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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dinary 박사엄마 May 10. 2021

특수학교 설립, 대체 왜 그렇게 절실한 걸까?

영화 <학교 가는 길>을 보고

2017년 서울 강서구.
장애 학생의 엄마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일은 언론에 대서특필 되었고 사람들은 강서구 주민들의 지역이기주의에 대해 소리 높여 비판했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의 무책임한 발언이 있었다. 애초에 학교 부지로 허가가 난 땅에다가 느닷없이 한방병원을 짓겠다 하니, 안 그래도 특수학교 설립을 못마땅해하던 주민들의 반대에 기름을 부어 더 활활 타오르게 한 것이다.


2017년 당시, 이 사건에 대해 내가 알던 것은 이게 전부였다. 지역이기주의... 그리고 진절머리 나는 정치인의 허풍... 그로 인해 위태로워진 장애 학생의 교육권... 더도 덜도 아니었다. 이 일이 바로 나와 관련된 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해 2월 둘째를 낳고 3월에 바로 강단에 복귀했던 나는 아직 내 아이의 장애를 몰랐다. 박사 받은 지 갓 1년 된 강사에게 출산 휴가는 남의 나라 얘기였으며, 이미 큰애를 키워 본 나로서는 아이들은 다 알아서 크게 마련이라는 모종의 자신감이 있기도 했다. 그때 내게 중요했던 것은 오직 나의 커리어, 끊기지 않고 주저앉지 않고 이 정글과 같은 학계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자리를 잡는 것, 그것이었다.

그러니 발달장애가 무엇인지 내가 알기나 했을까? 특수학교가 뭐라고, 저렇게 무릎을 꿇어서라도 지키고자 하는 부모들의 마음을 내가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럼에도 이 사건은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들을 품게 했다.


주민들은 왜 특수학교를 반대하지?
특수학교가 혐오시설인가?
학굔데 왜 혐오시설이지?
그런데 장애 학생들은 다 특수학교에 다녀야 하나?
특수학교가 아닌 그냥 일반학교에 같이 다니면 안 되나?
왜 저들은 멀리까지 통학을 해야 하지?
특수학교 설립이 진정한 대안은 아니지 않나?
특수학교 만들어 달라고 저렇게 절실하게 싸우는 이유가 뭐지?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나 편협했던 새내기 초짜 강사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똑똑한 아이들을 모아 놓은 대학교 1학년 <사고와 표현> 수업에 이 주제를 들고 들어가 아이들에게 토론해 보도록 했다. 아직 입시 논술의 때가 다 안 벗겨진 아이들은 판에 박힌 듯 지역이기주의에 대해 그럴싸하게 비판했고, 정치에 조금 더 눈 뜬 아이들은 김성태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정치인의 무책임함을 비난했으며, 특목고에서 조금 더 토론을 많이 해 본 듯한 아이들은 언론과 사회의 역할까지 언급하며 이 사건의 문제를 지적했다.

초짜 강사는 문득 아이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특수학교 설립이 진정한 대안일까? 그냥 일반학교에 같이 다닐 수 있도록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저 부모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절실하게 특수학교 설립을 요구하는 것일까?"

궁금했다. 장애아이들이 특수학교가 없어서 아침 7시에 통학버스를 타고 왕복 3시간을 길거리에서 보낸다는데, 정말로 그냥 가까운 일반학교에 보내면 안 되는 거냐고.

안 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이상했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는 특수학급이 있었고, 장애 학생들이 나와 같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당시 특수학급은 각 학년의 10반에 통합이 되어 있어서 예체능 수업 시간에는 10반 학생들과 같이 수업을 듣곤 했었다. 나는 한 번도 10반이었던 적이 없어서 실제로 같이 수업을 들어본 적은 없지만 오가면서 장애 학생들의 존재는 눈으로 익히 보아 오고 있었다.

장애 학생이든 비장애 학생이든 그냥 똑같이 학교에 다닐 권리와 그것이 작동하게 하는 탄탄한 시스템, 그것을 더 요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이들도 위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교실에서 우리 중 누구도 "저 부모들은 무엇 때문에 저렇게 절실하게 특수학교 설립을 요구하는 것일까?"에 대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장애 학생과 그들의 부모가 일반학교에서 겪는 (무늬만, 혹은 장소만) 통합교육의 현실과 학교 구성원이 시시때때로 보내는 차별과 냉대, 그로 인한 상실감과 무력감에 대하여 그 초짜 강사와 새내기 엘리트들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 해, 나는 둘째의 장애를 알았고, 곧 장애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2017년의 내가 던졌던 질문에 대해 어느 정도는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맞다. 내 생각은 이상적으로는 틀리지 않았다. 진정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동등한 권리를 누리려면 학교를 구분해서는 안 된다. 공간을 구분하는 것이 얼마나 차별적이고 위험한 발상인지는 과거 서구 사회의 '백인 화장실'과 '유색인 화장실' 구분을 상기해 보면 알 수 있다. 이 땅에 사는 아이들은 누구나 당연히 학교 갈 나이가 되면 집 가까운 학교를 배정받고 축하와 환대 속에 입학하여 교육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비장애인이 그렇듯 장애인들도 집 앞 학교의 당연한 구성원으로서 대우받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를.

지금의 대한민국은 끊임없이 너와 나를 구분 짓는 사회다. 사람들은 소득으로, 재산으로, 성별로, 나이로, 종교로, 학벌로, 지역으로, 장애유무로 나와 다른 자를 찾아내고 강자에게는 부러움과 인정을, 약자에게는 차별과 배제를 선사한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에서 장애 학생들이 일반 학교에서 당연히 환대받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과연 세대가 바뀌기 전에 이루어질 수나 있는 일일까? 지금으로서는 이 나라의 시스템 자체를 건강하게 바꾸는 일이 특수학교 하나를 짓는 것보다 훨씬 더 멀고 먼 이야기임을 슬프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특수학교 하나도 혐오시설이라며 내 집 앞은 안 된다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당당하게 "나는 장애인 미워서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얼굴 들고 말하는 세상인데(<학교 가는 길> 영화에 나옴), 장애아이가 당연하게 집 앞 학교를 다니고 집 앞 학원을 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 아이고.... 나 참 순진했다.

아니, 어쩌면, 내 얘기 아니라고 가볍게 생각했던 걸 수도 있다. 물론 지금은 내 얘기가 됐다마는.


특수학교가 왜 저토록 절실하게 필요하냐고?

이것이 궁금한 분은 우선은 영화 <학교 가는 길>을 먼저 보시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현재 진행형의 싸움을 하고 있는 영화의 주인공들도 궁극적으로 특수학교는 없어져야 할 학교라고 말한다. 다만, 사회가 바뀌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기에, 그러한 변화를 지금의 장애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너희들이 맨몸으로 부딪혀서 만들어 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하고 잔인한 일이기에, 멀고 먼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과정에서 중간에 잠시 거쳐 가는 지점으로서 특수학교의 존재는 필요한 것이다. 장애아이들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어도 이해받는 곳, 입시를 위해 달리는 비장애아이들 속에서 혼자 동떨어진 섬처럼 방치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맞는 목표를 가지고 교육받을 수 있는 곳, 일반 학교가 지금 당장 그러한 공간이 되어 줄 수 없다면 특수학교를 통해서라도 아이들에게 안전한 공간을 제공해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2020년 3월, 강서구 장애인부모연대에서 눈물로 지켜낸 서진학교가 개교했다.

인생을 걸고 학교를 지켜내신 위대한 어머님들께 깊은 존경을 표한다. 끝까지 무너지지 않으심에 박수를 보내고 싶고, 계속해서 편견의 벽을 부수려 싸우고 계심에 온 맘 다해 감사를 드린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통합을 지향하지만 아이가 행복할 수 있다면 특수학교도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 때 내게 더 많은 선택권이 주어지기를 희망한다.

그 희망을 위해서, 나도 내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최선을 다하여 싸우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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