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것
나는 내 자취방을 하나의 큰 서재처럼 만들고 싶어
대학동기에게 내 독립 로망을 말했더니 바로 타박을 받았다. 그 친구는 이미 자취 경력 수년차였다. 하지만 내 로망은 이랬다. 작은 원룸 방이지만, 넓은 책상과 아늑한 조명으로 자연스럽게 책이 읽고 싶어지고 공부가 하고 싶어 지는 그런 방을 만드는 것!
마치 분위기 좋은 북카페처럼 말이다. 혹은 요즘 유행하는 책맥(책+맥주) 술집이나.
그래서 오피스텔을 계약하자마자 큰 4인용 책상을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을 해봤다.
잠은 자야 하니까, 침대는 여기 두고 아일랜드 식탁 앞에 책상을 놔둘까?
아냐 창문 옆 해가 잘 드는 곳에 책상을 놔두고 침대는 구석에 몰아넣자.
이리저리 도면을 만들어보다가 자취 중인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또 한 번 타박을 받았다.
저 작은 방에 큰 책상을 넣으면 답답해서 숨 막힐 거란다.
직각의 넓은 책상에서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공부도 하고 싶은 내 마음은 뒤로하고, 조언에 따라 공간 활용도가 좋은 원형의 테이블을 넣었다.
내가 갖고 싶은 건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었다.
한의사 면허를 따고 임상에 나와보니, 대학교에서 배웠던 수업만으로는 진료하기에 부족했다. 교과서에 나와있는 대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진료가 어려울수록 나는 더더욱 다른 책과 강의를 찾아다녔다. 나의 이 답답함을 해소하려면 공부는 필수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음과 다르게 몸은 하루하루 피곤해져 책을 '구매'하고 강의를 '결제'하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몇 십만 원에 달하는 전공서적을 사서 책장에 꽂아놓으면 이미 그 내용을 다 아는 것처럼 마음이 든든했다. 강의를 결제하고 한 번 듣는 것 만으로는 절대 내 것이 될 수가 없는 데에도 끝까지 들었다는 것(듣기만 했다는 것)에 만족했다.
내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만큼 충분한 공부를 하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리고 이건 우리 집이 공부에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내 방이 없어서 부엌에서 공부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이사를 가서 작은 공부방을 만들었는 데에도 나는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대신 거실에 틀어져있는 TV 소리를 탓하고, 자꾸만 말을 걸어서 방해하는 것만 같은 엄마를 탓했다.
'나 혼자 살면 아무도 나 방해하지 않고 혼자서 마음껏 집중할 수 있을 텐데.'
그러나 막상 혼자 살아 보니,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는 걸 알게 된다.
혼자 사는 첫 몇 달 동안은 책을 아예 펴 본 적도 없다. 내가 그렇게 원하던 것이었는 데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가 할 일들이 더 늘어났다. 해본 적도 없는 화장실 청소, 한 끼를 먹기 위해 해야 하는 요리와 그 이후의 설거지, 옷과 수건을 위해 매일 해야 하는 빨래. 이런 집안일에 짓눌려서 책을 펴볼 틈이 없었다.
사람이 바뀔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첫 번째는 시간 배분을 바꾸는 것,
두 번째는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세 번째는 만나는 사람을 바꾸는 것이다.
가장 무의미한 것은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 시간과 낭비의 과학
내 의지로 무언가를 참는 것은 너무 어렵다. 예를 들어 라면과 과자가 찬장 가득 쌓여있으면서 '밀가루 안 먹어야지!' 하고 다짐하는 건 상당히 어렵다. 자꾸만 먹고 싶고 손이 간다. 하지만 집 안에 라면, 과자를 쟁여두지 않으면 참기가 수월하다. 집에 없으니 생각도 잘 안 나고, 너무 먹고 싶을 때에는 사러 나가야 하니까 귀찮아서 안 먹기도 한다.
TV가 거실 정중앙을 차지해 내 시야에 매일 들어오는데도 'TV 보는 거 줄여야지!'하고 의지를 다 잡는 건 어렵다. 그냥 TV를 집에서 치워버리면 된다.
나는 그렇게 사는 곳을 바꾸어보았다.
혼자 만의 시간을 위해서 독립을 했고, 집 안에는 침대와 책상뿐이다. 이제는 정말 내 의지를 다 잡을 시간이다. 멋들어진 서재 같은 집은 아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공부할 수 있는 이곳이 내 집이다.
남은 6개월의 시간 동안 스스로 반할만한 삶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