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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승민 회계사 Oct 10. 2021

언젠가 하겠다는 건 영원히 안 하겠다는 것

일단 운전면허시험장으로 출발!

인생이 바뀌는 순간

어떤 순간은 인생을 바꾼다

무작정 떠난 여행이나

무심코 고른 책의 어느 구절 같은,

그런 순간


2019년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는 설렘 속에 맞이한

아버지의 죽음이 

나에겐 그런 순간이었을 것이다


생이 다한 순간, 감겨드려야만 했던 그의 눈꺼풀

적막한 병실에서 시작되는 흐느낌과 오열

끝내 병원 침대를 벗어나지 못한 몸 속 매캐한 냄새

내 혀와 윗입술이 닿을 때 느껴지는 짠 눈물

마지막으로 어루만져보는 그의 손바닥 속 작은 온기


그의 죽음은

나를 있게 해 준 사람과 헤어짐의 슬픔을 넘어

오감으로 또렷이 느껴지는 깨달음이었다

나는 왜 내 삶이 영원할 것처럼 살았을까


언젠가라는 건

장례식과 49제가 있었던

유난히도 춥고 쓰라린 겨울이 가고

따스한 바람과 함께 봄이 찾아온다

10년 전, 재미로 캘리그래피 수업을 처음 들었을 때 해 본 <봄이 오다> 중 <봄이>. <오다>는 어디 있는지...


내 삶의 기록들을 노트 앱 <에버노트>에 해왔다

돌이켜보니 인생에서 잘한 일 중 하나다

목적은 없었으나 뭔가를 기록했다는 것은


봄바람을 맞으며 키워드를 검색한다

죽음, 후회, 버킷리스트, 하고 싶은 일... 등

여러 가지 문장*들이 나타난다


가장 기억나는 문장은


언젠가 하겠다는 것은

영원히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


아차! 하는 생각에

적어도 몇 년은 묵힌 것 같은

<하고 싶은 일> 리스트를 뒤적거려본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수동 자동차를 렌트해서 유럽 자동차 여행하기


아...

언젠가 하고 싶다고 적어놓은 것이

벌써 7년이 지나고 있다

메모해둔 문장처럼

이러다간 정말 영원히 못하겠다


다시 찾은 운전면허시험장

결심한다

일단 수동운전을 시작하자

그래야 유럽 자동차 여행을 할 수 있을 테니


하지만 많은 생각들이 든다


30대 후반이라는 나이와

이제 막 개업해서 자리도 못 잡았는데

고작 수동운전이란 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고 싶은 일에 적어놨지만

진짜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도 이젠 모르겠다

어쩌면 그저 여행의 감성에 젖은

허세 가득한 버킷 리스트는 아니었을까


생각만 하고 있으니

별 것 아닌 것도 시작하기가 어렵다

다시금

아버지를 떠나보낸 순간이 떠오른다


생각이 단순해졌다

죽기 전에 1%라도 후회할 것 같다면

심지어 대단한 것도 아니라면

그냥 해봐야겠다는 것


그 길로

프리랜서로서 누릴 수 있는

생소한 대낮의 퇴근길에

양재동 자동차 운전학원을 찾았다


십수 년 전 내가 딴 운전면허는

수동운전을 할 수 있는 1종 보통 면허지만

수동운전에 한해서는

장롱면허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거의 20년 만에 다시 찾은 운전전문학원
실제로 수동연수를 받았던 자동차, 아마 현대자동차 엑센트였던 듯

5일 동안 10시간 도로연수 프로그램이

가장 저렴했다

그래서 일단 그것부터 신청했다


수동변속 자동차로 하는 유럽 자동차 여행이

7년, 8년... 그렇게 영원히

메모 속 <하고 싶은 일>로만 남겨질지


혹은 실제로 해보고

수동 자동차를 렌트해서 유럽 자동차 여행하기

이렇게 다 했다고 한 줄을 그을지의 선택에서


한 줄을 그어보겠다

이제라도 해보겠다

선택한다


대단한 건 아니라도

시작은

굳은 가슴에 조그만 설렘을 가져온다


에피소드 6 끝!

빠바방~



*[참고] 당시 기록했던 여러 가지 문장들


연금술사 등 저자 파올로 코엘뇨의 인터뷰에서

늘 하고자 했던 일을 할 시간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헌구 교수의 저서 <가슴 뛰는 삶>에서

인생의 막바지에서 우리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원했으나 한 번도 시도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한다


딘 그라지오시의 저서

<백만장자의 아주 작은 성공 습관>에서

우리는 현재보다는 다음 주, 내년을 바라보며

늘 미래를 향해 살아간다

하지만 현재와 친해져야 한다

내가 승진하면, 창업을 하면

내 아이들이 기저귀를 뗀다면

그때는 내가 행복해질 거야! 


이러한 생각은

행복을 알 수 없는 불확실한 시점으로 미루려는

변명에 불과하다


이렇게 계속 변명하면

우리는 더 이상 미래가 없을 때까지

즉, 죽을 때까지 불행할 것이다


첼리스트 요오마의 인터뷰 중에서

should를 want to로 바꾼 것

그것이 자신의 음악인생을 바꾸었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당위의 브레이크>가 지배하는 삶에서

<이상의 엔진>이 지배하는 삶으로

바뀌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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