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당근 비빔국수 미역국 호두강정 떡볶이 사이다
어제 실컷 울고나서 기분이 나아진걸까. 아침에 일어나니 컨디션이 꽤 좋았다. 커피도 내리고 각종 채소도 썰어서 준비했다. 이따 제대로 밥 먹을 거니까 이걸 아침식사라고 하긴 그렇고 커피에 곁들이는 간단한 주전부리. 빵이나 과일 먹으면 좋았겠지만 집엔 오이 당근 파프리카 양배추뿐이라... 일어난 시간은 6시 반. 조짐이 좋다.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뭘할까 하다가 넷플릭스에서 <다시 베를린에서>를 봤다. 40분짜리 4부작. 뉴욕 유대인 공동체를 탈출하는 여성 이야기. 강렬한 이야기다. 작년에 갔던 베를린 여기저기를 알아볼 수 있어서도 신기했다. <배움의 발견> 책도 트위터에서 좋다는 평을 많이 들었는데 조만간 사봐야겠다. 에피소드가 많은 시리즈물을 잘 못 봐서 영화나 단막극, 짧은 다큐만 가끔 본다. 넷플릭스 구독도 띄엄띄엄 구독했다 끊었다가 하는 편.
다 보고 나니 식사할 때가 되어서 간단히 비빔국수 만들어 어제 끓인 미역국이랑 먹었다. 책을 좀 들춰보다가 낮잠을 한 숨 자고 슬슬 동네 산책하러 나갔다. 강변에 걸으러 갈까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그냥 동네 골목길과 찻길을 걸었다. 올해 초에 서울에서 인터뷰 오셨던 분들에게 심심할 때 나가서 만경강변을 걷는다고 말했는데 몇 번이나 가고 있나. 거짓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정말 맨날 마당 나가듯이 가는 건 아니니까. 오랜만에 달려볼까도 싶었는데 달릴 힘까지는 나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 이렇게라도 나가야지 다음엔 달릴 수 있을 거 같아서 무겁고 의욕 없는 몸을 밖으로 밀어내 보았다. 어제 받은 좋은 친구들의 사랑과 응원의 말들을 연료 삼아 조금씩 조금씩.
산책길에 친구네 작업장 앞을 지나가다가 안에 사람이 있는 것 같아서 문 열고 들어가 인사했다. 간식거리를 만들어서 인터넷으로 판매하는 분들이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 너무 반가웠는데 엄청 가깝게 대화를 많이 하거나 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어색하게 음료 한 잔 얻어마시고 판매하시는 호두강정 얻어왔다. 팔아드려야 하는데 이렇게 준다고 그냥 받아와도 되나... 요즘 회사 그만두고 뭐 할만한 거 없나 생각을 많이 해서 이렇게 자기 사업 하는 사람들을 보면 관심이 간다. 구체적으로 형편이 어떤가 물어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 시기에 이렇게 꾸준히 주문 들어오고 일하시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다 싶었다. 많이 파시고 앞으로도 번창하세요. 인사만 하고 왔다.
새로 뭘 시작하려고 해도 원래 내가 관심 있는 분야나 잘 하는 일로 해야하는데 나는 딱히 어디 돈 쓰는 데가 없다. 옷이나 책, 가구나 소품을 많이 사거나 선호나 취향이 있는 것도 아니다. 뭔가 직접 만들어내는 건 좋아하는데 그건 작업자체의 기쁨보다는 호기심이나 경제적인 이유가 컸으니까. 장사를 하려고 해도 뭘 평소에 좋아하고 많이 사서 잘 아는 분야로 해야하는데 말이야. 내가 그나마 돈을 쓰는 분야는 책, 문구, 귀여운 잡화, 떡볶이. 그것도 엄청난 애호가도 아니고. 내가 잘하는 건 두려움이 없이 뭔가 시작하고 그냥 해보는 거랑 다음에 어떻게 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거. 일기 쓰고 편지 쓰고 끼니 챙겨 먹기. 인스타에 올릴만큼 엄청 예쁜 그릇에 플레이팅이 잘 된 집밥도 아니라 이게 또 콘텐츠가 될 거 같지는 않고, 나 정도 읽고 쓰는 사람은 어디다 내놓을 만큼은 아니어서 말이지. 그래도 내가 해서 특별히 좋은 거, 잘하는 거는 있겠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해도 진짜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차이가 있으니까 뭐라도 하는 사람이었던 나는 또 뭔가를 해야겠다고 다짐은 한다. 머릿속에 뭔가를 이리저리 굴리고 있는 중.
저녁에는 떡볶이를 해먹었다. 내일 도시락으로 싸가려고 반을 덜어놓고 반만 먹었는데 먹다보니 배가 터질 때까지 먹고 싶어져서 도시락통에 있는 것까지 다 먹어버렸다. 그리고는 너무 배불러서 나가서 사이다 사와서 마신다. 괜찮다. 오늘은 아침에 일찍 일어났으니까. 오늘 잘한 일은 그거 하나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