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완주행보

확정일자 받기

완주행보_完州行步07

by badac

계약서의 기본도 모르면서

“흠. 직거래를 하셨네요, 그것도 사인으로. 이걸 어쩐다. 잠깐 앉아 계세요. 전입신고 먼저 해 드릴게요. 아 근데 임대인이 확정일자 신고를 하러 오셨네요? 임차인이 하는 건데요.”

“네? 제가 세든 사람인데요. 세든 사람이 보증금 떼먹고 갈까 봐 집주인이 받는 게 확정일자인가요?”

“아뇨. 세든 사람이 받는 거죠. 본인이 신바닥 씨 맞죠. 임대인이시잖아요?”

“저 세든 사람인데요. 계약서에 임대인 임차인을 바꿔 쓴 건가요? 제가 임차인이군요”


아. 이런. 나름 꼼꼼히 본다고 봤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도 몰랐다. 게다가 이런 공문서는 서명 말고 도장으로 계약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한다. 다시 고민에 빠졌다. 확정일자 신고도 못했는데 보증금을 미리 보내줘도 되나?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계약서를 다시 쓰자고 할까? 집주인이랑 얘기하는 거 긴장되는데…

07_01.jpg 자전거 빌려타고 면사무소에 갔다

계약서 다시 씁시다

집에 돌아와서 친구 ㅈ에게 말했더니 펄쩍 뛰면서 직거래나 대리인 계약은 종종 관행적으로 한다고 해도 보증금을 미리 보내는 거야 말로 절대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맘 편히 수수료 내고 부동산 가서 계약서 쓰라고.. 그래서 떨리는 가슴 부여잡고 집주인 아저씨에게 전화했다.


뭐라고 말할지 연습도 몇 번 하고 걸었는데 안 받으신다. 그래 나는 잘못한 거 없어. 꿀릴 것도 없어. 최악의 경우? 집주인이 빈정 상해서 안 하겠다고 하면 나도 알았다고 계약금이나 물어내라고 하면 되는 거지. 나는 거기 말고 다시 천천히 집을 알아보면 되잖아.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신랑도 그렇고 다들 절대 보증금은 미리 보내는 게 아니라고 하네요. 그리고 확정일자 받으러 면사무소에 갔더니 저희가 쓴 계약서에 임대인 임차인을 바꿔 썼더라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부동산에 가서 계약서를 다시 쓰시면 어떨까요. 저도 선생님도 처음이라 이런 실수가 있었던 거 같아요”


다시 연습하고 있었더니 전화가 왔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신랑 얘기는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서 못 듣으셨으려나. 여자 혼자 산다는 걸 들키지 않도록 은근히 신랑 얘기를 꺼낸 건데.


“근데 그쪽에서 비용이 드는 건 아시죠?”

“네. 내야죠. 각각 얼마씩 이라고 정해져 있을 거잖아요”

“한 십만 원 할 겁니다”


그래, 십만 원으로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사라진다면 그렇게 하자. 이제 되었다. 발 뻗고 자보자. 그런데 다음날 아침, 아저씨는 또 말을 바꾼다. 이쯤 되면 상습적인 게 아닐까 싶은데…


월세 처음 받아본다더니…

“임대인 임차인만 바뀐 거면 그것만 바꿔서 다시 쓰면 되지 않을까요, 꼭 부동산 가야 하나요?”

“면사무소에 확정일자 신고하고 싶은데 부동산 통해서 한 게 아니면 도장 찍힌 계약서로 가져오라 그래서요.”

“제가 찾아보면 도장 있을 겁니다. 아니면 하나 파도 되고요.”


나도 서둘러 읍내에서 도장을 하나 팠다. 내 바로 앞에 집주인이 도장을 팠는지 시험 삼아 찍은 종이에 명의자 이름이 있었다.

계약서를 쓰면서 알게 된 사실, 집주인은 내가 사는 집 말고도 월세 받는 용으로 서너 채를 더 갖고 있단다. 다른 집들은 다 부동산을 통해서 각각 10만 원씩 내고 계약했는데 몇 번 옆에서 보니 돈이 아까워서 직접 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처음이라는 말은 월세 장사를 처음 해본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직접 계약하는 게 처음이라고. 하하, 내가 우리 둘 다 처음이라고 그래서 자존심 상하셨나.

07_02.jpg 알고보니 아파트 부자 집주인 아저씨

집 계약 대장정 드디어 완료

좋겠다. 부자여서. 이 아저씨는 집이 서너 채에, 세금 적게 내려고 동생 이름으로 사고, 게다가 나한테 월세 소득공제 신청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넌지시 얘기한다. 그렇지 않아도 알아봤는데 집주인, 그러니까 명의자의 계좌로 월세를 보내는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명의자 이름으로 된 통장 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물어봤던 거다.


“집주인 통장으로 월세 보내는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다더라고요. 집주인들은 세금 때문에 세입자가 소득공제 신청하는 거 안 좋아들 하시죠.”

뒷말은 못 들은 건지 못 들은 척 하는 건지 아이고 다행이네, 잘됐네 하더라. 자기 처음이라고 자꾸 어리바리한 척 하면서 얼마 되지도 않는 보증금 미리 보내 달라고 하던 게 생각나 괘씸한 마음이 든다.


때마침 2015년 9월 14일부터 계약서 스캔파일만 있으면 인터넷으로 확정일자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아저씨가 새로 만들어온 계약서에 또 오타가 하나 있다. 명의자인 자기 동생 주소를 잘못 쓴 것. 글자 하나라 무리 없이 처리될 거 같기도 해서 그날 밤 집에서 일단 신청하고, 이거 마저도 잘 안되면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뒤척이며 힘든 밤을 보냈다.


다음날, 드디어 제대로 처리되었다는 문자를 받았다. 아이고, 고생했다. ‘계약하기’가 이렇게 신경 쓰이는 일이구나. 이제 정말 끝이지? 들어가 자기만 하면 되는 거지? 가족 중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집을 대신 사는 일도 흔하고 직거래도 곧잘 들 하기는 할 텐데 이 두 가지가 한꺼번에, 그것도 모든 일에 처음인 나한테 걸려서 조금 고생을 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10만 원을 아꼈으니 좋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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