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가만히 있어도 숨 막히던 무시무시한 더위가 언제 있었냐는 듯 선선하다 못해 아침, 저녁으론 제법 쌀쌀한 10월. 찬기 때문인지 알람이 울리기도 전 눈이 떠졌다. 6시 50분. 7시 40분 알람을 설정하고 어제저녁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눈이 감기는 바람에 다 보지 못했던 <전, 란>을 마저 이어 봤다. 몸을 한껏 웅크린 채 이불을 칭칭 둘러 온기를 가두고 코끝은 살짝 시리게. '이야... 연기력이 다들 장난 아니고. 강동원, 강동원! 액션을 어쩜 저리 잘해?'
어제 무리를 해서 그런지 여기저기가 쑤시고 상태가 제법 좋지 않아 몸은 내내 어기적거렸다. 저녁에 도시락 미리 싸길 잘했지. 도시락통도 챙기고 입고 나갈 옷도 골라 놓고. 세수하면서 얼굴에 뭐 났나 살펴보고 머리 손질하는데 왼쪽 상단에 선명히 보이는 흰머리 두 가닥!
"뭐여... 한 구멍에서 두 가닥이나 나온 거?"
발견한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길다. 2년 전쯤부터 흰머리가 한두 가닥씩 나기 시작했는데 오늘처럼 한 뼘 길이에 가까운 흰머리가 눈에 띄게 보인 건 처음이다. (필자의 머리가 쇼트커트인 걸 감안하면 한 뼘은 제법 긴 편에 속한다) 그 두 가닥 중 눈에 띄게 굵어 보이는 놈(아마 똑같았을 텐데 괜스레 눈에 띄는 녀석으로)을 사정없이 뽑았다. 이렇게 길게 자랄 동안 못 봤다고? 혼잣말하면서.
그러고 보니 몇 주 전에 아는 동생네 카페에 들렀을 때도 흰머리의 존재감은 확실했다.
"언니! 잠깐만."
"왜?"
"(내 뒤통수를 보며) 흰머리 있어."
내 흰머리를 뽑으려는 찰나 '괜찮아, 내비둬. 흰머리 생긴 지 좀 됐어.'하고 쿨하게 넘겼던 나였건만 오늘 아침에 보인 녀석은 왠지 신경이 거슬려 가차 없이 뽑아버렸다. 그것도 짜증을 곁들여. 이렇게 흰머리가 몇 가닥씩 눈에 띄는 걸 보니 확인하기 어려운 뒤통수나 옆통수에도 각각 몇 가닥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각 잡고 뽑아버려? 아니야, 어느 세월에. 그냥 염색을 해버려? 아니야, 염색하면 끝도 없이 해야 돼. 게다가 나 염색 잘 안 하잖아?' 흰머리 발견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나이를 계속 먹어 가는데 흰머리 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흰머리 나는 대로 사는 게 잘못된 건가 싶었다. 염색도 하고 뽑는 것도 다 각자의 선택이고 몫이지만 어쨌든 나는 흰머리를 감추고 싶지 않아 졌다. 물론 눈에 안 보이던 것이(예를 들면 오늘의 흰머리 같은) 불쑥 그 존재감을 그것도 강렬하게 드러내면 당혹감을 느낀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흰머리가 불쑥 그의 존재감을 나에게 드러낸 것인가? 그렇다기보다 내 눈이, 시신경이 그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확인한 것뿐이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람)
내년이면 서른여섯이고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선다. 어른의 나이, 내 나이가 실감이 안 난다. 아마도 먹은 나이와 다르게 생각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유치한 구석이 더 많기 때문에 실감하지 못하는 듯하다. 혹은 외면하거나. 내 주변에 50대 어른, 70대에 곧 들어설 아빠, 80대 중반에 이르는 할머니를 보면 다 제각각 특징이 있다. 40대 같으면서도 몸의 변화는 노화의 시작점에 서있어서 곧잘 추위를 느끼고, 활자도 목을 곧추세우고 눈에서부터 멀리 떨어뜨려 읽기 시작한 50대 직장동료 선생님, 아직도 50대 아저씨 같은데 곧 칠순에 이르는 아빠는 이제 예전만큼 빠릿빠릿하게 강도 높은 밭일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 보청기를 넣지 않으면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바로 옆에서 얘기한 것도 두세 번 다시 물어보는 80대의 할머니. 말귀를 못 알아들어 미안하다고 멋쩍게 웃으며 사과하곤 하는데 그것이 과연 사과할 일인가 싶다. 나이 드는 건 우리가 잠을 자고 씻고 밥을 먹고 일을 하는 것처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인데. 당혹감과 변화의 적응 속도가 저마다 조금씩 다를 뿐 흰머리 나고 눈이 잘 안 보이고 귀가 안 들리고 걷기 힘든 몸으로 되어가는 것을 잘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 흰머리 뽑고 말고 그대로 둬야지. 언젠가 보고 참 멋지다 했던 강경화 전 장관 머리처럼 멋지게 흰머리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