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완주에서 생길 일

완주행보_完州行步 03

by badac

쓴 대답

점심시간에 직장 상사가 사주는 커피를 얻어먹었다. 커피집 주인이 내 얼굴을 보더니 ‘엇! 지난번에 발리 가신다던 분?’ 하며 알은체를 했다. 발리 가기 전 완주에서 여행 강연회를 했을 때 오셨던 분이었다.

그때 나는 수 년째 여행하듯 돌아다니면서 사는 사람으로 회사 생활 아닌 다른 방법으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길에서 커피도 팔고 글도 쓰면서 돈 되는 일은 이것저것 하는데 이런 유료 강연도 하고 애 봐주기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발리 여행을 다녀온 뒤로는 다른 나라에서도 그런 식으로 살아보고 싶어졌다고, 준비 중이던 두 번째 긴 여행에 대해 신나게 말했던 기억이 난다. 경비 마련 차원에서 첫 번째 여행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 방문 판매하러 올 테니 그때 만나자는 약속도 했는데 직장인이 되어 다시 만났다.


두 달 다녀왔는데 별로 재미 못 봐서 금방 돌아왔고 지금은 돈 벌려고 취직해서 내려왔어요,라고 인사했다. 그럴 때마다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 여러 가지 시도하며 살아봤지만 결국은 다시 직장인이 된 현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이 서글프다.


빌어 먹을 수 없다면 벌어 먹어야

4년 간 백수로 살면서 소비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돈은 필요했다. 먹여주고 재워주는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실제로 돈을 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전의 직장 생활로 벌어놓은 돈이 있어서 그나마 그렇게 오래 백수로 지낼 수 있었다.


특별한 재능과 기술 없이 적당히 골라서 하는 일로는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작정하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빌어’ 먹기를 바랐지만 결국은 스스로 ‘벌어’먹어야 한다. 창업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시 임노동자가 되는 길 뿐이었다. 나는 직장 생활이 불가능한 종류의 인간이라고 결론지었는데 다시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니 스스로를 부정하는 셈이었지만 다른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래서 우울한 채로 일자리를 알아보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walking.jpg 어제 출근 길


해볼 만 한 선택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다음 선택은 시골살이인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당장 농사꾼이 될 수 없으니 지역에 일자리를 얻어 직장인으로 살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하는 거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생활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지역에서 일한 적은 없으니 뭔가 새로운 도전. 이전의 직장생활보다는 오래 다닐 가능성이 있다.


정해진 시간에 출근해 일하는 데 하루를 쓰고, 동료들과 관계 맺으며 일해야 한다는 건 어느 직장이나 같을 터다. 그래도 건물과 자동차, 바쁜 사람들로 가득 찬 서울보다는 지내기가 낫다. 코스모스와 해바라기가 양옆으로 늘어서 있는 강둑길을 걸어 출근할 수도 있다. 백수 생활하면서 모아둔 좋은 기운과 오랜만에 맛보는 월급 받는 재미가 얼마간은 가겠지. 그 사이 조금 자랐을 테니 직장생활도 더 현명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그렇게 나는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돌아다니며 사는 사람에서 완주에 사는 사람, 처음으로 독립하는 사람으로 계속 글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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