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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진공원 Sep 04. 2022

고급 수건 매일 2장씩 쓰기

독립하면 꼭 하고 싶었던 것


내가 이십 대 중반이 될 때까지 우리 집에서 쓰던 수건에는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운동회, 조카의 돌잔치, 어떤 회사의 창립기념일이 쓰여 있었다. 수건에 적혀있는 기념일의 날짜로 인해서 몇 년 동안 쓰던 수건 인지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사용, 빨래, 건조의 과정을 몇 천 번이나 거쳐서 거칠고 빳빳해진 수건들. 세수를 한 뒤 얼굴을 닦을 때 왠지 내 피부가 안 좋아질 것 같아 조심스럽게 톡 톡 두르려 닦곤 했다.


이런 수건마저도 내 마음대로 쓰지도 못했다. 머리 감을 때, 샤워할 때, 세수할 때 각각 새 수건으로 뽀송뽀송하게 닦고 싶은데 엄마는 빨래가 힘들다며 한 번에 다 해결하라고 했다.


"엄마! 우리 수건 좀 바꾸자!"

"멀쩡한 걸 뭐하러 바꿔~ 나는 새 수건보다 이게 훨씬 좋더라. 물기도 잘 빨아들이고."


"엄마! 나 수건 좀 팍팍 쓰고 싶어."

"빨래가 매일 한 바구니씩 나와! 빨래 널고 개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


엄청나게 거칠어진 수건은 엄마 말처럼 물기 흡수 하나는 좋았다. 아마 건조해질 대로 건조해진 수건의 섬유도 제 살길을 찾으려고 수분을 쫙 쫙 흡수하나 보다.


어떤 수건을 집에서 사용할지에 대한 권한은 나에게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내 돈으로 사는 게 아니니까!


취직을 했고, 월급을 몇 번 받고 난 뒤에 내가 한 일은 우리 집의 수건을 전부 교체하는 일이었다.

가족이 쓰는 수건 모두를 새로 사자니 나의 주머니도 그리 무겁진 않아서 쿠팡에서 파는 저렴한 수건을 구매했다.


"와, 새 수건 너무 좋다!"

가성비 수건이었지만 새 수건의 폭신함과 보들보들함이 너무너무 좋았다.

그리고 내가 독립하면 엄청 좋은 수건으로 우리 집을 채워야지, 하고 다짐했다.






대망의 독립일이 다가왔고, 온갖 생필품을 구매하느라 월급의 전부를 써버리는 나날 와중에도 수건만큼은 신중하게 골랐다. 내 로망을 실현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예전부터 눈여겨보던 인스타그램 감성의 수건을 눈독 들였다.

한 장에 9,300원. 40수. 100% 고급면, 200g.

한 장에 만 원 가까이하는 비싼 수건... 살지 말지 살짝 고민했으나 첫 자취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나는 구매 버튼을 눌렀다.


손 닦는 수건은 따로 구비하고 싶어 핸드타월 6장까지 총 17장의 수건을 주문했다. 젖은 수건은 다시 쓰기 싫어 넉넉하게 주문했다.

'드디어, 기념품으로 받은 수건 더 이상 쓰지 않고 색도 통일시킨 새 수건을 쓰는구나!'



새 수건 배송받은 날


5개월  살아보니, 수건에 투자한 돈은 전혀 아깝지 않다.

10  정도를 썼을 뿐인데,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수건을 사용할 때마다 행복하다. 두껍고 부드러운 수건에  피부가 닿을 때마다 기분이 좋다.



아침에 머리를 감고, 저녁에 샤워를 하는 루틴으로 지내고 있는데 그때마다 새로 세탁해 놓은 수건을 사용한다. 빨래가 많아져도 그만이다. 빨래는 세탁기에게 시키고, 건조는 건조기에게 맡긴다.

건조가 끝나고 수건을 개서 장 안에 하나씩 채워 넣고 나면 든든한 마음이다.






우리 엄마가 나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작은 돈을 아끼려 하지 말고 큰돈을 아껴라."

내가 몇 백만 원짜리 가방은 턱 턱 사도, 5천 원짜리 복숭아는 돈 아깝다고 안 먹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의 말이 정말 현명하다.

행복해지는 데에는 큰돈이 필요하지 않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소품들,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내 취향일 때 나는 매일 행복해진다.


그저 수건일 뿐이지만 매일 하루 2번씩 나를 대접하는 느낌을 받고, 수건을 막 꺼내 쓸 때마다 사치 부리는 부자가 된 것 같다.


나는 이제 작은 물건 하나라도 내가 보기에 좋고 사용하기에 기분 좋은 물건을 산다.


오븐장갑은 내가 좋아하는 색으로, 유리컵을 마음에 드는 모양으로, 매일 쓰는 일기장도 예쁜 걸로.



멀리서 행복을 찾아 나서지 말고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서 하나씩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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