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유진 Apr 07. 2023

어느 여름, 백수 생활 두 달째일 때. 방 안 냄새 때문에 인센스를 구매한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냄새를 좀 잡아볼까 싶어 구매했는데 피워보니 향보다는 연기에 매료되었다. 콘 형태라 그런지 연기가 변화무쌍했다. 잔잔한 바다처럼 흐르다가 순간 파도가 몰아치고 코끼리 코가 보일 때도 있었다. 길고 둥글게 매끄러운 곡선으로 흐르다가 위협적인 뱀이 되어 공중에 흩어지기도 하는 요망한 녀석이 좋았고 보다 보니 생각이 많은 내게 어느 순간 좋은 명상 친구가 되었다. 


그 여름. 많은 생각과 감정들을 쏟아냈다. 그야말로 희로애락의 정점을 찍었던 것 같다. 아침과 낮에는 쉼을 선택한 것에 기쁘다가도 밤으로는 짐작조차 되지 않는 미래의 무게와 지난날의 실패 때문에 말 그대로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그야말로 지옥 같은 시간들이었다. '계획'과 '목표'가 공포였으니 지옥을 맞본 그 시간 동안에는 습관이 나를 살게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날아가는 연기들을 보면서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탔던 때를 떠올렸다. 빠르고 거침없이 흐르는 연기를 보면 그와 같은 기세로 덤벼들었던 때가 떠올랐고 유유한 연기는 비교적 유연하게 감정의 터널을 지났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폭포처럼 위로 솟는 연기를 볼 때는 꼭 엉엉 울던 내 모습 같았는데 어떤 연기의 모습이든 곧장 창 밖으로 사라졌다. 사라지는 연기를 보면서 '아, 나도 지나왔구나. 어김없이 지나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떠오른 문장. '모든 것은 지나간다.'


고통을 부여잡지 않고 지나가는 존재로 인식한다는 건 희망적이다. 사라지는 연기를 보며 모든 것은 지나간다고 생각했을 때 허무함을 느끼기보다 그래서 무엇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랍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언젠가 적어두었던 대여섯 가지의 목표들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오늘은 무엇을 해볼까.

작가의 이전글 도움이 도움이 아닐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