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학교 가는 길] 저자와의 온라인 북 토크 <1> 김정인 감독님 편
제가 아빠가 아니었다면
이 주제에 관심을 갖기 어려웠을 겁니다.
내 아이와, 또 자라나는 세대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만들었어요.
2022년 9월, 책 [학교 가는 길]이 세상에 나왔다.
지역 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 앞에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들이 학교만은 포기할 수 없다며 무릎 꿇고 눈물로 호소한, 이른바 '무릎 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어머니들이 끝까지 투쟁하여 지켜낸 그 학교, 강서구 서진학교가 2020년 개교했고, 서진학교 설립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학교 가는 길]은 지난해 코로나 여파에도 불구하고 누적 관객수 3.5만 명(네이버 기준)을 돌파하며 큰 화제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세세히 글로 담은 책 [학교 가는 길]이 출간되어, 우리 사회 지금 이대로 괜찮겠냐며 말을 걸고 있다.
2022년 9월 28일, 발달장애아이 부모들이 실시간 온라인 회의실에 모였다. 이 회의의 호스트는 이창호 님( https://www.instagram.com/sianpapa2014/ ). 자폐성 장애를 가진 8살 시안이를 특수학급도 없는 근거리 초등학교에 보내고, 학교에 특수학급 신설 및 적절한 개별화 교육을 요구하며 그야말로 맨몸으로, 하지만 우아하게 투쟁하고 계신 아버님이다. 이창호 님의 추진력으로 장애 부모 독자들과 책 [학교 가는 길]의 저자들과의 온라인 북 토크 자리가 만들어졌고, 그 귀한 자리에 나도 함께 할 수 있었다.
북 토크에는 영화 [학교 가는 길]의 감독이자 책의 주저자이신 김정인 감독님과, 영화에서는 배우로 출연해 감동을 주시고 책에서는 한 꼭지씩 맡아 깊은 울림을 주신 공동저자 어머님들 중 정난모 님, 조부용 님이 오셨다. 북 토크는 호스트 이창호 님이 질문하고 저자들이 대답하는 인터뷰 방식으로 이루어졌는데, 인터뷰가 끝나고 참가자들도 자유롭게 발언권을 얻어 저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할 수 있었다. 이 뜻깊은 저자들과의 대화를 그냥 흘려보내기가 아까워, 부족한 글솜씨나마 활용하여 이곳에 기록으로 남겨두고자 한다. 북 토크 후기는 두 편으로 나뉠 것이다. 이 글은 그 첫 편, 마로의 아버지, 김정인 감독님 편이다.
창호: 영화가 독립영화임에도 굉장히 잘 됐고 많은 분들이 본 것으로 집계되었는데요. 같은 내용으로 책을 또 출간한 계기가 있으실까요? 영화에서 미처 다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으셨던 건지요?
정인: 감사하게도 영화가 개봉하면서 여러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그중 지금의 출판사(책폴)를 만나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요. 영화를 만들었던 과정과 또 영화에서 담지 못했던 내용이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고자 했고, 무엇보다 각각의 장면을 촬영했을 때 내가 어떤 감정으로 이 장면들을 촬영했는지, 영화 만드는 과정에서 생각했던 점들을 기록하고 싶었습니다.
창호: 저도 책은 영화와는 또 다르게, 감독님의 시점으로 현장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창호: 감독님이 책에도 쓰셨는데, 촬영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특수학교 설립 문제로 강서구 주민들과의 1차 토론회가 무산된 기사를 보고 나서였다고요? 그리고 무작정 촬영 장비를 들고 2차 토론회장에 갔는데, 거기서 이른바 '무릎 사건'이 일어난 것이고요. 그러니까 이 문제가 세간에 유명해지기도 전에, 장애 이슈와 평소 아무 관련도 없이 사시던 분이 어떻게 이렇게 관심을 갖고 뛰어들게 되셨나요? 단순한 호기심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정인: 제가 특별히 선하거나 장애에 대해 어떤 인식이 있었던 건 절대 아니고요. 저 개인적으로는 직업이 다큐멘터리 감독이다 보니까 항상 이 세상을 향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촉수를 세우고 있어야 된다는 마음이 있거든요. 그래서 인터넷 기사를 자주 살피는 편인데요.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그게 2017년 7월 초였어요. 인터넷 기사를 보다가 '강서구에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토론회가 있었는데 제대로 해 보지도 못하고 무산됐다.'는 기사를 본 거죠. 응? 이건 뭐지? 싶었는데, 그땐 언론에도 거의 나오지 않을 때라 아마 그냥 단 하나의 기사였을 거예요. 제가 평소에 장애 감수성이 남다른 사람도 아닌데 왜 그 기사에 꽂혔는지는 모르겠어요. 생각해 보면, 저도 곧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키우는 아빠라서 그 기사가 좀 무겁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주변에 아이 키우는 다른 집들 보면, 보통 아이 교육에 대해서 어디 사립 초등학교가 좋다더라, 어디 학원이 좋다더라 이런 이야기를 나누지 학교 보내는 거 자체를 가지고 고민하지는 않잖아요. 지금 나와 같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부모들은 자녀가 다닐 만한 학교가 없어서 그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놀라웠어요. 6~70년대도 아니고 2010년대잖아요. 저도 아빠이고, 부모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가던 시기여서 그런지 그 기사가 마음에 오래 남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2차 토론회 때 그냥 한번 가보자, 대체 뭔 일이 있길래 애들 학교 보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 이런 마음으로 무작정 갔죠. 그니까 지금 보면 약간 오지랖? 아닌 오지랖이었긴 하네요.
창호: 오지랖이 세상을 바꾼 거군요. 감독님 말씀대로 책에도 딸 마로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영화도 시작할 때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라는 자막으로 시작을 하시잖아요. 같은 아빠로서 궁금한데, 여기서 오는 어떤, 좋은 아빠 이미지에 대한 부담은 없으신지요?
정인: 네, 뭐 제가 그렇게 막 딸바보 이런 좋은 아빠는 아닌데요.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 이 문구를 제가 영화에도 또 책에도 첫머리에 넣은 것은 제가 아빠가 아니었다면 정말 그 기사를 보고도 그냥 넘겼을 거 같아서요. 어머님들하고 똑같이 자식 키우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 기사에 대한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영화를 처음 찍기 시작할 때 이 작품이 내 아이와, 또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영상 편지 같은 거라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대외적으로는 서진학교가 설립되는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냥 제 딸에게 보내는, 뭔가 기성세대로서 아빠가 담고 있는 미안한 마음일 수도 있고요. 또 앞으로 아이들이 만들어 갈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일말의 기대감일 수도 있고, 그래서 그런 마음을 담은 영상 편지라고 생각해서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라는 문구를 넣게 되었어요.
창호: 영화 [학교 가는 길]을 통해서 장애 부모들과 오래 함께 하셨지요. 영화에서 어머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 특수학교는 결국 없어져야 할 학교다, 통합교육으로 가야 하지만 아직 통합교육이 바로 서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특수학교라도 필요한 거라고요. 감독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해요.
정인: [학교 가는 길]이 서진학교가 설립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기 때문에 특수학교가 중요한 비중이지만 저 역시도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통합교육의 내실화가 가장 최우선 순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통합이 장애 학생들에게 좋은 것은 맞는데, 반대로 비장애 학생들에게도 통합이 좋은 것인가? 질문했을 때, 어떤 부분이 좋지? 솔직히 딱 떠오르는 대답이 없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최근, 영화 만드는 일은 손 뗀 지 오래됐고 (ㅎㅎㅎ) 영화 관련해서 장애인식개선 교육 강사로 설 일이 많았는데요. [학교 가는 길]이 교육청 선정 학교 장애인식개선 교육 자료가 되었거든요.
창호: 와, 축하드립니다.
정인: (ㅎㅎ) 그래서 최근에 교장 선생님을 거의 1천 분 넘게 만났고 학생들 대상으로도 이야기할 기회가 많이 있었는데, 어떤 논리로 비장애 학생들에게 "통합교육을 위해 너희도 같이 노력해 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고요. 당연히, 도덕적으로 좋은 거야, 이걸 해야 돼,라고 말하는 건 분명 한계가 있잖아요. 학교 관리자들한테도 왜 통합교육이 중요한지, 도덕적인 당위성 외에 어떤 메리트가 있는지 말씀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런 고민이 무색할 정도로, 아이들은 이미 알고 있더라고요. [학교 가는 길]을 보고 같이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서 어떤 아이는 장애 부모들의 그런 상황을 본인의 부모님에게 대입해 보면서 "우리 엄마가 저랬다면 저도 굉장히 마음이 아팠을 거 같아요"라고 하기도 하고, "장애 아이들은 졸업하면 어떤 직업을 갖게 되나요?" 같은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부모님들이 장애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아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비장애 학생들도 "아, 우리 엄마랑 다르지 않구나", "장애 아이들도 우리랑 다르지 않구나" 하면서 조금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아요. 꼭 통합교육이 너희에게 어떤 이득이 있어,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학교 가는 길]이라는 유익한 콘텐츠가 교육적으로 활용이 되었을 때, 아이들이 어른들의 고민 이상으로 더 폭넓게 이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걸 목격했어요. 교육이라는 게 단순히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가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잖아요. 장애 학생들과 비장애 학생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유의미한 시간들이 조금 더 성숙한 하나의 인격체를 육성해 내는 데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창호: [학교 가는 길]을 보면, 감독님의 인류애가 느껴져요. 심지어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가양동 주민들을 향해서도 어떻게든 그들의 행동을 이해해 보려는 애정 어린 시선이 저는 보이거든요. 가양동 주민들에 대한 감독님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요.
정인: 아, 저도 굉장히 복잡한 감정이 있어요. 아직도 이해할 수 없는 거는, 반대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거칠고 냉정한 언어로 그렇게 공격적인 표현을 했다는 거는 어떠한 변명으로도 용납할 수 없지요. 본인들의 반대 의견을 표현하는 방식이 너무 거칠고 인간적이지 않았고 장애 부모님들께 너무 많은 상처와 아픔을 주신 거는 재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잘못하신 거고요. 대신에, 반대하셨던 분들 안에서도 그 층위가 다양합니다. 일반 민간 아파트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 임대 아파트 사시는 분들도 계시고요. 임대 아파트 아이들만 다니는 학교로 찍혀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은 공진초, 공진중 학부모님들의 마음도 함께 헤아려야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은 갖고 있어요. 작품을 만들 때도 그 생각을 했거든요. 굳이 공진초 폐교 이야기를 해야 할까, 그냥 서진학교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을까, 했는데 또 이제 알면 알수록, 조사를 하면 할수록 지금 이 특수학교를 향한 차별과 배제가 공진초에도 똑같이 있었다, 가난을 향한 차별과 배제 때문에 공진초 학생들과 학부모들도 굉장한 아픔을 겪었고, 이 두 사건이 오랜 시차를 두고 발생한 개별적인 일 같지만 전혀 아닌 거예요. 이 둘은 본질적으로 쌍둥이처럼 닮아 있어요. 그래서 이 공진초의 이야기를 작품 안에 넣지 않고는 온전한 학교 가는 길의 이야기가 완성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이야기를 넣었는데요. 한국 사회의 구조적인 차별 때문이고 우리가 이들의 상처와 아픔을 함께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말씀드리고 싶어요.
창호: 책에서는 불가근불가원(가깝지도 멀지도 않게)의 감각으로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들어 보니 감독님이 타인의 고통에 많이 예민하시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배제되는 모든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애정이 감독님한테는 있지 않으셨나 그렇게 저는 느껴집니다.
창호: 영화를 보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대사는, 그 폐교당한 부모님이 하셨던 그 말이었거든요. 당신들 쓰레기차 피하려다가 똥차에 치인 거 아니냐는 그 대사가 저는 이 영화에서 제일 가슴 아픈 대사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말이 지금 서진학교 이후에도 우리 사회의 현실적인 모습인 것 같기도 합니다. 강자는 약자를 밀어내고, 밀려난 약자들은 서로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또 서로 반목하기도 하죠. 가장 최근에는 장애인 이동권과 탈시설 이슈가 있고, 장애 이슈를 떠나서도 그 이전부터 지금까지 세월호에 대한 혐오 발언들도 있고요. 이런 걸 보면 과연 우리는 공존과 연대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반문하게 되는데요. 감독님이 생각하시기에 서로 반목하는 집단들이 어떻게 하면 통합을 이루어낼 수 있을까요?
정인: 현자가 아니라 빨리 답하기는 어렵지만, 일단 굉장히 어렵고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양극화가 단순히 경제적인 것을 넘어서 모든 영역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집단이 접점을 찾아 공통분모를 알아내기가 더욱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공동체이기를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것이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그냥 일개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일 뿐이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내가 하는 일의 본분 중에는 그런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분들의 이야기를 담아서 조금이나마 뭔가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일에 문화적 콘텐츠로서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요.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이 있겠지만, 저 같은 입장에 있는 사람들이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해서 그런 간극들을 최대한 좁혀주는 콘텐츠들을 창작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고 숙제가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학교 가는 길]의 감독이자 작가인 김정인 님은 영화 하나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창작자로서 늘 날카롭게 촉을 세우고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을 감지해 내,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지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 이 이해되지 않는 세상을 살아가는 기성세대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며, 딸 마로와 마로의 친구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을 물려주기 위한 개인적인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의 시선으로 [학교 가는 길]을 만날 수 있어 감사한 자리였다. 부족한 나의 언어로 그의 말들이 왜곡되지 않았기를 바라며, [학교 가는 길] 북 토크 1편의 기록을 마친다.
2편에는 함께 자리해 주신 책의 공동저자 조부용, 정난모 님의 이야기를 담아 보고자 한다.
- 글 한 편 쓰는 데 한 달이 걸리는 게으른 저자이지만(^^) 기다려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