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다른 것을 좋아한 시간은 내게 무엇을 남겼을까

by 비코토

스스로를 “찍먹러” 라고 부르던 시절이 있었다. 하나를 진득하게 좋아하지 못한 채 내 관심은 사방팔방에 산재해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진짜 관심 있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쉽사리 입을 떼지 못했다.


무엇을 하더라도 채 2년을 넘기지 못해 남는 게 없었다. 풀코스를 뛴 뒤로는 조깅만 가끔 하게 되었고, 피아노도 연주회 2번 한 후에는 전자 피아노에 먼지만 쌓여갔다. 심지어 스스로에 대한 평가가 박한 시절이기도 해서 나는 산만한 사람이라고만 여겼다.


이렇게 바닥을 치던 자존감을 끌어 올려준 건 공교롭게도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한다고 생각했던 글쓰기였다. 우연히 눈에 띈 프로젝트에 글을 투고하고, 에디터로 선정되고, 연재글이 발간되고 나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마음 속으로도, 주변에서도 무언가 바뀌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돌아보니 나는 아예 펜에서 손을 놓은 것이 아니었다.


영화를 좋아할 때에는 보고 난 뒤의 감정과 생각이 머릿속에서 흐릿해져 가는 게 아쉬워서, 한 두 줄이라도 영화 리뷰 어플인 왓챠피디아에 꼬박꼬박 후기를 남겼다. 그렇게 쓴 코멘트가 500개가 훌쩍 넘어갔다. 단문으로 남기는 게 아쉽다고 느껴지자 블로그로 옮겨와 2000~3000자가 넘는 후기를 곧잘 쓰고는 했다.


책을 좋아할 때는 읽고 싶은 책의 서평단을 열심히 신청해서 십 수 편의 서평을 블로그에 남기기도 했다. 처음에는 책을 읽는 속도도 느리고, 파악해서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이 계속될수록 글을 파악하고 정리하는 데 힘이 붙었다.


생각해보면 여기 저기 흩뿌려져 따로 노는 줄만 알았던 것들을 한데 모아놓고 보니, 글을 쓴 시간은 켜켜이 쌓여왔나 보다. 형태는 달랐지만 적어 내려가다 보니 고유한 말투, 단어, 흐름이 써왔던 글을 양분 삼아 나도 모르는 사이 조용히 자라나고 있었다.


큰 둘레 내에서 이것 저것 건드린 경험은 조각나 언뜻 의미가 없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각들을 맞춰 나가다 보니 내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쌓여 있었다.


이제는 나를 더 이상 스스로 “찍먹러” 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경험의 조각을 모아 쌓아 나가는 수집가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