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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민 회계사 Sep 03. 2021

아날로그, 기억을 위한 불편함

10년 동안 잠든 사진을 깨우며

10년 만에 저를 찾으셨군요

지난 에피소드 4에서는

수동변속기를 알게 해 준

10년 전 유럽여행을 기록했다


글 1개 쓰려고

10년 전 사진 폴더를

하루 종일 뒤지고 있자니

나름 국가별, 날짜별로 정리된 폴더들이

나를 한심하게 보며


저기...

뭘 그렇게 사진을 찍으셨어요?

10년 동안 찾지도 않을 꺼면서...

하는 것만 같다


그렇다

좋은 사진을 건져보겠다고

똑같은 장면을 아이폰으로도 찍고

가져갔던 디지털카메라로도 찍고

그러다 아내가

<그만 좀 찍고 이동하자>고까지 했는데

10년 동안이나 안 열어볼 줄은 몰랐다


그렇게 내가 찾지 않은 사진들은

외장하드와 유료 클라우드 보관소에서

생명을 잃어가고 있었다


기억을 위한 불편함

책 또한 그렇다

교보문고에 갈 때마다 사놓은 책들을

읽고 싶은 순서로 책장에 꽂아 놓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책장에서 잠들어 가고 있었다

나름 체계적으로...


얘들을 다시 깨워야겠다 결심한다

가장 처음에 꽂혀 있던 책은

이채훈 저자의 <크리에이티브는 단련된다>

책 표지가 노랗고 예뻐서 첫 번째였을까


이채훈 작가님이 2019년에 내놓으신 생각을 2021년에서야 공감합니다


일단 펼쳐본다

책 사이에 당시 영수증이 눌려있다

흐릿하게 보이는 2019년 10월

너는 3년 동안 여기 있었구나


후회 속에 단숨에 다 읽었다

나도 크리에이티브한 인간을 꿈꾸기에

좋은 문구가 너무 많았는데

가장 기억나는 문구는


디지털은 망각을 위한 편리함이지만

아날로그는 기억을 위한 불편함이다


나를 돌아본다

디지털 기술과 검지 손가락의 도움으로

사진을 1만 장이나 찍었지만

마음속에 기억나는 사진은 많지 않았다


아기의 돌 사진첩처럼

돈도 들고 보관도 불편하겠지만

1만 장의 사진 중 몇 장이라도 인화해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앨범에 넣어두었다면

가끔 앨범을 뒤적이며

그땐 그랬지 하며 웃었겠지 싶다


그래서 에피소드 4를 쓰고는 두 가지를 생각했다

(1) 사진은 추려서 아날로그로 인화하자

(2) 글은 브런치에 디지털로 쓰자(에피소드 5)


독일, 스위스, 프랑스 그리고 자동차


1. 독일

사진 1만 장 중에 독일 사진이 대략 7천 장

가장 오래 머물렀고

자동차에 대한 사심이 가득한 것도 있지만

처음 방문한 유럽의 처음 국가라서

미친 듯이 셔터를 누른 것 같기도 하다

(스위스, 프랑스에서는 기력이 쇠한 것도 있고;;)


뮌헨, 퓌센, 하이델베르크 등

독일 대부분의 도시가 아름다웠지만

로덴베르크 옵더 타우버

(Rothenburg ob der tauber)는

중세시대의 동화 속 마을 같아서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기억에 남는 것은

독일 회사인 BMW가 인수한 영국제 자동차

미니쿠퍼!


미니쿠퍼의 클래식함과 동글동글한 디자인은

본래 고향인 영국뿐 아니라

로덴부르크라는 독일 소도시가 주는

아기자기한 옛 느낌에도 완벽히 어울리는

내 마음속 또 하나의 주연이었다

이 세로 사진은 1년 넘게 핸드폰 배경화면이었다
이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을 당시 여기 서 있어서 행복했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자동차는 폭스바겐 6세대 골프)

유럽이 왜건*의 천국인 건 글로 봤지만

실제 보니 정말 왜건이 많았다


아래 사진에는 한 컷에 3대의 왜건이 있다

가장 왼쪽 검은색 차량은 볼보의 왜건

(볼보가 가린 회색 차량도 왜건 같다)

중간의 회색 차량은 BMW 5 시리즈 왜건

가장 오른쪽 검은색 차량은 아우디 A6 왜건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세단의 형태로 판매되는 차량들이라

한 컷에 절대 담을 수 없는 사진이다


*왜건

승용차와 짐차가 결합한 형태로

세단과 유사한 느낌을 주면서

짐을 많이 실을 수 있어 실용적이다

왜건으로 가득한 도시(어디 도시인지는 기억이 안 나네요)

마지막으로는 기아자동차의 2세대 스포티지

한국에서도 엄청나게 팔린 자동차였지만

다른 나라에서 본 스포티지는

익숙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기도 하고

연예인을 본 것처럼 낯설기도 했던 그런 존재

10년이 지난 지금에도 멋진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2. 스위스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보느라

스위스 속 자동차 사진은 없다

일정이 1박으로 짧기도 했고

자동차는 잠시 접어두고...

아쉽게도 자동차는 못 찍었지만

프랑스로 이동하는 길에서 만난

초록빛 자연 속 아스팔트는

달려보지 않아도 비단결 같은 매끈함이 느껴진다


때론 목적지가 아니라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만난

음악과 대화가 더 생각날 때가 있다

스위스에서는 도로가 그랬다

이렇게나 매끈한 도로에 이때 왜 아무도 없었던지...

3. 프랑스

프랑스에서는

지금도 보면 귀여운

르노 자동차의 전기차 <트위지>를 알게 됐고

저분도 많은 질문을 받았을까?

저물어가는 하루

프랑스 개선문에서

다시 만난 미니쿠퍼도 반가웠고

프랑스에서도 잘 어울리는 미니쿠퍼!

초럭셔리 세단인

롤스로이스(우측)에서 내리는 사람보다

프랑스제 푸조 자동차(좌측)에서 내리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경호원이 붙었던 광경도 떠오르지만

이 사진을 찍은 직후 양복 입은 남자가 나를 노려본 것 같은 느낌이 기억난다

유럽 초보자에게

프랑스는 역시 에펠탑!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그렇게 2012년의 유럽여행은 끝났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에펠탑과 함께한 모든 날이 좋았다.(도깨비... 다시 보고 싶네요)

가수 노사연 님의 <만남>에서는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라고 하지만


컴퓨터내가 10년 전에 찍었고

컴퓨터에서 10년 동안 잠들었으며

글쓰기가 10년 만에 깨운 사진과의 만남은

                    우연이 만든 것이라고 믿는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삶은 우연의 연속 같다

욕심이 있다면

내 삶이 멋진 우연들로 가득했으면 한다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그래서 글을 쓴다


에피소드 5 끝!

빠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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