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부터 이랬을 리가 없잖아

수많은 레시피에서 살아남기

by 더딘

요리법을 검색하다 보면 한 가지 음식을 만드는 수만 가지 방법을 얻게 된다. 방법이 다양할수록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지니 음식의 맛이 더 좋아질 듯하다. 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오히려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을 더 피곤하게 만든다. 어느 심리학 책에서 100가지 보기를 주는 것보다 서너 가지 보기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는 걸 사람들이 더 선호한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비슷한 과정이 아닐까 싶다. 따지고 생각할게 너무 많아지면 길을 잃어버리는 것과 비슷해지는가 보다.


수육을 삶을 때도 그랬다. 아버지는 가마솥에 앞다리살을 넣고 대파, 양파, 마늘, 파뿌리를 넣고 삶으셨다. 보기에는 그냥 마른 나뭇가지 같지만 아마 한약재로 쓰일법한 재료를 섞기도 하셨다. 어머니가 수육을 삶는 날이면 된장과 생강, 소주를, 가끔 커피분말도 넣기도 하셨다. 대파에서 커피까지 수육에 첨가하는 재료는 버라이어티 했다. 너무 다양한데 그 다양한 재료를 얼마 큼의 분량으로 섞어야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가늠할 수 없는 레시피의 음식. 그래서 수육은 고기를 삶는다는 단순한 행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더 많은 미스터리를 담고 있는 음식이었다.


분가 후 집에서 수육을 삶을 때도 비슷했다. 파뿌리가 없으면 안 될 것 같고 파뿌리 대신 커피분말을 넣으려니 걱정스러웠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더 여러 가지 방법이 혼란스러웠다. 부모님의 레시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재료와 방식이 추가되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런 음식은 수육뿐만이 아니었다. 제육볶음, 닭백숙, 닭곰탕, 파스타, 국수.... 한 번 만들어볼까 하는 음식은 조리법에 다양한 변주가 있었고 저마다 맛있다고 추천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자신만의 명확한 방식과 기준을 갖고 있다면 흔들림이 적을 텐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여기저기 휘둘리는 기분으로 음식을 준비할 때가 많아지는 듯했다. 그러다 보면 음식을 만든다는 게 나만의 음식을 완성한다는 건지 영상에 나오는 저 사람의 음식을 재현한다는 건지 혼란스러워진다. 뭐가 맞는 방식인지, 지금 무엇이 필요한 방식인지 알 수 없어서 어려우니 짜증스러울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혼란을 잠재울 수 있는 한 가지 질문을 만들었다.


'애초부터 이랬을 리가 없잖아. 이 음식을 예전에는 어떻게 만들어 먹었다는 거지?'


이 음식을 예전에는 어떻게 먹었을까? 좀 더 구체적으로 풀자면, '이렇게 정성 들여서 만들어야 하는 음식이었을까 간단히 편하게 먹던 음식이었을까?' 만약 내가 진주냉면과 육전을 만들기로 결심했다면 육수를 내고 고명을 만드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조기찌개를 끓이기 위해 꼭 육수를 내었을까? 그냥 무와 대파를 숭덩숭덩 썰고 고춧가루로 칼칼한 맛을 내고 조기를 넣고 끓이며 간을 하는 게 더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었을까.


수육도 비슷했을 것이다. 돼지고기에서 나는 육향을 싫어하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는 유통과정에서 더 심했을 테니 삶으면서도 여러 방법을 썼을 것이다. 주변에 있는 것 중에서 육향을 잡을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 가능했겠지. 어떤 재료를 함께 넣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료를 이용하는 목적을 알 수 있다면 방법은 그에 맞춰 변하는 게 당연하다.


이후 수육을 삶을 때 통후추만 넣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완성한 통후추 수육을 아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돼지 냄새가 아직 세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통양파와 후추를 함께 넣었다. 잡내도 덜고 살짝 단맛이 돌아서인지 그제야 만족할만했다. 하지만 '예전에는 후추도 귀하고 양파도 없었을 텐데?' 생각이 드니 다른 방법을 써봐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냥 소금물에 고기를 넣고 삶았다. 고기는 예전에 비해 깨끗하니 충분히 가능할 듯했다. 결과는 예상보다 더 만족스러웠다. 육향은 있지만 짠맛 때문인지 두드러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수육은 다양한 재료를 함께 넣어서 고급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근본은 누구나 쉽게 만들어먹을 수 있는, 삶은 고기 요리를 벗어날 수 없다. 따뜻할 때 쌈이나 김치에 싸 먹었거나 식으면 식은 대로 썰어서 평양냉면집에 가면 주문할 수 있는 차가운 제육처럼 먹었을 것이다. 백석 시인의 여우난곬족 시에 " 도야지비계는 모두 선득선득하니 찬 것들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요즘은 소금물에 삶은 제육을 일부러 냉장고에 넣어서 식힌 후에 썰어 먹는 것에 정착하게 되었다. 선득선득하게 먹는 게 좋다.


음식의 시작은 어디에서부터였을까? 어떻게 먹었을까? 를 묻는다. 그래도 감이 잡히지 않으면 주문을 외운다.

"애초부터 이랬을 리가 없잖아!"


열려라 참깨!처럼, 외치다 보면 내가 이 요리에서 가장 핵심 되는 게, 가장 살리고 싶은 맛이 무엇이었는지 보이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서 요리를 시작하면 한 결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도 마음이 편하지 않는 날은? 그냥 영상을 따라 하거나 배달 어플을 켜고 다시 외친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도 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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