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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공원 Sep 15. 2022

자취생이 명절에 깨달은 것

엄마 사랑해

추석을 맞아 시골 외할머니댁에 다녀왔다.

우리 집은 할머니 댁을 방문할 때마다 제사 음식들을 한가득 가져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나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할머니! 나도 이제 독립가구니까 엄마랑 별개로 따로 챙겨갈 거야!"


과일들과 전, 튀김, 떡도 챙겼다. 혼자 살면서 여러 종류의 과일을 사면 다 먹기도 전에 물러버리는데 이번 기회에 하나씩 챙겨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밥 챙겨 먹기 귀찮을 때 부침개 데워먹으면 되겠다!’

‘떡 챙겨가서 아침으로 먹어야지.‘

‘포도 사 먹으면 비싼데 한 송이 가져가야지~’


엄마가 왜 자꾸 할머니 집만 오면 바리바리 싸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 혼자 살아보니 단박에 이해했다. 저렇게 조금만 챙겨도 며칠은 거뜬히 먹는다! 집에 돌아가는 길이 든든했다.


할머니 집 근처 산책길




명절의 교통체증으로 인해 오후 늦게 도착해 본가에서 저녁을 먹고 가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옛날 버릇 그대로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

할머니 집에서 내가 한 일이라곤 주는 밥 먹고, 누워서 티비보고, 근처 공원에 산책 나갈 일이라곤 없는데 어찌나 피곤한지...


하지만 엄마는 피곤하지도 않은지 잠시의 휴식도 없이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댁에서 싸온 음식들을 분류해서 냉장고에 정리하고, 우리가 먹을 저녁 준비를 했다.

엄마는 내 몫의 떡과 튀김, 부침개도 한 번에 먹기 좋은 양으로 소분해서 나눠 담아줬다.


"이렇게 해 놓으면 너 집에 가서 바로 냉장고에 넣기만 하면 되니까 편할 거야."

"엄마~ 안 피곤해? 좀 쉬다가 하지~"


나는 여전히 소파에 누워서 내가 뭐 도와줄 건 없냐고 물었다. 엄마는 전혀 없으니까 그냥 누워있으란다.

엄마는 역시 너무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계속 누워있었다.

그렇게 또 차려주신 저녁을 먹고 과일까지 먹고 행복한 배를 두드리며 내 집으로 갔다.




내 집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한 일은 짐을 풀고 음식과 과일들을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는 일이었다.

누워있을 틈이 없었다!

나도 엄마가 그랬던 것과 똑같이 행동하고 있네, 하고 웃음이 났다.

이 짐들을 내팽개치고 쉬더라도 결국 내 손으로 정리해야 하니, 먼저 정리해놓고 쉬는 게 마음 편했던 것이다.

그제야 알았다.

엄마는 피곤하지 않은 게 아니라, 피곤할 틈이 없었던 거였구나.


그 와중에 엄마가 소분해준 음식들을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독립해서 혼자 살고 나서야 엄마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부족한 딸이다.

이래서 사람은 혼자 살아봐야 해!



짐을 다 정리하고 샤워까지 마치고 침대에 누웠는데, 또 행복이 밀려왔다. 오랜만에 만난 할머니와 친척들도 반가웠고, 냉장고도 든든하게 채워졌고, 이 모든 게 끝나고 혼자 편하게 쉬고 있는 지금도 만족스러웠다. 할머니 집도 좋고 엄마 집도 좋지만 역시 최고는 내 집이다. 내일부터 또다시 일상을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며 잠에 들었다.


오늘도 결론은, 독립하길 너무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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