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치앤댄스홀
처치앤댄스홀. 전면 통유리창 너머로는 하얀 벽이 보인다. 사람 키보다 훨씬 큰 식물이 가득하다. 중앙 출입문도 유리인데 왼쪽 문엔 CHURCH, 오른쪽 문엔 DANCEHALL이 맨 위부터 아래까지 가득 흰색으로 쓰여 있다. (아마도 붙어 있다.)
처음에 봤을 땐 정말로 교회에서 운영하는 곳인 줄 알았다. 대형 교회 근처에는 교회가 직접 운영하거나 교인이 교인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식당이나 카페가 있으니까. 새하얀 내부 인테리어가 교회처럼 보이기도 했다. 근처에 교회가 있던가 의아해하며 지나칠 때마다 들어가 볼 엄두를 못 냈다. 대전에서 ‘한 힙’ 한다는 이들이 가는 ‘원조 핫 플레이스' 라는 정체를 알게 된 후에야 문 위 유리에 쓰여 있던 COFFEE, WINE, BEER, VINYL, MAGAZINE을 이해했다. 우리 가게 취급 품목이었다.
가게에 문턱이 있긴 했지만 높진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은 왠지 못 들어갈 것 같은 무형의 문턱이 아니라 진짜 문턱. 얕은 한 단짜리 턱이 있었다. 동물도 들어갈 수 있는 가게던데 왠지 휠체어 들어갈게요~ 하면 어디선가 경사로 발판도 나올 것 같다.
사람들이 줄 서서 들어가는 카페, 젊은이들이 자리를 이동해가면서 사진을 찍는 그런 어수선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과거 인스타 포스팅을 보니 갈아입을 옷을 싸 들고 와서 상업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나 보다. 그러지 말아 주십사, 하는 글이 있었다.) 한쪽에 마련된 부스에서 조용하고 편안한 음악을 LP로 틀어준다. 음악을 즐겨듣지 않아도 공간과 맞춤하게 어울린다는 걸 잘 알겠다. 그날의 분위기, 계절, 날씨, 시간에 딱 맞는 음악을 틀어주겠지. 벽면엔 LP와 잡지가 전시되어 있었고 밖에서 보고 알았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식물의 키가 무척 컸다. 2017년부터 영업했다더니 그때부터 쭉쭉 자란 거니. 학교 가야겠구나, 아니 홈스쿨링.
처음에 갔을 땐 에스프레소 라임 소르베를 시켰다. 카페에 자주 가지 않는 나로서는 처음 보는 메뉴였다. 라임 소르베랑 에스프레소가 같이 나오나요? 라임 소르베에 에스프레소를 부어주나요? 사실 거의 같은 말인데 신기해서 막 물어봤다. 먹고 나서 바로 행복해졌다. 진한 에스프레소에 시원하고 달콤한 라임 소르베. 그 뒤로 연이어 몇 번 갔는데 카푸치노는 진하고 부드러운 우유와 커피가 잘 어울렸고, 스페니시 라떼도 달콤하니 맛있었다. 아니 이 집 커피도 맛있잖아. 그래서 원두도 사 왔다. 맛있다. 스포트 커피 로스터즈라는 로스팅 작업실 겸 매장이 탄방동에 있다.(고 한다.)
술도 팔고 밤에는 음악도 조금 달라진다고 한다. 낮에도 사람이 가득가득 하진 않았다. 일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 지난번 뉴스레터를 읽은 독자 친구 다람쥐가 같이 까페에 가보자고 해서 며칠 전에 또 다녀왔다. 무난하게 아메리카노와 당근케이크를 먹었다. 앗, 오늘은 커피가 별로인데… 기분 탓인가. 당근케이크는 직접 만들고 바로 크림을 발라 주는 기분 좋은 맛이었다. 아니 하이드아웃보다, 성심당보다, 케이크 맛집이잖아. 인터넷 선배님들의 후기를 찾아보니 피스타치오 티라미수, 계절 과일이 올라간 치즈케이크, 딸기가 가득한 딸기라떼도 맛있다고 한다. 모든 메뉴가 맛있을 것 같구나. 야금야금 먹어봐야지.
사장님 인터뷰 기사를 읽었는데, 처치앤댄스홀이라는 가게 이름은 자메이카에서 주중에는 클럽, 주일에는 교회로 쓰는 공간에서 떠올렸다고 한다. 공간을 활용하는 유연한 방식과 이질적인 장소의 만남이 흥미로웠다고. 본인 역시 교회와 댄스홀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본인의 이야기이기도 하단다. 호기심이 발동해서 자메이카의 교회이자 클럽인 그곳이 혹시 관광지거나 특정한 장소인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다가 댄스홀이 자메이카 음악의 한 장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음악, 커피, 술을 파는 재미있는 가게를 교회로 오해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지, 교회가 그런 곳이면 더 좋지. 사장님 인터뷰에서도 뮤지션 김반장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한다.
Real church is pleasure dancehall. Isn't it?
기쁨의 춤을 추는 곳 그곳이 교회라네!
화장실에는 지금까지 올렸던 공연의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포스터도 어찌나 잘 뽑았는지 어디 하나 빠지는 데 없이 아름답구먼. 비 오는 날엔 비를 보고, 눈 내리는 날엔 눈을 보며 한없이 앉아 있고 싶은 카페다. 대흥동 성당의 종소리도 잘 들린다. 그게 기도고 여기가 교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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