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행보_完州行步 05
괜찮은 집, 불안한 거래.
인터넷등기소 사이트에서 700원 결제하고 등기부등본을 떼 봤다. 생전 처음 보는 어려운 말들로 가득했지만 근저당 말소 같은 말로 보건대 별 문제없는 부동산 같았다. 직장동료가 보곤 깨끗한 거 같다고 했다. 프린터에 문제가 있었는지 출력이 잘 되지 않길래 나중에 하려고 일단 닫았다.
한 가지 문제라면 명의자의 나이. 78년 생으로 내가 본 집주인 아저씨의 나이라곤 믿기지 않았다. 동생쯤 되는 거 같았다. 인감도장이 날인된 위임장을 받는 게 원칙인데 통상적으로 가족관계 증명을 확인하고 계약을 한단다. 확실하게 등기부등본을 출력해놓으려고 다시 인터넷등기소에 접속했더니 열람 후 1시간까지만 유효하다며 출력불가다. 다시 결제하고 출력해야 하나 싶다가 봤으니 되었지 싶어서 말았다.
며칠 뒤 역시 점심 먹고 들어오는 길에 집주인을 만나 계약서를 썼다. 부동산에 가지 말고 직거래하자는 데 얼떨결에 동의하고 나니 계속 마음이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그날따라 같이 갈 직장 동료도 마땅치 않아서 완주 절친 ㅈ과 둘이서 집주인 아저씨가 사는 집으로 갔다. (생각해보니 이것도 위험한 일이었다)
명의자와 직접 계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가족관계 증명서 보여주면서 확인만 시켜준다는데 괜찮을까. 계약서를 꼼꼼히 읽고 내가 원하는 집수리 요청사항도 특약에 포함시켜서 손해보지 않는 계약을 할 수 있을까.
전날은 새벽까지 잠을 못 잤다. 이게 뭐 별거라도 이것 때문에 잠이 안 오는 건 아닐 거야 싶었지만 며칠 동안 머리가 지끈거렸던 게 아마 처음해 보는 계약 때문에 부담돼서 그랬던 거 같다. 그렇지만 계약 후에도 마음은 편치 않다. 관례적으로 넘어가도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게 뭔지 몰라서 내가 잘 한 건지, 너무 소심하게 걱정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님 정말 큰 실수를 한 건지 마음이 초초하고 오락가락했다.
내 걱정 먼저
‘보증금 300만 원 떼 먹히겠어, 괜찮겠지. 월세 장사 하고 싶어서 집 샀다는데. 그리고 300만 원 가지고 인감증명이니 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 그리고 이미 부동산 안 가도 된다고 말도 했는데. 시골에서는 직거래도 많이 한다더라.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최소한 명의자 이름으로 된 계좌로 계약금과 월세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는데 없단다. 계약서에는 명의자인 동생의 이름과 대리인인 집주인 아저씨 이름이 나란히 있고 사인은 아저씨 것만 되어있다.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할 걸 그랬다.
이사일은 기존 세입자 나간 뒤에 정하기로 했다. 출입문 번호키와 방충망 설치에 대해 구두로 약속은 받았는데 이런 내용들도 계약서 상에 명시하고 명의자 사인을 제대로 받거나 위임장을 챙기거나 해야 했던 걸까. 그것 말고도 집 상태를 보고 손봐야 할 게 더 나올지도 모르는데 그것만 계약서에 쓰자고 하기도 어려웠다. 모든 선택이 그러하듯 이런 결정도 결과를 감당해야 한다. 중개수수료 아끼자고 직거래하기로 했으면 그에 따른 불안도 감수하고 집주인한테 부동산 갑시다 못했으면 받아들여야지. 사실 나는 중개수수료를 아낀다기보다는 집주인의 횡포에 대한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세입자가 너무 시시콜콜 따지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안 되는 거라고 주눅이 든 편에 가까웠다.
혼자서 잘할 자신이 없으면 마음 편하게 부동산에 가서 하자고 할 걸 그랬나. 신나고 설레는 독립인데 처음부터 이렇게 불안하니 이건 아닌듯하다. 아직 기회는 남았나? 이미 다 끝난 거 아닌가. 아저씨의 선의를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