 나버렸구나. 11시도 안 되어 도착했는데도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벽 쪽 테이블을 각각 한 사람씩 모두 차지하고 있었다. 지난번에 왔을 때 본 사람이 그대로 또 있기도 했고, 아이와 함께 하루 종일 간식 먹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많았다. 보호자가 잠깐 어디 다녀오는 동안 혼자 놀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여름엔 시원한 공공기관이 최고다. 도서관도 좋지만 여기는 일 하기에도, 놀기에도, 낮잠 자기에도 좋으니까.
3층에 사이언스 라운지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1층 과학도서관으로 내려가 봤더니 일하기에는 좋지 않다. 콘센트도 없고 음료도 반입금지다. 대신 책이나 영상 자료를 보며 시간을 보내기 좋은 편한 의자, 숨기 좋은 자리가 많았다. 가구 배치나 인테리어도 답답하지 않았다. 다시 3층으로 올라가 계단식 의자에 앉아서 일을 하다가 스르륵 누워 잠들었다. 조금 덥다고 느껴졌는데 알고 보니 점심시간에는 따로 냉방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공공기관 중에 그런 곳들이 더러 있다. 나머지 시간에 워낙 에어컨을 세게 틀어두었을 테니 두어 시간 끈다고 해서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에어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집에 에어컨이 고장 나서 못 틀고 있다는 이야기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견딜 만하다. 그것보다 엊그제부터 목이 아프고 식은땀이 나서 병원에서 감기약을 지어다 먹었다. 지금도 열이 나는지 땀이 계속 나고 그것 때문에 선풍기 바람만 쐬어도 너무 춥다. 없으면 또 너무 덥고. 목감기에서 코감기로 넘어갔다가 지금은 기침이 조금 나는 상태인데 이러는 와중에도 어떻게든 마감을 하겠다고 선풍기를 등지고 앉아있다.
그렇게 덥다고 하는 이번 여름을 에어컨 없이 무사히 났다. 아직 더운 날이 더 많이 남았으니 앞으로 너무 더울 때는 테미오래, 과학문화센터, 커먼즈필드를 하루씩 돌아다녀야겠다. 가끔은 카페에도 가야지. 집 근처에서 좋아하는 카페를 하나 더 발견해서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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