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랑 참치김밥이요
5.15. 2025
며칠 전부터 김밥과 나초가 그렇게 먹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초는 먹어도 먹어도 매일 먹고 싶기 때문에 거기에 더해 오랜만에 김밥까지 당기기 시작한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엔간해선 질리지 않는 나는 배달을 시키면 99프로 같은 식당의 같은 나초 메뉴만 시켜 먹는다. 이 고민을 하는 이번 주에만 해도 이미 두 번은 나초를 시켜 먹은 듯하다.)
쩝쩝박사들은 식사 메뉴를 정하는데 몹시 신중하다. 마치 오늘의 행복이 이 식사 메뉴에 모두 달려 있다는 듯이 말이다. 사실 그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하루에 한 끼 제대로 먹는 식사를 망치면 그렇게 허탈하고 모든 게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나는 그냥 허기만 때우려고 먹는 거예요, 음식 대신 먹는 알약이 나왔으면 좋겠어요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이 정말 부럽다. 어쨌든 오늘은 김밥 아니면 나초를 꼭 먹어야겠다고 다짐했지만 두 메뉴의 팽팽한 대결 속에 나의 식욕은 어느 쪽의 손도 쉽사리 들어줄 수가 없었다. 김밥이 조금 더 먹고 싶었지만 총 배달가격이 약 35불로 나초보다 두 배 정도 더 비쌌기에 쉽사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만간 김밥 한 번 먹지 않으면 도무지 김밥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오늘 나초를 주문하고 결국 내일이 됐던 모레가 됐던 김밥을 주문해 배달 음식으로 돈이 또 나가게 될 것은 분명하다. 차라리 오늘 더 많은 돈을 지불해도 최고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는 것이 효율적인 셈이다. 논리적 사고 끝에 나름 합리적이라고 자부하며 부들 거라는 손가락으로 (이 정도 금액으로 김밥을 먹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불고기 김밥, 참치 김밥이 담긴 카트의 주문 버튼을 클릭했다.
거리가 좀 있던 김밥집이어서 약 40분이 걸려 드디어 음식이 도착했다. 오랜만에 김밥을 먹을 생각에 신이 나 문 앞에 음식이 도착하자마자 재빨리 문을 열었는데 이상하게 배달 봉투가 크다. 봉투를 들으니 무게는 더 수상하게 무겁다. 국을 서비스로 많이 줬나? 생각하면서 봉투를 여니 김밥은 어디 가고 짜장면 2인분이 덩그러니 들어있는 게 아닌가. 봉투에 적힌 이름을 보니 다른 사람이 주문한 음식이 잘못 배달됐다. 바로 배달한 사람에게 전화를 했지만 실제 번호가 아니라 연결할 수 없다는 기계음반 반복됐다. 우버잇츠에 바로 신고 접수를 해서 곧장 환불을 받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고민하고 시킨, 지금까지 기다린 내 김밥은?
식당에 전화를 거니 두 번만에 어떤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내가 김밥을 주문했는데 짜장면이 배달 왔어."
"어떻게 해달라는 거야?"
"그걸 내가 물어보는 건데?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아, 배달을 잘못 받았다고?"
놀란 남자는 내 이름과 주문 내역을 확인하고 그제야 사태를 이해했다. "그 배달한 남자. 전에도 문제가 많았어"라고 포기하는 듯한 목소리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 남자 연락이 안 되는데 네가 연락하고 다시 전화 줄래?" 이 사태가 웃겨서 웃으며 통화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나지만 짜장면을 기다리던 E로 시작하던 손님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짜장면이 먹고 싶었던 2인도 지금 어딘가에서 짜증이 나 있을 생각을 하니 짜증과 웃음이 동시에 났다.
그렇게 십분 정도가 흐르고 가게에서 전화가 왔다.
"남자 정보가 없어서 연락이 안 되네. 우버잇츠에 전화하면 다시 주문을 해줄 거야."
"또 주문했다가 같은 남자가 배달하면 어떻게 해?"
"그러게 말이야..."
"짜장면은 어떻게 할까?"
"응 그냥 너 먹어.."
그렇게 통화는 끝났다. 한국이었다면 죄송하다며 김밥을 다시 배달해 줬으려나? 어쨌든 내 앞에 졸지에 짜장면 두 개가 생겨버렸다. 밀가루도, 면도 먹지 않고 지내는 사람에게 밀가루 면이 오다니. 왜 하필 짜장면인 거야. 치킨이라면 좋았을 뻔했는데 말이다. 진정한 다이어터라면 아깝지만 짜장면을 포기했어야 하는데 아까워 반만 먹기로 했다. 짜장면 자체는 맛은 있었지만 먹고 싶지 않은 음식에 내가 먹어야 하는 일정 양을 허용해 버려 기분이 그렇게 좋지도, 전부 먹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아니면 오랜만에 너무 본격적인 밀가루 음식이 많이 들어가서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걸까. 며칠 전에 읽은 책에서 똑똑한 부자들은 남이 먹는다고 휩쓸려 먹지 않고 식단에 자신만의 철저한 기준이 있어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똑똑한 부자는 뚱뚱하지 않고 날씬하다는 것이 글쓴이의 발견이었다. 짜장면을 후루룩 넘기며 그 책이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똑똑한 부자도 아니고 날씬하지도 않구나. 이 책, 의외로 정확한걸?
소중한 한 끼를 김밥을 먹지 못하고 날리다니 김밥은 연이 아니었나 보다. 차라리 나초를 시킬걸 그랬나 보다 후회가 됐다. 그래서 다음에 먹기로 한 나초를 오늘 이른 저녁으로 당기기로 한다. 나는 똑똑한 부자는 아니지만 유연한 상황 대처 능력이 있음엔 틀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