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의 비상등이 되어
얼마 전 서울에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강남이 물에 잠긴 날 나도 거기에 있었다.
그날따라 차를 가지고 나갔고, 하루 종일 소모적인 일에 시달리다 8시 넘어 퇴근을 했는데 폭우로 여기저기 도로가 통제되어 우왕좌왕하는 상황에 마주했다.
어찌어찌하여 남산 2호 터널을 지나 반포대교를 건너 반포대로를 통과해 우면산터널을 타고 서울을 빠져나왔다.
빗줄기는 점점 더 거세져 남산 2호 터널을 나오면서부터는 앞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느 도로에 서 있는지, 맞게 가고 있는 것인지, 이 길이 내가 아는 그 길이 맞는 건지 어떤 건지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무서웠다.
온몸이 경직되고 식은땀이 흘렀다.
그때 차들이 하나둘 비상등을 켜기 시작했고 내 앞차도, 나도, 내 뒤차 옆차 모두 비상등을 켰다.
깜박깜박. 나 여기 있어요.
깜박깜박. 천천히 날 보고 따라와요.
깜박깜박.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깜박깜박. 우리 같이, 천천히, 이곳을 벗어나 봐요.
앞차의 비상등에 의지하며 정신을 집중했고, 나는 다행스럽게도 무사히 폭우를 뚫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제.
또 한 명의 발달장애 아이가 엄마에게 죽임을 당하고 그 엄마 또한 스스로를 죽였다.
그 엄마에게 누군가 비상등이 되어주었다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깜박깜박. 느리지만 우리 잘 가고 있어요. 나를 보고 따라와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깜박깜박 깜박깜박.
더 열심히 빛을 내야겠다. 더 크게 반짝여야겠다.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를 만난 누군가가 내가 깜박이는 불빛을 보고 힘을 얻어, 가던 길을 계속 갈 힘을 얻을 수 있도록.
폭우 속에서 비상등을 켠다는 건 나만을 위한 게 아니다.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시키며 당신 잘 가고 있다, 당신의 무사 귀가를 응원한다, 천천히 가던 길 계속 가자며 건네는 연대의 손길이다.
우리는 폭우에 갇혀 있는 누군가에게 비상등이 되어야 한다.
더 힘내고 더 잘살고 계속해서 반짝여야 한다.
깜박깜박. 나 여기 이렇게 잘 가고 있어요. 더 크게 소리 내자.
그것이 나와 같은 폭우를 만난 누군가의 ‘감사한 평범한 하루’를 지키는 일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 서로 너와 나의 비상등이 되어 오늘도 무사히, 그저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로 약속하자.
깜박깜박. 깜박깜박. 여러분, 나는 장애아이의 엄마고 보다시피 이렇게 잘 살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