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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dac Sep 03. 2024

편안함도 사랑이다, 나 여기 좋아하나 봐.

이거 비버

요즘 한 카페가 자꾸 생각난다. 커피는 집에서 직접 내려 마시고, 일할 때도 내 책상이 제일 편하고, 가끔 기분 전환을 위해서는 도서관에 가는 내가 카페 생각이 나다니, 이건 필시 사랑에 빠지기 직전의 상태임이 틀림없다. 보름 전쯤 매미와 처음 가봤고, 커피가 맛있어서 지난주에 원두를 사러 갔다. 그곳은 대흥동 ‘처치앤댄스홀’이다. 깔끔하고 시원시원한 내부도 마음에 든다. 


그전까지는 선화동 ‘에스프레소는 진짜다’에서 원두를 샀다. 가격도 싸고, 맛도 괜찮아서 2주일에 한 번씩 유리병을 들고 가서 원두를 사 왔다. 100그램씩도 팔고 값은 6천 원밖에 안 한다. 근처 카페 중엔 커피 맛으로야 대흥동 ‘쌍리커피’와 선화동 ‘라이언하트’가 으뜸이지만 그런 커피를 집에 쟁여놓고 아무 때나 내려 마시고 싶지는 않다. 맛있는 커피가 먹고 싶을 때 특별한 날 찾아가서 기술자가 내려주는 고오급 커피로 남겨둘 거다.


 매일 먹는 커피는 만만하고 편안한 맛이 좋다. 그래도 일 년 가까이 한 집만 다니니 다른 맛이 생각났다. 그때 ‘처치앤댄스홀’이 나타났다. 교회 안 다니는 사람이 쉽게 들어가고 싶은 가게 이름은 아니어서 갈 일이 없겠다 싶었는데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윈디시티, 하세가와요헤이가 공연하는 곳이라니! 세상 힙한 대전 젊은이들이 모이는 카페인가보다. 사장님 인터뷰를 읽어보니 가게 이름의 사연을 포함해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데, 오늘은 귀여운 카페 ‘이거비버’에 대해 이야기할 거다. 내내 이 카페 저 카페 이야기를 하다가 뜬금없이 ‘이거비버’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처치앤댄스홀’에 대한 사랑이 피어나려고 할 때 저기 마음 한구석에 싹트고 있던 편안함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새삼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거비버’는 작년 겨울에 문을 열었다. 골목 작은집이 무너지고, 공사가 시작되고, 빌라가 들어서는 것을 내내 지켜봤다. 바로 옆에는 가정집 건물을 그대로 이용한 맛있는 식당 ‘턱스키친’이 있고 작년에 그 옆에 카페도 하나 생겼는데 좋아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한 번도 안 가봤다.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카페가 들어올 줄은 몰랐는데 어느 날 떡 하니 카페가 영업을 시작했더라. 카페 잘 안 가는 내가 어쩌다 보니 매미와 둘이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아마도 연애 초기라 카페 처돌이인 매미를 생각하며 카페 갈 마음을 더 많이 냈던 것도 같다. 그렇게 들어간 카페에서 마신 커피가 제법 맛이 있었다. 막 생긴 카페에서 젊어 보이는 사장님이 내린 커피가 맛있을 거라 기대하지 않아서 더 그랬을 거다. 와, 이런 카페라면 글 쓰러 자주 와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메리카노 3천 5백 원, 괜찮은 맛, 거슬릴 것 없이 단정한 인테리어, 일하기에 너무 시끄럽지 않은 음악도 좋았다. 


언제 개업하셨냐고 인사를 건네는 나를 보고 매미는 깜짝 놀라며 놀렸다. 평소에 가게 주인과 간단한 말도 주고 받지 않는 내가, 카페에 관심 없는 내가, 이 카페에 관심을 가지는 게 재미있다고 했다. 물론 그 뒤로 단골로 삼을 만큼 이거비버에 자주 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고 일기를 쓰러,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오리 선생님이 내주는 그림 숙제는 그려야겠다고 얼어붙은 마음에 불을 지피러, 집에서는 누워만 있고 싶으니까 일단 밖으로 나가는 보자는 마음이 들 때 몇 번 이거비버에 갔더니 스탬프가 9개나 찍혔다. 나한테는 엄청난 횟수다. 지난 2주 동안 혼자서 이거비버에 두 번이나 갔다. 처치앤댄스홀은 더 알고 싶고 궁금하고 자꾸 생각나는 매력이 있다. 음악도 좋고 실내도 밝고 식물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벽에 붙은 2인석 테이블에서 일하기에도 좋다. 지난 2주 동안 매미랑 둘이서 처치앤댄스홀에 두 번 갔다. 나 처치앤댄스홀에 반했나 봐. 그런데 아마, 이거비버는 이미 편한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아무 때나 불러낼 수 있는 동네 친구. 아, 어디 가지? 어딘가 가고 싶은데? 이런 생각이 들 때 이거비버로 발길이 향한다. 이것 역시 사랑이라는 깨달음. 나 이거비버 좋아하나 봐. 


여자 사장님과 남자 사장님은 남매사이로 돌아가면서 가게를 지킨다. 어느 날은 커피가 좀 덜 맛있던데 누가 누가 더 잘 내리는지 다음엔 기억해야겠다. 기계로 내리는 커피도 날씨에 따라, 사람에 따라 맛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커피 맛이 미세하게 달라지니 한 번 맛이 없다고 해도 너무 실망하지는 말아야지. 실은 지난번 마지막 방문 때 커피가 맛이 없어서 좀 슬펐거든요. 그래도 다음에 또 갈 거다. 아직 사랑은 식지 않았어. 


이거비버에서도 요즘 카페처럼 크림 잔뜩 올라간 라떼를 시그니처 메뉴로 판다. 인터넷 후기를 보니 이 음료가 인기가 많은 듯하다. 나는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를 마신다. 아, 생각났다. 이 집 커피에 기대를 안 했던 이유! 처음 갔을 때 메뉴에 카푸치노가 없어서 그랬다. 우유 거품 못 만들어서 카푸치노 안 파는 거 아닐까? 나도 카페에서 일할 때 우유 거품 곱게 잘 못 내서 카푸치노 만드는 게 제일 어려웠거든. 카푸치노 안 파는 카페가 커피가 맛있을 리가 없잖아? 근데 요즘은 카푸치노도 팔고, 디카페인 커피도 판다고 한다. 더 자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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