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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딘 Aug 22. 2024

필요할 때

샌드위치가 어울리는 계절

지난 겨울 운전을 하며 지방에 다녀오던 중에 잠시 쉬어가기 위해 어느 카페에 들렀다. 따뜻한 커피에 무얼 같이 먹을까. 메뉴를 보니 샌드위치가 있었다. 아직 갈길이 머니 쿠키류 보다는 샌드위치를 먹는 게 좋겠다 싶었다. 주문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으니 넓은 창으로 주변 풍경이 들어왔다. 며칠 눈이 내렸고 오늘도 희끗희끗한 날이 이어지고 있어서인지 하얀색은 눈, 검은색은 산과 나무, 회색은 하늘에 있었다. 며칠 동안 비슷했을 테고 운전하는 동안도 그랬고 카페에 앉아서 밖을 보는 동안도 날은 희끄무리했다. 가득한 무채색. 앞으로 가야 할 길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다. 커피의 온기와 향기가 나쁘지 않았다. 샌드위치는 접시에 올려져 있었다. 익숙한 식빵 안에 평범하게 계란, 양상추, 토마토, 베이컨이 보였다. 어디서나 주문하면 만날 수 있는 샌드위치였다. 보통의 경우라면 바로 먹었을 텐데 접시에 올려져 있는 샌드위치를 보니 바로 먹을 수가 없었다. 샌드위치 색이 원래 이렇게 예뻤나? 먹기에 아까운 색이었다. 샌드위치가 흰색과 검은색 사이에 여러 그라데이션으로 변해있는 창밖을 배경으로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 더욱 강렬했다. 초록 연두 빨강 노랑 베이지... 이 무채색의 겨울에 어울리지 않는 다채로움으로 색이 도드라져 있었다. 맛으로 느끼기보다 눈으로 느끼는 게 더 좋아 보였다. 먹어서 사라지기 전에 많이 보고 싶어서 사진을 찍었다.


평소에 샌드위치를 떠올리면 가볍다는 인상이 강했다. 부담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준비하는 음식. 식빵과 야채와 과일, 베이컨 계란 참치, 치즈, 약간의 소스. 주변에 보이는 재료로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보통 주식으로 먹는 음식이 아니기에 샌드위치를 만든다는 건 그날이 조금은 달뜬 예정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주말 늦은 아침식사일 수도 있고 멀지 않은 공원으로 나들이 가는 날 일 수도 있다. 평소 모습에서 약간은 달라졌다가 돌아올 예정인 날 필요한 음식. 마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흰 구름을 더하고 초록 나뭇잎 주변에 연두색을 살짝 더하고 설렘의 기분 90에 상쾌함 5 정도를 더하는 음식이 샌드위치이다. 기분 좋은 내게 "너 쫌 기분 좋아 보이네? 너를 보니 나도 그런 것 같아"라고 말을 붙이는 듯 한 음식.  


그런데 지난 겨울에 만난 샌드위치는 그렇지 않았다. 더하기의 음식이 아니라 균형의 음식이었다. 시소 한쪽 끝에 거대한 무채색이 있었고 반대쪽에 샌드위치 한 조각이 앉아있는 듯했다. 맛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색으로 겨루는 중이었다. 골리앗과 다윗처럼 여전히 겨울의 색은 가득했지만 승패는 분명했다. "비슷한 색을 운전하며 계속 봤구나? 잠깐 나 좀 봐"라고 말을 걸고 있는 걸까. 희고 검은 것으로 가득한 세상이 균형을 잡기 시작했다. 


음식의 매력은 여러 가지다. 그중 하나는 결핍의 보충에 있다. 몸이 아플 때 죽을 먹고 여유를 느끼고 싶을 때 카페에 간다. 기분이 좋아지고 싶은 날 단맛의 케이크나 쿠키를 찾는다. 영양, 맛, 향을 채우는 일을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며 지낸다. 색도 그렇다. 사람에게는 부족한 색을 채우고 많은 색은 비워야 하는 균형의 본성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음식은 그 변화에 많은 도움을 주는 게 분명하다. 그날 샌드위치의 색이 너무 아름다웠던 이유도 그랬을 것이다.


색은 눈으로 음미하는 맛이고 계절을 배경으로 하는 맛이다. 샌드위치의 매력을 더욱 느끼고 싶다면 겨울에 주문해야 한다. 장마가 계속되는 날이라면 블루 칵테일을, 술이 싫다면 얼음 넣은 파란색 스포츠 음료라도 유리잔에 담아야 한다. 구름 한 점 없는 폭염이라면 피자두를 잘라서 접시에 놓아야 한다. 그러면 잊고 있던 감각과 느낌이 새롭게 살아날 것이다. 먹지 않고 바라만 봐도 채워지는 무엇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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