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쿠페와 함께한 드리프트의 인연
자동차는 어른의 것
초등학교는 걸어서 갔고
중학교는 버스로 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기숙사 생활
중학교 등교시간에 늦었을 때
주말이나 명절에 멀리 이동할 때
아버지가 운전하셨던 자동차가
내가 기억하는 자동차의 전부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나에게도 자동차는
그저 어른의 물건이었다
27살에 맞게 된 운명
27살, 회계사 시험을 합격하고
축하의 술을 진탕 먹고
회계법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년 차 막내 회계사로서
처음 투입된 업무는
자동차 회사의 회계감사
우연한 기회로
자동차 전문 강사(인스트럭터)분이
점심식사 직후의 자투리 시간에
배부른 나를 조수석에 태우고
드리프트를 해주셨다
글을 준비하며
어느새 희미한 그 시절을 돌아보니
자동차에 대한 첫 번째 운명이었다
당신은 아직 어리거나 이미 심장이 멎었거나
영화 속에서만 봤던 드리프트
5분 정도의 꿈같은 시간을 보내고
다시 막내 회계사의 현실로 돌아왔다
그로부터 약 1년 후
회사로부터 얇은 인쇄물을 받았다
인생에서 처음 펼쳐보는
자동차 브로셔(홍보책자)
그제야 알았다
내가 경험한 드리프트 자동차는
현대자동차 <제네시스 쿠페>였구나
이 차는 현대자동차의
본격적인 스포츠카로서의
새 출발을 알린 모델로 기억한다
당시 두 가지 광고 문구가 있었는데
둘 다 너무 멋있었다
유치하고 뻔하다는 사람도 많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좋다
[1]
제네시스 쿠페다
가슴이 뛴다
그렇지 않다면
당신은 아직 어리거나
이미 심장이 멎었거나
[2]
세상의 시선과 기준에만 갇혀 살기에는
인생은 짧다
후륜 구동이 뭔지
3.8리터와 2.0리터 엔진은 뭔지
303마력은 그렇게 높은 것인지
브렘보 브레이크가 그렇게 유명했는지
그땐 하나도 몰랐지만
매끄러운 옆 라인과 (앞모습은 좀...)
대놓고 유혹하는 광고문구만으로
태어나 처음으로 자동차를 사고 싶었다
그러나
두 발 편히 잘 곳부터 해결해야 할
사회초년생이라는 현실에서
브로셔를 멋있게 코팅해놓는 것으로
내가 맞이할 긴 인생을 준비하기로 했다
이때부터
자동차 브로셔를 모으기 시작했고
자동차 광고 문구를 기록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알아가고 좋아하기 시작했다
드리프트라는 그 5분 남짓의 시간
살아온 시간으로는 0.000034%였던 그 시간과
인생의 우연에 감사한다
에피소드 3 끝!
빠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