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집 구하기

완주행보_完州行步 04

by badac

시골집환상

시골 살겠다고 내려온 마당에 내가 얻은 집은 원룸 월세다. 마당 딸린 시골집에서 꽃밭과 텃밭을 가꾸며 살고 싶었지만 마을에 아무런 연고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게다가 남편도 아이도 없는 내가 생활정보지와 인터넷 검색으로 그런 집을 구하기란 내게 없는 그 모든 것을 당장 만들어내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시골집 좋죠, 근데 여자 혼자 살기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요.

(회사 동료, 40대, 남, 비혼)


‘여자 혼자’라는 말에 발끈해서 내가 잘 살아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말겠다고 다짐한 것도 잠시, 솔직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집을 구하려면 어찌해야 하냐고 물어도 집 구하기가 힘들 거라는 말만 할 뿐 뾰족한 수를 알려주거나 집을 소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집 구한다는 소문을 내고 다녀야 그나마 몇 군데 볼 기회라도 생기는 모양이었다. 내려온 지 3년도 넘는 한 친구가 그렇게 집을 보러 다닌다고 했다.

dreamhouse.jpg 나도 이런 집에서 살고 싶었다

시골에서는 놀리고 있는 빈집도 외지 사람한테 쉽게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관공서 귀농귀촌 지원부서에 대차게 전화해 이것저것 물어볼 주변머리도 없어서 생활정보지와 부동산, 읍내 아파트 관리사무소 게시판에 붙은 광고를 보고 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는 다녀야겠다고 결심했다)


없이 사는 사람

아파트라 해도 차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있고 산을 바라보고 있어서 전망이 참 좋았다. 차도 없이 여러 군데 돌아다니며 집을 보고 비교할 여력이 없어서 두 번째로 본 집을 계약하기로 했다. 경험이 없어서 어떻게 따져가며 집을 구해야 하는 지 기준도 없었다. 내게 없는 이 수많은 것들은 공짜로 어느 날 생기는 게 아니고 갑자기 남들로부터 얻을 수도 없으니 그냥 정신없는 채로 결정했다.


이십 대 중반 즈음 독립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모아놓은 돈이 없어서 같이 살던 언니에게 부탁했다. “엄마한테 보증금 좀 마련해달라고 말해줘.” 당연히 씨알도 안 먹혔다. 그 뒤로 1년간 호주에 나가서도 살아보고, 기회 되면 집 밖으로 한두 달씩 살러다니고, 그러다 길고 긴 시간을 돌아다니면서 독립 비슷하게 혼자 살아봤지만 아니올시다. 기본적인 의식주 외에 공과금이나 자잘한 살림에 들어가는 생활비를 챙긴 적은 없으니 그래 봤자 주변인들의 호의로 살아가는 여행자, 누군가의 돌봄을 받는 사람이었다.


계약… 할게요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집을 보고 왔다. 회사 근처 식당가로 걸어가 점심을 먹는 도시 직장인의 점심시간과 달리 여기는 사무실에서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만 차로 10분 이상 걸린다. 때문에 사무용품을 산다거나 은행업무를 볼 때도 점심 먹고 돌아오는 길에 들르곤 한다. 자동차 한 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대부분 단체 행동이다. 그래서 집도 동료들과 함께 보러 갔다. 집의 전망, 상태, 집주인의 인상 등 내가 썩 맘에 들었던 걸 그이들도 맘에 들어했다.

searching.jpg 집 보러 왔습니다다

월 25만 원이 부담 없는 금액은 아니지만 서울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으로 내려온다고 해도 월세 시세는 아주 낮게 책정되지 않는다. 서울보다야 싸지만. 월세를 부담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만 월세집을 얻는다. 15만 원 이하의 집은 창문도 없고 겨우 발 뻗고 누울 수 있는 고시원 수준이라 들었다. 1년에 100만 원도 안 하고, 말만 잘하면 공짜로도 살 수 있다는 집은 소문 속에만 있거나 특별한 인맥을 가진 사람만 가능한 일 같았다. 그 집을 계약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게다가 관리비도 월 3~4만 원 수준으로 적당했다. 솔직히 나는 그 정도가 괜찮은 건지도 몰랐지만.


현재 세입자가 살고 있는데 집 상태는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더러웠다. 어떻게 여기서 사실까 싶은 정도. 집주인 아저씨는 당신도 몇 달 전 집을 산 이후 집 상태를 처음 본다며 되려 내게 미안해했다. 웬만하면 고쳐주고 새로 해 줄 테니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남겼다가 한두 시간 후 전화해 다시 말하기를 문의 전화가 많이 오니 빨리 결정해달란다.


네, 계약할게요. 대신 지금 세입자 빠지면 한 번 같이 보시게요*.


* ~시게요 : 전주 전북 특유 말투. 합시다의 능청형. ‘이제 가시게요’ ‘저거 드시게요’ ‘이리 오시게요’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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