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가끔 한숨으로 먼저 도착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을 드나드는 매장 앞 주차장,
휴식이긴 하지만 언제든 도망칠 준비가 된 ‘식빵자세’로 웅크린 작은 고양이가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치는 아이겠지?‘, ’ 어린 고양이는 아닐 거야 ‘
벌써 같은 곳에서 고양이를 세 마리를 구조했고, 그중 둘은 지금 함께 살고 있기에 쉽게 마음을 열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주친 게 이틀, 삼일.
한눈에 봐도 체구가 작아 여자아이라는 걸 알 수 있었고, ‘네가 진짜 마지막이야’ 하며, 그렇게 이름은 ‘끝순이’가 되었다.
핫팩과 밥을 조공하듯 건네기 시작한 게 지난 11월.
우린 선을 참 잘 지켰다. 나도 끝순이의 일광욕을 방해하지 않았고 끝순이도 나를 보면 도망가거나 유별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주치지 않는 날이 생겨도 마음 아파하지 않았고, 그런 날이 사흘 이상 되지 않도록 꼭 얼굴을 비췄다.
그런데 한 달 뒤 크리스마스이브.
똑같이 생긴 아기 고양이가 밥자리에 앉아 있었다.
두 달도 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
가을에 태어난 길고양이가 가장 혹독한 묘생을 산다고들 하던데,
가끔 끝순이가 사료를 와암, 하고 입에 물고 사라졌던 그게 네 것이었구나.
끝순이가 끝이 아닌 이야기 1.
추운 밤이 길어지고 찬기운이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생명을 끌어내리는 듯했다.
그런 날들 속에서, 끝순이는 열린 창고 창문 틈으로 아기를 데려다 놓았다.
자신은 다시 밖으로 나다녔고, 그 작은 생명은 그 안에서 자라기 시작했다.
우리는 못 이긴 척
‘날 풀릴 때까지 만이다’라며 담요도 깔고, 방풍지도 붙였다.
어느새 창고는 끝순이의 휴식처, 아기의 집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두 달을 지냈던 아기 고양이.
지금은 ‘소이’라는 이름으로 그 시기에 반려묘를 잃은 내 부모님에게 입양이 되었다.
하지만, 이것도 끝이 아니었다.
끝순이가 끝이 아닌 이야기 2.
소이가 입양되기 전, 끝순이 배가 조금씩 불러온다고 느끼긴 했지만
설마, 했다.
소이가 집생활을 적응해갈 즈음
끝순이는 홀로 드나들던 그 창고 안에서 세 마리의 고등어냥을 낳았다.
여기까지였다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웠을까.
소이를 중성화 수술하려고 병원에 데려갔을 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끝순이가 끝이 아닌 이야기 3.
창고 생활 당시, 영역을 두고 다투던 그 어떤 고양이가 어린 소이를 임신시켜 버렸던 것이다.
그 소식에 솔직히 한숨부터 나왔다.
시간이 흐르고 작은 다섯 생명이 초음파로 척추가 보이고, 태어나고, 이제 막 눈을 뜨는 아이들을 보면서도
그 한숨은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
소이가 왜 그랬냐고 사람말로 물어봤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 한숨이 사랑이었다고 말할 텐데ㅡ
감당해야 할 일들이 스치면서 내가 책임질 거라는 마음이 앞서서 나온 숨이었다고.
너를 탓하거나 거절하는 마음은 아니었다고, 오히려 그때 너를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 한숨이 차갑지 않고 따뜻하게 닿았기를 바란다.
지금,
끝순이의 아이들이 하루하루를 키워가고 있다.
이름도 붙이기 무서워 부르지도 못하지만
매일 아침 눈뜨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존재들이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자꾸 잊을 때마다,
그걸 알게 해 준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끝순이는 정말 끝이 아닌 이야기였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