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려고 그래?”라는 말을 싫어하게 된 이유

by 비코토

오늘은 담담하고 통제적인 나를 잠시 내려놓으려 한다. 대신 그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아이의 입을 빌려보겠다.


그럴 수도 있지 라고 되뇌이며 웬만하면 이해하려고 하는 나조차도 거부감이 드는 게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단정적인 말투"이다.


이래야만 한다

이러면 안돼

그러다 망한다

이래야 성공해

어쩌려고 그래? 등등


한 때는 이 말들이 정말 나를 위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정말로 따르려 했다.




중학생 때 성적이 꽤 괜찮았기에, 부모님은 내가 외고를 가길 원하셨다. 일반고를 가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외고를 가야 원하는 대학교 맞춰 갈 수 있다.

일반고 가면 갈 수 있는 대학도 못 간다.


생각해보면, 이 때부터 위하는 척하며 강요하는 듯한 말에 반항심이 싹 트기 시작한 것 같다.


외고 입시 시험 날, 집을 나섰지만 시험장으로 가지 않았다. 그리고 일반고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말에 반기를 들었으니 대신 내 말에 무게감을 더하려고 애를 썼다. 자정 이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며 모의고사도 전교에서 1등도 해보고, 수능도 썩 괜찮은 성적을 받아 가나다 군 모두 합격했다. 합격 발표 후 묘한 고양감에 한동안 젖어 있었다. 마치 부모님의 말이 틀렸다는 걸 증명한 것 같았다.




의도는 나를 위한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마음까지 흐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문제는 내용이 아니라 방식이었다. “이래야 한다, 이러면 안된다”는 식의 단정적인 말투에 숨통이 턱 막혀오는 것만 같았다.


내 사정이나 가능성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정답을 밀어붙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걱정처럼 들리지만, 실은 삶의 방향을 대신 정해주려는 그런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말은 크게 두 가지의 반응을 불러왔는데, 위축되거나 혹은 반항심이 들었다. 내가 진짜 잘못하고 있는 건가 자신감이 없을 때는, 인생이 망한 기분이 들었다. 반대로 어느 정도 자기 확신이 있을 때에는 ‘내가 맞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사실, 둘 다 멀리 보면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이 되어서야 조금을 알게 된 것이 있었다. 당시에는 맞다고 확신에 찬 사람들도 나중에 보면 틀릴 가능성도 있었다. 그리고 맞을지라도, 내 삶에 항상 맞는 정답은 아니기도 했다.


그리고 더 중요했던 건, 조언과 충고에 실린 무게는 내가 믿었던 것보다 가벼운 경우도 많았다. 내 삶을 대신 살아줄 게 아닌데, 자신의 경우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조언도 존재했으리라.


아마 문제는 말의 크기가 아니라, 내가 그걸 실제보다 너무 크고 진짜처럼 받아들였던 데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조언이나 충고를 해주면 말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강력하게 말해도 마음에 지나치게 깊게 담아두지는 않는다. 거리를 두고 더 이상 상처받거나 화내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그 내용을 곰곰이 생각해보고 내 경우에 맞다고 생각되면 취사 선택을 해서 나에게 맞게 반영해보려고 연습 중이다.


더불어 나도 누군가에게 내 말이 정답인 것처럼 쉽게 말하지 않으려고 한다. 단정적으로 결론짓기보다는, 함께 이야기 나누고 결론을 내려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