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러치 페달 하나 더 있을 뿐인데...
운동신경과 운전신경
운동신경이 좋지 않다
지금도 유일하게 하는 운동은 수영
하지만 코로나로 이젠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있다
20대 어느 시절 바다에 빠져
의식을 잃고 병원에 실려가 죽다 살아난 경험으로
'놀다가 물에 빠져 죽는 건 너무 허무하다'
는 생각이 들어 수영을 배웠다
처음에는 자유형은커녕
그때의 공포감에
물에 얼굴을 집어넣는 것도 어려웠다
"아이고 총각, 수영을 왜 그렇게 못해~"
같이 시작했던 초보반 아주머님이
이 말을 남기며 중급반으로 떠난다
"제가 원래 다 늦어요" 하고 웃으며
그들과 작별하고 새로운 초보반을 맞았다
2달째 되어서야 알게 됐다
물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난 그냥 운동신경이 없구나
그렇게 약 4개월 더 초급반에 머물며
중급반으로 몇 반 더 떠나보내고서야
나는 자유형을 할 수 있었다
자동차 운전도 수영 같은 면이 있다
운동신경이 아닌
운전신경이라고 해야 할까
자동변속기 자동차는 페달이 두 개다
밟으면 가는 엑셀과 밟으면 멈추는 브레이크
수동변속기 자동차는 여기에
<클러치>라는 페달 하나가 왼쪽에 더해진다
고작 그거 하나 다를 뿐인데
수동 자동차 도로연수를 시작하니
도로 위에 어린이가 되어버렸다
출발은 울컥 대고
시동은 꺼지고
언덕길에서 차는 뒤로 밀리고
'아 나는 운전신경까지 없었던 것일까'
그래도 친절하신 운전연수 선생님 덕분에
10시간의 도로연수를 마치고 나서는
수동운전에 웬만큼 익숙해졌다
(고 생각한 건 지나 보니 착각이었다)
수동운전의 요령 3가지
도로연수, 그리고 책과 유튜브에서 배운 뒤
수동운전을 2년 넘게 해 본 경험에서
실용적인 목적에서는 딱 3가지만 알면
수동운전을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출발(평지)
요약 : 부드럽게 클러치 떼기 + 부드럽게 엑셀 밟기
자동변속기 자동차는
기어를 D(Drive) 모드에 두고 브레이크만 떼도
슬슬 차가 앞으로 나간다
수동변속기 자동차는 D 모드가 없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떼도 아무 반응이 없다
1단으로 기어를 넣고 클리치를 떼야 출발한다
이때 클러치를
아무렇게나 떼 버리면 안 되고
서서히 떼야한다
확 떼 버리면 시동이 꺼지기 때문이다
출발할 때
시동이 꺼질 수 있다는 것에서
수동운전의 두려움이 시작된다
나 역시 도로 연수를 받을 때
시동을 20번은 넘게 꺼뜨린 것 같다
뒤차들의 경적소리에
셔츠가 참 많이도 땀에 젖었다
클러치가 떼지는 느낌은 자동차마다 다르다
클러치가 떼지는 감각을 익히는 것이
수동 자동차와 친해지는 첫걸음이다
클러치를 조금씩 떼다 보면
차가 앞으로 가려는 힘이 발생한다
차의 떨림으로 이 시점을 느낄 수 있다
그때 엑셀을 살짝 밟으면서
클리치를 서서히 마저 떼면 된다
2. 출발(언덕길)
요약 : 반클러치 + 조금 세게 엑셀 밟기
그런데 언덕길에서 출발을 하려면
위와 같은 평지에서의 출발 공식을 적용하기 어렵다
클러치를 떼는 순간 차가 뒤로 밀리기 때문이다
언덕길에서는
멀리서 보면 차가 뒤로 1cm만 밀려도
차 속에 있는 운전자는 뒤로 1m는 밀리는 느낌이다
그래서 무섭다
사실 경사가 심한 언덕길을 만나면
지금도 아주 약간 두근거린다
아직도 수영장에 처음 얼굴을 넣을 때
익사의 공포가 약간은 밀려오는 것처럼
언덕길에서의 출발 방법은 다양한데
클러치를 반클러치*로 해두면서
엑셀을 평지보다 더 세게 밟아 차를 출발시키며
클러치를 다 떼어내는 것이
가장 편했다
*반클러치
자동차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시점까지 클러치를 뗀 후
더 이상 떼지 않고 발로 그 시점을 유지하는 것
차가 밀리는 것을 막고자
사이드 브레이크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솔직히 좀 불편하고
대부분은 반클러치에 조금 더 세게 엑셀을 밟으면
언덕길에서도 자동변속기 자동차처럼
자연스럽게 출발할 수 있다
언덕길에 자신이 없다면
동네에서 찾을 수 있는 언덕길 중
낮은 경사로부터 시작해서 높은 경사로까지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3. 변속시점
자동변속기 자동차는
자동차에 설치된 컴퓨터 장치(TCU**)가
때로는 운전자도 모르게 알아서 변속해준다
**TCU(Transmission Control Unit)
엔진 회전수, 자동차의 속도 등을 근거로
자동차의 변속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장치
수동변속기 자동차는
운전자가 클러치를 밟는 동시에
기어를 1단에서 6단 등 기어 단수에 넣어
직접 변속해야 한다
사람의 머리와 손이 TCU가 되는 것이다
(1) 가속할 때
요약 : 엔진음이 좀 시끄럽다 느껴지면
수동 자동차 책을 보면
자동차를 속도를 기준으로 적정 변속시점이 있다
다만 굳이 다 외울 필요는 없고
(나중에는 몸이 기억하겠지만)
엔진음이 귀에 좀 시끄럽게 들릴 때 변속하면 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빠르고 신나게 달린다면
3,000 rpm***이상에서 변속하면 되고
자동변속기 자동차처럼 편하게 바꾸려면
2,000 rpm 정도에서 바꿔주면 된다
***RPM (Revolutions Per Minutes, 분당 회전수)
보통 자동차의 엔진 회전수를 나타내는 단위로서
간단하게 말하면 높을수록 자동차가 시끄러울 것이다
계기판에 한쪽은 속도를, 나머지 하나가 이 RPM을 표시해준다
(2) 감속할 때
요약 :
(감속 후 재출발) 브레이크를 다 밟고 + 해당 속도의 기어 변속 후 출발
(감속 후 정차) 브레이크를 다 밟고 + 20km 이하에서 클러치 밟기
가속할 때는 속도에 맞춰 기어를 바꿔줘야 하지만
속도를 낮출 때는 속도에 맞춰 기어를 바꾸기보다
원하는 속도까지 브레이크만으로 속도를 줄이고
감소된 속도의 기어단수로 바꾸고 재출발하면 된다
다만 완전히 0으로 정지하기 위해서는
자동차의 속도가 10~20km 정도일 때
클러치도 같이 밟아서
엔진이 꺼지지 않도록 한다
이 정도만 알아도
실생활에서 수동변속기 자동차를 다루는 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다
박지성이 될 수는 없어도
요즘은 정보가 참 많다
수동변속을 검색하면
힐앤토, 레브매칭 등 각종 전문용어가 나온다
(나는 여전히 이것들을 모른다)
그래서 시작이 어렵다
너무 많은 정보는
시작을 미루는 핑계가 된다
이것만 알면 해야지, 저것만 배우고 해야지...
대부분의 시작은
1에서 30 정도의 지식으로 충분하다
우리 인생은
머릿속이 100이 될 때까지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단 시작해보면
그것의 어떤 부분은
생각보다 하기 쉬운 것도 있고
하다 보면 실력이 느는 것도 있다
만약 하기 쉽지 않고, 실력이 늘지 않으면
자유형에 5개월이 걸린 것처럼
그 자리를 지키면 된다
그것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이라면
물론 시작한다고 해서
누구나 경지에 다다를 순 없다
내가 축구를 시작한다고
<박지성>이 될 수는 없는 것처럼
그럼에도 일단 시작해보면
적어도 그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는지는
알 수 있다
수영과 수동운전만큼은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었음을
<시작>을 통해 알았다
수동운전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혹은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에피소드 7 끝!
빠바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